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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NIS)은 상조회 기금을 맡긴 농협 직원들에게 90억원을 횡령당한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 오마이뉴스 김당

국가정보원(김승규 원장)이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와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매달 직원들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갹출해 적립한 상조회 기금(양우공제회 기금) 가운데 90억원을 농협 전직 직원들이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이 수사중인 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국정원은 지난 70년부터 직원들의 퇴직 이후를 보장하기 위해 양우공제회라는 부조 단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일정액을 직급에 따라 일정액을 봉급에서 떼어 이를 기금으로 만들어 퇴직금 등으로 지급해왔다.

국정원 상조회는 기금의 일부를 서울 농협 면목동 지점에 국정원이 대외적인 이름으로 썼던 모 잡지사 이름으로 예치해 관리해왔다. 그런데 이 돈을 관리해온 농협 직원 지모(59)씨와 최모(41)씨가 2000년 10월과 2002년 1월에 각각 60억원과 30억원씩 몰래 인출해 사용한 것이다.

축협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98년부터 국정원 상조회 계좌를 관리해온 지씨는 2000년 7월 축협이 농협으로 통합되고 지점을 옮긴 이후에도 이 계좌를 도맡아 관리해오다가 '겁없이' 이 기금에 손을 대 주식투자 등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는 지난 5월 두 사람을 구속기소하고 현직 농협 직원 김모(여)씨의 범행 가담여부를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직원들이 무려 36년 동안이나 저축한 돈을 털려

국정원은 26일 발행된 <시사저널>이 "국정원이 시중 금융기관에 위탁해 관리하던 국정원 자금 50억원 이상이 횡령당했다"고 보도한 것을 계기로 후속보도가 이어지자, 이날 오후에 보도자료를 내고 상세한 경위를 공개했다.

국정원은 "농협 직원들이 횡령한 돈은 국정원 직원들의 상조회 기금으로 국정원 예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이 기금은 직원들의 월급에서 매달 일정액을 갹출해 적립한 돈으로 장학사업 등 후생복지 및 전직 직원 돕기에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횡령당한 돈은 보도와 달리 국정원 예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상조회측이 통장과 인감도장을 직접 보관하고 있어 횡령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하다가 최근 (상조회 기금 담당자가 바뀌어) 예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범행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농협측에서 자체 조사후 지○○와 최○○를 검찰에 고발해 5월18일 구속되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의 개요로 보면 국정원과 직원들은 '피해자'이다. 현재까지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상조회인 양우공제회의 인감과 통장 원본은 잘 보관돼 있는데 농협의 현직 직원 한 명이 계좌서류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지씨 등의 횡령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위조사기인 셈이다.

그런데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농협은 국정원이 일종의 차명계좌를 사용해 예치해온 만큼 해당 직원이 책임질 일이지 농협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으나 금융감독원의 조사로 책임소재가 분명해진 뒤에야 책임을 인정했다는 후문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쪽팔린' 국정원 '쉬쉬'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돈이 어떤 돈인가. 올해로 전·현직 직원들이 무려 36년 동안이나 저축한 돈이다. 이들이 음지에서 일하며 36년 동안 월급에서 모은 돈을 달랑 농협 직원 두 명이 한숨에 털어간 것이다. 그래서 시쳇말로 '쪽팔린' 국정원은 공제회 기금을 횡령당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더 쉬쉬했다는 후문이다.

양우공제회는 김계원(金桂元)씨가 중앙정보부장(제5대)을 하던 1970년 9월에 만들어진 국정원 직원들의 상조회로 모든 직원들이 다달이 급여에서 10여만원씩을 떼어 돈을 모은 뒤 퇴직 때 지원금을 주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현재 직원들은 급여(본봉)의 8.5%를 양우공제회비로 떼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우공제회는 이렇게 공제한 돈으로 1급 직원으로 퇴직한 사람에게는 월 120만원, 2급 퇴직자에게는 월 100만원, 3급 퇴직자에게는 월 8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6년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양우공제회는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처럼 공무원공제회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공무원의 월급은 흔히 박봉(薄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는 공무원의 박봉을 지원하고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공제회 제도를 도입했다.

가장 역사가 오랜 박정희 시절의 교직원공제회(1971년)부터 전두환 시절의 군인공제회(1983년), 노태우 시절의 지방행정공제회(1990년)와 경찰공제회·소방공제회(1991년) 등이 그것이다. 이 5대 공제회 기금은 현재 눈덩이처럼 늘어났는데 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군인공제회 기금은 주식시장의 '큰손'이다.

양우공제회기금은 공무원공제회 기금과 달리 감사의 사각지대

▲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중앙정보부 설치 의결' 문서(왼쪽)와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 인사명령(오른쪽).
ⓒ 오마이뉴스 김당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때가 1961년 6월 10일이다. 창립자인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지은 부훈(部訓)은 '우리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그래서인지 국정원과 관계된 조직 명칭에는 '양지'(陽地)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퇴직 직원 친목단체의 이름이 '양지회'이고, 여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는 '양지회보'이다.

국정원 직원들의 상조회인 양우공제회도 '볕 양(陽)'자와 '벗 우(友)'자를 쓴다. 양지(퇴직)에 나갈 때에 대비해 음지(현직)에 있을 때 틈틈이 저축하자는 취지이니 공제회 이름으로는 제격인 셈이다.

▲ 2001년 12월 양우공제회가 삼양식품으로부터 500억원에 인수한 강원도 원주의 파크밸리 골프장(18홀, 50만평).
ⓒ 파크밸리골프장 홈페이지
양우공제회도 다른 공무원공제회처럼 기금을 주로 투자신탁이나 장기신탁에 투자해왔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투자신탁의 원금을 까먹는 손해를 보자 지난 2001년 12월 강원도 원주의 파크밸리 골프장(18홀, 50만평)을 삼양식품한테서 500억원에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당시 양우공제회가 내세운 매입 조건은 '즉시 500억 지불'이었다. 현금 동원력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기금은 다른 공무원공제회 기금과 달리 감사의 사각지대에 있다. 바로 그런 '사각' 때문에 정보기관이 맡긴 돈이, 그것도 90억원이나 되는 거액이 6년 동안 횡령을 당하고 있는데도 눈치조차 채지 못한 '정보의 실패'를 초래한 것이다.

이와 달리 5대 공제회는 기금 운영을 공개하고 있다. 심지어 군인공제회와 교원공제회는 자신들의 웹 사이트에 회원들이 낸 기금의 총액이 얼마인지, 어디에 투자되었는지 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5대 공제회는 또 자체 감사는 물론, 국방부와 교육부 등 상급기관의 감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구인 감사원 감사와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국정감사까지도 받는다.

그런데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감사관실의 감사는 물론이고 감찰실의 감찰도 받지 않는다. 양우공제회 이사회 멤버인 감사가 실시하는 내부감사만 받을 뿐이다. 양지(퇴직)에 나갈 때에 대비해 음지(현직)에 있을 때 틈틈이 저축하자는 좋은 취지의 이름과 달리 공제회기금은 여전히 감사의 볕이 쬐지 않는 '음지'에 있는 것이다.

횡령당한 양우공제회 기금이 국정원 예산은 아닐지라도 양우공제회가 국가정보원의 산하기관이고, 양우공제회의 기금이 국정원 직원에게서 나온 것인 만큼 국정원 감사관실의 감사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비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 놓아야 '남은 소'를 더 잃지는 않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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