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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근대 중국의 이미지는 ‘무기력한 거인’이었다. 동양의 울타리에 갇혀 살던 거인 중국이 아편전쟁(1840년) 이래 영국·프랑스 등 서양열강의 집중 침탈 속에 이권을 상실해 갔다는 식의 인식이 한때는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미지가 우리의 인식 속에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중국이 아편전쟁 이래 서양 자본주의국가들로부터 정치·경제적 침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외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남서쪽의 대국인 인도와 비교할 때에 이 점은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땅덩어리로 보나 문화 수준으로 보나 중국에 뒤질 게 없는 인도는 결국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1773년 영국의 인도 정리법에 의해 인도의 통치권은 영국정부의 감독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인도보다 더 집중적인 서양의 침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끝내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왜 그러할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국제환경이라는 측면에 국한하여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최근 필자와 대화를 나눈 역사학자들은 그 같은 차이의 원인을 침략국의 숫자에서 찾았다. 인도는 영국 한 나라의 침략만 받았기 때문에 쉽사리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여러 국가들의 집단적인 침탈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인도의 경우를 보기로 한다.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17세기 이후) 같은 서양 국가들이 인도 동남쪽의 실론섬(스리랑카)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인도 대륙을 넘보는 서양국가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인도에서 경쟁을 벌인 국가로는 영국과 프랑스 정도를 들 수 있을 뿐이다.

1600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영국은 처음에는 동남아 등으로의 진출을 시도했지만, 이미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포르투갈·네덜란드의 견제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도 진출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 후 프랑스의 도전에 직면하기는 했지만, 영국은 1757년 플래시 전투에서 토후군과 연합하여 프랑스 군대를 대파함으로써 인도에서 독점적 세력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인도가 일찍부터 영국 한 나라의 독점적 지배하에 놓였기 때문에 쉽사리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중국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워낙에 면적이 크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중국을 독점하기도 힘들었겠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여러 나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로 특정 국가의 독점을 견제했다. 제2차 아편전쟁 때에 영국·프랑스가 연합군을 구성하고 미국·러시아가 양국을 지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경우에는 여러 나라가 동시에 침탈을 가했기 때문에 어느 일국이 중국을 독점하기가 힘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영·프·미·러 외에도 일본·독일도 중국 침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처럼 여러 강국들이 동시에 중국을 침탈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 국가가 중국을 독점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상의 점들을 볼 때,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에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국은 끝까지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원인은 침략국의 숫자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침략국의 숫자가 적은 인도에서는 영국의 독점이 용이했지만, 그 반대인 중국에서는 특정 국가의 독점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다른 많은 요인도 있겠지만, 국제환경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국의 사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외국과 국교를 체결하든 동맹을 체결하든 간에 어느 한 국가에 치우친 특정 국가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지향하는 것은 결정적 순간에 중소(中小) 국가의 주권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중국·인도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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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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