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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요나라의 제1차 고려 침공 때에 소손녕(蕭孫寧)과 담판을 벌인 서희(徐熙, 942~998년)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전설적인 외교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도, 서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승리하여 고려를 외침의 위기로부터 구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서희의 외교적 성과가 다소 왜곡되게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희의 경우를 포함해서 다른 많은 경우에도, 역사적 사실이 부정확하게 전달됨으로써 국제관계의 본질에 대한 국민들의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는 예가 허다하다.

흔히 서희가 단지 몇 마디 말로 요나라로부터 강동 6주를 선물받았다는 식의 인식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인터넷 지식 검색에서도 서희나 강동 6주에 관해 부정확한 지식이 제공되는 예가 적지 않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서희의 외교적 담판을 계기로 고려가 그 이후에 강동 6주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당시 고려와 요나라의 외교적 담판에서 강동 6주가 직접 오고간 것은 분명 아니었다.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결과는 정확히 다음과 같다.

▲고려는 요나라의 정삭(正朔)을 받아들인다. 고려는 요나라의 책봉을 받고 요나라와 조공무역을 한다.
▲요나라는 압록강 동안(東岸) 280리의 땅(즉 강동 6주)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참고로, ‘고려가 요나라의 정삭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고려가 요나라를 천하의 중심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나라가 고려에 강동 6주를 직접 준 게 아니라, 강동 6주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디른 말로 하면, 요나라가 고려에 준 것은 강동 6주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요나라는 고려에 강동 6주를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땅은 요나라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진족이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라가 강동 6주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려와 요나라 중 어느 한쪽도 강동 6주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 하에서 요나라가 고려의 강동 6주 점령을 양해한다는 의미였다. 달리 말하면, 고려가 강동 6주를 점령하는 것에 대해서 요나라는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희가 얻은 외교적 성과는 강동 6주라는 ‘현물’이 아니라, 요나라의 간섭 없이 강동 6주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는 요나라와 책봉관계를 맺는 것을 조건으로 요나라의 방해 없이 강동 6주를 점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려의 북방 경계가 압록강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서희의 외교적 성과는 강동 6주를 선물받은 점이 아니라 요나라의 침략을 외교적으로 물리쳤다는 점이다. 당대 동아시아 최강인 요나라의 침략을 군대가 아닌 외교로 물리쳤다는 점만으로도 서희는 전설적인 외교관으로 기억될 만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희가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강동 6주를 직접 얻었다는 이야기는 부정확한 지식이다. 치열한 국제관계에서 경제·군사적 실력도 없이 단지 몇 마디 말로 강대국의 땅을 거저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서희-소손녕의 외교 담판 이후 고려는 군대를 동원하여 그 지역의 여진족들과 싸워서 그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6개의 성을 쌓았다. 고려는 피와 땀을 흘려 여진족과 싸우면서 영토를 확보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고려는 자주적 노력으로 영토를 확장했던 것이다. 일부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그저 ‘로또 복권’ 당첨되듯이 강동 6주를 몇 마디 말로 쉽게 얻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외교든 정치든 경제든 간에 무엇이든지 피와 땀 없이는 획득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서희와 강동 6주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사회 일부에 만연되어 있는 요행심리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은 역사 교육을 통해서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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