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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전경.
ⓒ 박희주

독도, 검푸른 바다 위 적막과 고독에 멍든 작지만 거대한 돌섬. 지금도 극우로 무장하고 21세기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일본이 도적질하려고 날을 세우고 있는, 커다란 파도에 곧 모습을 감출 것 같은 위태로운 국토의 막내.

독도로 가는 길은 마치 수행자의 수행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밤새워 공부한 수험생이 답안지를 맞춰보면서 요행을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탈것이라고는 자전거와 기차 밖에 경험 못한 채 까까머리 시절을 보내고 꿈을 이뤄줄 것 같았던 서울로 입성하던 날, 이미 버스 매연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졌다. 버스에 올라 토큰 통에 토큰을 넣자마자 밀려오는 어지럼증 때문에 두어 정거장 가다 내려서 걸어갔던 적이 무릇 얼마였던가.

▲ 대한민국독도문학축전 개막행사
ⓒ 박희주

독도로 가는 날이 정해지자 가장 먼저 다가오는 시험지가 바로 뱃멀미였다. 며칠 밤낮을 두고 고민 고민하다가 지인들과 함께 '대한민국독도문학축전'에 참가하는 수행(?)을 결정했다.

마음을 정하고 난 다음에 다가오는 또 하나의 시험지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운수'였다. 날씨가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예정된 날이 다가올수록 출발지인 포항의 날씨가 어떨지 점점 더 요행을 바라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직장에서 3일간의 휴가도 허락받아 놓았으니 배를 타고 겪어야 할 고행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씨가 도와주기만을 빌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덕수궁의 대한문에 낯익은 시인들이 한 분 한 분 보이기 시작했다. 덕수궁 건너편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붉은 빛깔들이 벌써부터 한국과 세네갈의 축구경기 응원에 돌입하고 있었다.

5월 23일 오후 6시에 세 대의 버스가 출발해 그날 밤 11시 20분께 포항에 도착했다. 배가 떠나는 시간은 11시 40분. 뱃멀미니 날씨니 하는,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간에 쫓겨 서둘러 배에 올랐다.

바다는 무척 잔잔했다. 서울에서 출발 전에 미리 붙인 멀미약에 의지하는 마음도 컸지만 항해는 그냥 방안에 있는 듯 편안했다. 사방이 온통 검푸르다. 구름에 가려 별빛도 보이지 않고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에 배 한 척이 떠간다.

▲ 새벽녁 배에서 바라다 본 울릉도. 안개에 싸인 경치가 은은하고 신비롭다.
ⓒ 박희주

5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푸르스름하게 동이 튼다. 뱃머리 쪽에서는 가느다랗게 울릉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날 비가 와서인지 안개에 쌓인 울릉도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하게 다가왔다. 뱃머리를 향해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도동항에 도착한 시간은 24일 새벽 5시 40분경.

▲ 울릉도 도동항.
ⓒ 박희주

두 시간여 동안 울릉도를 관광했다. 독도로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행히 오후 들어 안개도 걷히고 햇빛도 언뜻언뜻 모습을 보여줘, 두 시간 반쯤 지나면 독도가 깨끗하게 보일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다.

▲ 독도. 코끼리 바위.
ⓒ 박희주

포항에서 오는 배에서 밤새워 이야기꽃을 피운 탓도 있겠지만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는 것 외에는 출렁임이 하나도 없는 잔잔한 바다 덕분에 좌석에 앉자마자 곧장 꿈나라로 접어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대의 카메라를 가슴에 품고 자는 모습을 발견한 선원이 자상하게도 독도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나를 깨웠다.

▲ 동도 중턱에서 본 접안시설
ⓒ 박희주

엄지손톱만 하게 보이던 독도가 점점 크고 뚜렷하게 다가온다. 다가올수록 가슴은 더욱 쿵쾅거린다. 하늘에는 초계 비행하는 우리 공군기가 간간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어선과 군함인 듯한 배 몇 척도 망원렌즈에 포착되었다.

▲ 삼형제굴바위와 촛대바위
ⓒ 박희주

이윽고 거대한 바위섬에 발을 디딘다. 뛰던 가슴도 순간 멈춘 듯 아득해진다. 감격스러워지며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물개바위 쪽에서 본 서도와 동도
ⓒ 박희주

▲ 멀어져가는 독도. 갈매기가 뒤따라 오며 배웅해 준다.
ⓒ 박희주

▲ 태극기와 독도.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본 우리 땅 독도...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새로운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한다.
ⓒ 박희주


독도, 그 짧았던 하루

※다음은 독도를 노래한 용환신 시인의 작품이다.

분쟁의 끈 서로 감춘 채 맺은 신어업협정으로
하늘도 불순했던 그해 겨울,
나는 동해 울릉군 독도 앞바다에 있었다.
난생 처음 겪은 그 흔들림의 뱃길
토해봐야 더 나올 것 없는 텅 빈 육신은
그러나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땅이라 하여도 밟을 수 없고
섬이라 하여도 내릴 수 없는
그날 독도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망부석으로
바다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몇 번이고 빙빙 돌려 접안해 보려는 여객선 고동소리
아니 신음소리는 대답 없는 공명共鳴으로 파도소리에 섞여
멀리 수평선 너머 힘없이 사라져 갔고
갈매기 떼만 놀래 짧은 휴식 접고
비상을 준비하느라 소란스러울 뿐
끝내, 우리는 침묵으로 거부당했다.

이제는 흔들림도 자연스러운 갑판 위에서
짝사랑 같은 마음으로 고사告祀 지내며
미리 준비해 간 지표동판指標銅版 바닷 속 고이 심고
동해의 짙푸른 물별보다 더 진하게 앞을 막는 분노,
애써 눈 돌려 되돌아오는 길
외로운 것은 땅으로서 내가 아니라
내릴 수도 밟을 수도 없는 발끝
그 어지러운 당신들 마음일 거라고
슬픈 것은 절벽에 가린 섬으로 내가 아니라
속 보이는 불안, 몰려다니는 바람 같은 당신들 외침일 거라고,
독도는 거기 속은 대로 버티고 서서
말없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전송하고 있었다. / 용환신

덧붙이는 글 | 오마이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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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으며, 특히 분단과 관련한 내용을 많이 찍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재단에 근무하다 보니 문화예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여러가지 행사나 문화현상들에 대해서도 사진작업을 병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화, 예술 현장을 취재하여 알리고 싶어 가입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마스크 쓰고 등산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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