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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언제 직장 소개시켜 줘요?"
"직장 소개는 제가 안하고,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서 하거든요. 고용안정센터에서 연락 준다고 하지 않던가요?"
"……."


입국하자마자 근로계약을 했던 업체로부터 근로계약 해지를 당한 필리핀인 윌마는 내가 공무원이 아닌 비영리민간단체를 운영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몇 차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자신의 취직 문제를 책임지는 공무원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른 말은 못하면서도 나를 부를 땐 굳이 '오빠'라는 우리말로 불렀다. 나름대로 친근함을 표현해 보려는 것 같았지만, 초면의 외국인이 '오빠'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를 때는 약간 어색함을 느꼈다.

윌마는 입국한 후 사흘간 국내 적응훈련을 마치고, 배정된 업체에서 이틀만에 해고됐다. 윌마는 최초 배정업체에서, 고용안정센터로, 쉼터로 이동하면서 자신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 정확한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일을 하지 못하는지' 애가 타 있었다. 그런 입장이다 보니, 그나마 말이 통하는 나에게 자꾸 직장에 대해 물어왔다.

결국 나는 윌마를 쉼터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한 뒤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근무처를 찾고 있는 아르또노(Artono)를 비롯한 인도네시아인 세 명과 함께 용인 고용안정센터로 데리고 갔다.

고용안정센터에 가서 필리핀 여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는 업체가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자, 담당직원은 "이 지역엔 필리핀 여자를 찾는 곳이 없어요"라고 너무 쉽게 대답하고는 구인업체가 있는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르또노가 끼어들었다. "수원에 가면 필리핀 여자 (구하는 업체가) 많아요." 아르또노는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어 기존업체에서 근로계약이 만기된 사람이다. 그동안 구직활동을 하면서 수원 고용안정센터에 몇 차례 갔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윌마를 데리고 수원 고용안정센터를 가기에는 뒤에 잡아 놓은 약속 장소들과 동선이 너무 멀고,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시간이 없다는 걸 눈치를 챘는지 구인업체를 소개받은 아르또노가 다시 끼어들었다.

"제가 데리고 갈게요."
"너는 회사 사장님 만나야지."
"잠시 데려다 주고 회사로 가면 돼요."
"안 힘들겠어?"
"같이 같이 외국사람. 힘들면 도와야죠."


다 같이 외국인이라는 말은 내가 평상시 종종 하는 말이었다. 인도네시아인도 외국인, 베트남인도 외국인, 나도 당신 앞에서 외국인, 다 똑같은 외국인이라는 말을 종종 해 왔던 내 말을 아르또노가 흉내내듯 한 말이었지만, 순간 코끝이 찡하는 것을 느꼈다.

아르또노는 한국에 오자마자 직장을 잃은 윌마의 형편을 이해하고, 자신도 직장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윌마를 우선 돕겠다고 한 것이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아르또노는 안심을 시키려는 듯 밝은 표정으로 "버스타면 다 가요"하고 자신 있게 말을 했다.

그날 저녁 쉼터에서 다시 만난 윌마는 여전히 직장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첫날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가졌던 경계심은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 윌마와 친구들이 쉼터에서 식사 중이다.
ⓒ 고기복
"이거 인도네시아, 사∼암발!"

인도네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음식 이름을 천천히 발음하면서 윌마에게 음식을 권하고 금세 친해져 있었다. "같이 같이 외국사람. 힘들면 도와야죠"했던 아르또노의 말이 떠올랐다. 같은 처지의 외국인 친구를 애틋하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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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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