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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통일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북한잠수함과 로버트 김의 자서전.
ⓒ 김범태
지난 1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위치한 통일공원. 따스하게 비쳐오는 봄날 햇살은 포근했지만 지근거리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꽤 쌀쌀하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평일인지라 인적마저 드문 공원의 입구에 백발이 희끗희끗한 초로의 부부가 손을 잡고 들어섰다. 깊은 한숨을 내몰아 쉬는 이들의 발걸음이 왠지 무거워 보였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모자를 벗어든 이는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씨와 부인 장명희씨였다.

"아! 이 녀석이었구나……."

공원 가장자리에 전시되어 있는 잠수함을 보며 탄성처럼 내뱉는 김씨의 목소리에 깊은 회한이 담겨 있었다. 잠수함을 매만지는 그의 뇌리에 조국을 사랑했기에 감내해야 했던 모질고 괴로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났다.

이 잠수함은 지난 1996년 9월 동해안으로 침투했다가 좌초한 전장 34m, 전폭 3.8m의 북한상어급 잠수함이었다. 당시 미 해군정보국(ONI)에 근무하고 있던 로버트 김씨는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의 부탁으로 잠수함의 이동경로 등과 관련된 국방자료를 유출했다가 국가기밀누설혐의로 사흘 만에 FBI에 체포돼 9년여 간 영어의 몸이 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동양인 최초로 미 해군정보국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는 성공한 한인 이민 1세대였던 그와 가족들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며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공무원이었던 아들마저 직장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통의 시간 끝에 지난해 11월 로버트 김씨는 국민적 환대와 사랑 속에 1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당시 그는 "나는 스파이가 아니었고, 백 대령과의 친분관계에서 출발해 아무 대가 없이 그가 필요로 할 정보를 주었을 뿐"이라며 "국민들의 성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감사해 했다.

그리고 이날 잠수함 앞에 선 김씨는 "작년 방한 당시 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번에 오게 되었다"며 "막상 직접 보게 되니 '이 녀석이 그토록 말썽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에 감회가 어린다"고 말끝을 흐렸다.

어느새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인 장씨의 마음도 미어질 듯 저려왔다.

김씨는 "FBI가 나의 뒤를 추적한 것은 이 잠수함이 침투하기 이전부터였으니 이 '녀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 나를 체포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며 "표면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지라도 어느 정도 영향은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4년 출간한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에서 "사람들이 관광차 그 잠수함을 볼 때 나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미국에 이민간 지 30년이 넘은 나 로버트 김, 한국 이름 김채곤이라는 사람이 두고 온 나라 한국을 위해 조금이나마 애썼다는 것을"이라고 기록하며 조국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새겨 넣기도 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경치 만끽하고 15일 오전 출국

▲ 로버트 김씨 부부가 6개월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사진은 지난해 출국 때 모습.
ⓒ 백한승
로버트 김씨 부부가 한국을 방문하고 15일 오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그간 강화도와 설악산, 강릉, 경주 등 관광지를 둘러보며 고국의 자연과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했다.

또 고향인 여수에 들러 친지,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지난달 25일에는 형제들과 함께 익산 영모묘원에 안치된 부모님 납골묘를 찾았다. 이 달 3일에는 그간 도움을 준 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이번 방한을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알렸을 뿐 극히 '비밀리'에 다녀갔다. 이처럼 조용히 한국을 다녀간 이유는 자신들에게 쏠리는 국민적 관심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 때문이었고, 또 지난해 방한 당시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차분히 둘러볼 수 없었던 아쉬움도 작용했다.

부인 장명희씨는 "한국은 봄과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데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올 수 없었던 데다, 작년에는 너무 빠듯한 일정으로 고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여행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며 "마침 하와이를 통해 한국으로 오는 저렴한 패키지가 있어 찾게 되었다"고 방한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들 부부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한국의 정서를 체험했다. 김씨는 지난해 출국에 앞서 "너무 촉박한 일정 때문에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보지 못하고 그냥 가게 되어 아쉽다"며 "다음에는 꼭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장씨는 "늘그막이라 약간 고생스럽긴 했지만,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초행길인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며 "아름답고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담고 간다"며 환히 웃었다. 이어 그녀는 "거리나 공원 등 각종 시설과 환경이 이제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덧붙여 이들 부부는 국민들에게 "체류 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알아보고 인사도 건네주시며, 한국의 정을 느끼게 해 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자주 찾아 뵙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15일 아침 11시에 출발하는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로버트 김씨 부부도 "오~ 필승 코리아!!"
월드컵 앞두고 태극전사들에게 응원 메시지 보내

▲ 로버트 김씨 부부도 태극전사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3주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15일 오전 미국으로 떠난 로버트 김씨 부부는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독일월드컵대회를 앞두고 23명의 태극전사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로버트 김씨는 "나는 축구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선수선발도 짜임새 있게 잘 된 것 같다"며 "16강이 아니라 4강 이상의 성적도 바라보며, 선수들이 대한민국의 기개를 지구촌에 떨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상대팀이 아무리 잘해도 항상 컴퓨터처럼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팀이 전력을 극대화하면 또 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감독도 바뀌었으니 우승까지라도 바라보면서 준비한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면서 선수단이 더 큰 목표로 경기에 임해줄 것을 주문했다.

로버트 김씨는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지난 2002년에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앨런우드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당시 교도소에서 영어교사로 봉사하던 그는 텔레비전 시청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재소자들과 함께 몰래 텔레비전으로 월드컵 경기를 보던 중 사람들이 너무 큰 목소리로 응원하는 바람에 교도관에게 들켜 아쉽게도 더 이상 경기를 볼 수 없었다는 에피소드도 함께 전했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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