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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중앙
<아이의 식탁에서 우유를 지켜라>를 읽은 지 두어 달이 지났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우유를 연구해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의 글에 대해 전문적 식견도 없이 이러쿵저러쿵 다른 이야기를 쓸 자신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병원 진료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읽었던 한 여성잡지에서 이 책의 내용을 발췌해서 실어놓은 기사를 보았다. 많은 엄마들이 잡지책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우유를 꼭 먹여야겠구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핵심 내용만 잘 발췌해서 실려 있었다. 발췌된 여성잡지의 기사를 읽으며 우유에 대하여 '우유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꼭 서평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육류와 우유, 그리고 우유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 후 지난 6년여 동안 단 한 번도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우유가 들어간 가공식품을 먹지 않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만 우유를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 가족 모두가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도 마시지 않는다. 우유가 완전식품이라고 믿지 않으며, 아울러 우유에 대한 전문적 지식 없이 쓰는 서평임을 미리 밝힌다.

<아이의 식탁에서 우유를 지켜라>의 지은이 진현석씨는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우유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3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굴지의 우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우유 전문가이다.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20년 전에 미국에서 출간되어 2003년에 국내에 번역된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와 김수현의 <바른 식생활이 나를 바꾼다>, 박정훈의 <잘먹고 잘사는 법>과 같은 책으로부터 비롯된 '우유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쓴 책이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우유는 완전에 가까운 식품이다, 동양인도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다, 우유는 아토피의 주범이 아니다, 모유가 최선이지만 분유도 좋다, 두유는 우유보다 좋다는 근거는 없다, 우유는 성장과 골다공증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우유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몸에 좋은 음료"라는 주장이다.

그 외에도 책의 나머지 절반은 "우유의 과학, 우유 골라먹는 법, 우유에 대한 상식과 활용법, 우유를 활용한 요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결국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독자들에게만 유익한 정보이다.

우유는 친환경적인 웰빙 식품인가? 지은이의 주장은 이렇다.

"식품으로 섭취하는 대부분의 육류 또는 채소류는 그 개체가 생명을 잃어야만 식품으로 사용가능하나 우유는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직접 얻는 것이므로, 그 무엇보다도 친환경적인 식품이다."

이것은 참으로 '아전인수'격의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는 살아있는 생명(콩과 옥수수)을 섭취하지 않고 우유를 만들어낸다는 말인가? 지구상의 모든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콩과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이 소를 먹이기 위한 사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우유와 육류를 생산한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잘려나가는 열대밀림과 나무들은 생명이 아니란 말인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가 소비하는 엄청난 양의 물은 생명이 아닌가?

ⓒ 이지북
"20명이 먹을 수 있는 콩과 옥수수를 소에게 먹여 고기와 우유를 먹을 경우 겨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소나 돼지 한 마리가 배출하는 똥과 오줌의 양은 사람이 배출하는 양의 20배 이상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13억 마리 이상의 소들이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소를 비롯한 가축들이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0퍼센트를 먹어치운다는 사실이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쏟아내는 분변의 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이다." (<음식혁명> 중에서)

"콩 1kg을 경작하는 데에는 2000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닭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에는 3500리터, 그리고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에는 무려 1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제인구달의 <희망의 밥상> 중에서)

2004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 나라의 젖소 사육두수가 50만 마리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이 매년 220만 톤의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먹어치우는 콩과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 사료와 이들이 소비하는 물은 또 얼마인가. 우유가 친환경적인 식품이라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 할 수 없다.

지은이가 인간을 바라보는 성장주의적 세계관은 키 큰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의 비뚤어진 욕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아기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도 당장은 알레르기 증상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장이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유로 성장에 필요한 양질의 에너지원을 차단하는 것은 아기의 미래를 생각할 때 너무나 엄청난 비극이다." (<아이의 식탁에서 우유를 지켜라> 본문 중에서)

크면 더 좋은 것이라는 가치관은 옳지 않다. 더 중요한 곳은 건강하고 자라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조제분유를 먹여 무조건 크게 키운 '우량아'를 선발해서 상을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알레르기가 있어도 우유를 먹여서 키를 키우자는 것은 '우량아 선발시대'의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유가 몸에 맞지 않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

우유는 아토피의 주범인가? 오스트리아의 아동보건연구협회의 연구 자료에는 "4개월 미만의 아기에게 모유가 아닌 우유를 주면 천식과 아토피의 위험이 증가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들의 연구에는 이러한 엄밀한 검사(음식물 반응검사, 혈액검사, 피부반응검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객관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유가 아토피의 주범이라는 과학적 검증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적 검증이 없어도 사람은 경험이나 직관으로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상당수는 이미 과학적 연구결과가 아니어도 삶의 경험과 지혜로 터득한 '직관'을 통해 우유를 먹이면 아토피가 더 심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리한 식이요법으로 영양결핍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영양결핍을 막는 방법이 우유 밖에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 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영양학과 우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젖소 사육에 항생제와 호르몬제는 사용되지 않으며, 사용되더라도 질병이 있는 경우에 한해 그 사용량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지은이의 주장과 "빨리 성장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많은 동물들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먹이를, 그것도 농약과 항생제, 호르몬으로 범벅이 된 먹이를 억지로 먹이는 것이다"라고 쓴 '제인 구달'의 주장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고 싶다.

지은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미국의 우유회사들은 <음식혁명>을 쓴 존 로빈스나 <희망의 밥상>을 쓴 제인 구달 같은 이들 때문에 입은 손해배상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국립학교 점심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우유를 급식 메뉴에 포함시킨 후 60년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학군인 뉴욕시는 저지방 우유를 제외한 모든 우유를 급식으로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학생들의 비만과 당뇨병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2006년 2월 3일자 한국일보)

소비자들은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 명쾌한 결론이 나기를 기대한다. 저명한 소아과 의사인 프랭키 오스키<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와 우유박사인 진현석<아이의 식탁에서 우유를 지켜라>의 주장 중에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알고 싶다.

과연 우유가 완전식품인지? 혹은 완전 오염식품인지? 소비자들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우유 논쟁이 더욱 뜨겁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이의 식탁에서 우유를 지켜라

진현석 지음, 김동욱 감수,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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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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