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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녀를 만난 건 투루판기차역 대기실이었습니다. 절강성 서주(徐州)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대합실에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를 처음 봤습니다. 작년(2005년) 8월말이군요. 대합실 TV에서는 9월초에 전국방송이 되는 호남위성TV가 한창 <대장금> 선전을 할 때였습니다.

▲ 대장금, 예견된 성공였지만 한류(韓流)를 이용한 우리 기업의 노력은?
ⓒ 최광식
어머니와 함께 나타난 그녀는 정말 예뻤습니다. 대합실안의 남녀노소 구별 없이 그녀를 예쁜 꽃봉오리나 되는 양 열심히 바라볼 정도였습니다. 그녀도 그것을 즐기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줄리엣을 처음 본 로미오가 된 듯했습니다. 심장은 인정사정 없이 박동수를 올렸고, 혈관은 갑자기 늘어난 혈류 때문에 2배정도 커진 듯했습니다. 엉큼한 남정네가 그러하듯이 먼저 그녀의 어머니를 공략했지요. 흐흐흐 비상용 초콜릿과 생수 한 병에 홀랑 넘어오더군요. 이제 곧 그녀는 내 손아귀에... 흐흐흐 (더욱 음침하게)

▲ 투루판에서 서주가는 기차표, 보쾌(普快, 普快, pu3kuai4, pǔkuài)는 우리나라 옛날 '비둘기'호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완행'이지요. 하단의 '5일이내 도착시 유효(在 5 日內到有效)'는, 중국 열차들은 거의다 장거리 열차라 중간에 내렸다 다시 타도 됩니다. (대신 입석이 됨) 아마 지친 승객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 최광식
하느님 감사!(謝謝, 谢谢, xie4xie, xiè‧xie)! 무신론자에 가까운 내가 하느님까지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옆자리가 그녀와 그녀 어머니의 자리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바로 '운명'이라고 하나요?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민을 뚫고 제법 무거운 내 배낭을 지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짐까지 뺏어서 머리에 이고 우루무치에서 이미 미어터지도록 태운 객차안 중국인민들을 뚫고 좌석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 이상 지난 상태였고 다리가 풀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녀가 있기에...

기차시간표를 잘못 보는 바람에, 거기다 며칠 걸리냐고 묻지도 않은 바람에, 이틀 하고 반나절짜리 기차인줄 알았는데 사흘하고 반나절짜리 임시기차라는 걸 알았는데도 행복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가기에...

▲ 중국 5000년 고문기술이 집대성된 '딱딱한 좌석'
ⓒ 최광식
제가 늘 '중국 5000년 고문기술이 집대성된 전무후무한 고문기구'라고 부르는 완벽한 90도 각도였고 어떤 자세를 취해도 잠을 이룰 수 없는 잉쭤(硬座, 硬座, ying4zuo4, yìngzuò, 딱딱한 좌석)라 사흘간 거의 잠을 못 이루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녀가 같이 있었기에...

기름범벅에, 향채(고수나물)냄새에, 온갖 괴상한 향신료 냄새가 밴 중국 먹거리를 먹을 때도 행복했습니다. 그녀도 같이 먹기에...

▲ 아주 작은 간이역이 아닌 이상 먹거리를 판매합니다.
ⓒ 최광식
▲ 보통 미리 먹거리를 잔뜩 사들고 타지만, 그러지 못하신 분은 제법 비싼 기차내 먹거리보다는 조금은 싼, 그래도 바깥에서 사는 것보다 비싼, 간이매대를 많이 이용합니다. 종종 저한테 바가지도 씌우더군요. 정해진 고정가격은 없는 듯합니다.
ⓒ 최광식
▲ 중국 장거리 기차를 타실 경우에는 '좀 많이 샀나?'보다 훨씬 많이 사들고 타시는 것이 좋습니다. 열차내에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으니 컵라면, 커피, 차도 이용가능합니다.
ⓒ 최광식
새침데기 그녀는 보통화(普通話, 普通话, pu3tong1hua4, pǔtōnghuà, 중국표준어)를 못해서 그녀의 어머니와 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어머니의 강소성사투리 태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금도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늘 그녀의 어머니 곁에 있기에...

피곤과 90도짜리 딱딱한 의자가 주는 고문후유증 때문에 마치 냉동동태마냥 바닥에 늘어져 있는 중국인민들을 볼 때도 전혀 짜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피곤하면 제 무릎에 기대어, 내 어깨에 기대어, 마치 고교 때 배운, 국어책에 실린 알퐁소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장주인아가씨같이 저 하늘의 별처럼 기대어 자지 않았던가! 저도 목동소년처럼 그녀를 살포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매일 밤을 그렇게!

▲ 고문후유증으로 쓰러진 중국인민 ^^: 워낙 장거리 열차라 이렇게 주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거기다 좌석도 만만치 않아서 좌석승객들도 종종 이용합니다. 저도 바닥만 깨끗했으면 이용했을지도.. 한국같이 짧은 철도의 나라분들은 이해하시기가 조금..
ⓒ 최광식
▲ 운이 좋거나, 준비성이 좋으신 분은 그나마 뭐라도 깔고 주무실수 있습니다.
ⓒ 최광식
어쩌라!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나요? 중국 5000년 사상 3대 여걸중인 측천무후도 그러지 않았던가? 세월은 문틈을 지나가는 흰 말을 보는 것 같다고.

(필자주: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장자'에 나오는 말이었더군요. 무식이 탄로!

◈백구지과극(白駒之過隙)◈
흰 백/ 말 구/ 어조사 지/ 지날 과/ 틈 극 [출전]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편.

흰 말이 벽 틈으로 지나간다는 말로, 인생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비유한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살고 있는 시간은 마치 말이 벽의 틈새를 언뜻 자나가듯 순식간이다. 사물은 모두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서 다시 변화에 따라 죽는다. 변화하여 생겨나는가 하면 다시 변화하여 죽는다. 이것을 생물이나 인간은 애달파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죽음이란 화집이나 호주머니를 끄르듯이 하늘에서 받은 형체를 떠나 육체가 산산이 흩어지고 정신이 이 형체를 떠나려 할 때 몸도 함께 따라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곧 도(道)로의 위대한 복귀다.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기고 유형이 무형으로 돌아감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이며 도에 이르려는 자가 애써 추구할 일이 못 된다. 이것은 또 사람들이 다 같이 거론하는 것이지만 도에 이른 자는 그런 일을 논하지 않는데, 논하는 자는 도에 이르지를 못한다.

도란 이것을 뚜렷이 보려 하면 만날 수 없고 변론으로 말하기보다는 침묵을 지켜서 깨닫도록 해야 한다. 도란 귀로 들을 수가 없으니 귀를 막고 몸으로 터득하는 것만 못하다. 이와 같이 하면 위대한 이치를 터득했다고 한다."

또한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侯世家)"에도 이 말이 보인다.

유후는 장량(張良)이다. 장량은 그 선조가 본래 희씨(姬氏) 성이었으나, 장량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여 성을 바꾼 것이다. "인생에 있어 한 세상은 흰 말이 벽의 틈새를 지나가는 것과 같다. 어찌 이처럼 괴로워하는가?"

흰 말이 벽 틈으로 지나가는 시간만큼이나 빨리 지나가는 세월을 우리는 붙잡아 둘 수 없다. 단지 그 짧은 순간을 더없이 값지고 성실하게 사는 길만이 그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세월이 빠르게 흐흐는 것을 흐흐는 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출처 http://www.sosok.hs.kr/~gosa/에서 )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흘이 지나고 그녀를 떠나려고 하는 데 그녀가 울먹이더군요.

▲ 울지마오! 나의 뻬아드리체
ⓒ 최광식
그녀를 달래고, 마지막을 기념하기에 위해 사진을 찍는데 제 손도 떨렸습니다.

▲ 안녕! (再見, 再见, zai4jian4, zàijiàn) 내 사랑!
ⓒ 최광식

덧붙이는 글 | ㅇ 실 여행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자병음을 표기했습니다. 발음 뒤 '숫자'는 성조를 표시한 겁니다. 1은 높은 소리, 2는 올라가는 소리, 3은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소리, 4는 짧게 내지르는 소리입니다. 

ㅇ 중국어발음은 네이버중국어사전(http://cndic.naver.com/)에서. 

ㅇ 이 글은 한겨레21-차이나21-자티의 여행나라(http://ichina21.hani.co.kr/)와 중국배낭여행동호회 뚜벅이배낭여행(www.jalingobi.co.kr)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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