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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천 교수.
ⓒ 조성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닭과 달걀 중 어떤 것이 먼저인지를 쉽사리 결론 내지 못한다. 닭을 선택하면 닭(병아리)으로 부화될 달걀이 있어야 되고, 부화될 달걀은 닭이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경우를 두고 '닭과 달걀의 논쟁'이라고 하며,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상황을 비유할 때 써먹곤 한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펴냄)의 저자 최재천 교수(53·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장)는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 펴냄)고 말한다.

닭이 꼬꼬댁거리며 모이도 쪼아 먹고 짝짓기도 하는 걸 보면 닭이 닭이라는 생명의 주체인 것 같아 닭이 알을 낳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닭의 눈으로 본 결과란다. 알 속에 있는 유전자(DNA)의 눈으로 보면 알이 닭을 낳는 것처럼 보인다고 최 교수는 주장한다.

닭은 잠시 이승에 나타났다 달이 차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지만 태초에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알 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기 때문이란다.

이렇듯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다시 보는 생명은 퍽 허무해 보이지만 이 약간의 허무함을 받아들이면 스스로가 철저하게 겸허해짐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게 된다고 최재천 교수는 말한다.

이번 학기부터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시쳇말로 자리 잡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최재천 교수를 4월 10일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장실에서 만났다.

암 침팬지가 좋은 자리에서 좋은 음식 먹는다!

"흔히들 남녀평등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는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여성대통령이 나올 거라고 예언(?) 비슷하게 한 적이 있는데, 요즘 우리 정치판을 보면 제 예상이 결코 헛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점점 커집니다."

▲ <알이 닭을 낳는다>과 <대담> 표지 이미지.
ⓒ 조성일
최재천 교수는 요즘 우리 정치판에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성정치인들의 활약에 적잖이 고무돼 있었다. 아직 공식 임명되지는 못했지만 곧 여성총리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고,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한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자들의 돌풍이 예상되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최 교수는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미국의 힐러리가 후보조차 되지 말기를 바란다. 미국에서 여성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늦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란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상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어서 여성대통령의 탄생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경험적 분석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고 했다.

내친김에 우리나라에 여성대통령이 언제쯤 나올 것 같으냐는 우문을 던지자 최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혹시 다음 대선에서 후보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다가 이내 백지상태로 돌린다. 대신 최 교수는 제인 구달과 함께 침팬지 연구의 선구자격인 <침팬지 폴리틱스>(Chimpanzee Politics, 황상익·장대익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의 저자 프란스 드발이 "침팬지 암수 중 누가 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나서 한 답변을 들려준다.

"누가 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냐고 물으면 당연히 수컷이죠. 또 그들이 서로 마주칠 때 누가 더 높은 것처럼 보이느냐고 물으면 역시 수컷입니다. 그러나 누가 더 좋은 자리에 앉아 좋은 음식을 먹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연코 암컷이지요."

큰 생물학 위해 이대 석좌교수로 옮기다

최재천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오랜 미국생활을 접고 서울대 교수로 돌아와 관악산 기슭 교수아파트에 살던 시절, 밤마다 들리는 "솟 적니 솟 적다" 소리가 뭐냐고 묻던, 지금은 고2가 된 6살짜리 아들에게 그 소리의 주인공인 소쩍새를 보여주기 위해 찾았던, 그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의 관장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최 교수의 이화여대행은 급작스럽게(?) 발표됐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호주제 폐지 등 일련의 활동에서 보듯 성평등주의자다운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의외라는 반응도 있는 점을 감안해 왜 이화여대로 옮겼느냐고 물었다.

"큰 생물학(Macro-Biology)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학계의 흐름은 작고, 빠른 이른바 분자생물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저는 크고 깊고 느린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 이런 큰 생물학에 대한 이화여대의 전통과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여성시대에 필요한 여성과학자들을 많이 길러내고 싶은 욕심,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옮기게 됐습니다."

사실 미동조차 감지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의 자리 옮김이 발표돼 '전격 결정'이라는 인상을 지을 수 없지만 결정은 이미 지난해 가을학기에 나 있었다고 한다.

최근 나온 조셉 커먼의 <음악을 생각한다>(궁리 펴냄)를 우리말로 번역한 최 교수의 부인인 음대 채현경 교수가 울산대에서 음악대학 학장을 하다가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긴 후 여성계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했던 남편도 옮기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농반진반의 제의가 결국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러나 올 초 공식 발표 전까지 보안을 지켜야 하는 그는 여러 차례 난처한 지경을 겪어야 했다. 특히 서울대 홍보부로부터 서울대 홍보영화의 엠시로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그 사실을 숨기고 고사하느라 적잖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기술은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기초과학 지원하라

최재천 교수가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옮기는 데는 연구 환경과 지원체계가 큰 작용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이화여대는 최 교수에게 330평방킬로미터 규모의 실험실과 165평방킬로미터 규모의 영장류 사육관찰실 등을 지원하며 '통합행동-생태학연구소'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행운아(?)라는 생각에서 작금의 이공계 위기에 대한 해법을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 최 교수는 지난번 새 단장한 KBS의 '과학의 향기'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말했었다며 정부의 지원제도에 대한 개선부터 촉구했다.

▲ "알면 사랑한다"는 신념을 가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 조성일
"정부부처 중 과학기술부가 있는데, 사실 우리 정부의 예산 중 기술 쪽에 90%가 가고 과학에는 10%에 불과합니다. 국민총생산액 대비 연구비 비율이 선진국 못지않다 이렇게들 얘기하는데, 총액이 중요합니다. 좀 과장하면 과학기술부 예산 중 반은 기술, 반은 과학 이렇게 배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줄어든 기술 분야의 투자비는 기업이 적극 나서서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지원보다 삼성의 과감하고 전폭적인 투자의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최 교수는 자신이 미국에서 돌아올 무렵인 10여 년 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지가 한국특집을 다루면서 했던 조언을 상기해보자고 했다.

"네이처는 한국에도 이젠 세계적 기업이 나왔다면서 국가가 국민 세금으로 기업을 도울 필요가 없다, 대신 그 돈은 기초과학에 지원하고, 응용과학은 기업이 투자하게 하라, 이런 내용이었는데, 10여 년 전의 제언이었지만 지금도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교수 사태, 안타까운 일

개미와 벌, 까치 등 동물의 사회적 행동과 인간의 행동 비교 연구로 유명한 최 교수는 과학도 실험실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과학적 진실이 사회적 진실과 통해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그런 그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면 그가 이번에 개정판을 낸 책의 부제를 '생태학자의 세상보기'라고 단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황우석 교수 사태로 불거진 과학과 윤리 문제에 관심이 많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와 만나 인문학과의 소통을 시도한 <대담>(휴머니스트 펴냄)의 작업에서도 알 수 있다. 이대에서 마련한 연구실 한 켠에 그런 소통을 위한 '통섭원'을 마련하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최 교수는 과학 윤리 문제는 인문학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과학자들 스스로 챙겨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책도 함께 냈던 인연을 내세워 황우석 교수 문제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했다. 한참을 머뭇하던 최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과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전제하면서 이젠 이런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황 박사는 과학자라기보다 기술자 쪽에 가까운 분인데, 우리가 그를 불편한 자리에 올려놓고 엉뚱한 기대와 반응을 보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습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첫 기자회견을 하던 날 아침 일찍 서울대 수의대로 황 교수를 찾아갔었다고 했다. 책을 함께 낸 동갑내기여서 무척 친한 사이로들 알고 있는데,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서 최 교수는 안타까움에서 만나야겠다고 생각돼 그날 거길 갔었다고 했다. 그러나 황 교수가 출근하지 않아 만나지 못한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모만 남기고 서둘러 나왔고, 텔레비전을 통해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고 "저건 아닌데"하는 아쉬움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를 구속하는데서 나옵니다. 모든 걸 털고 가시지요. 그리고 다시 일어서면 아마 우리는 당신 뒤에 설 것입니다."

인생을 이모작 하라

청년 시절에는 여자 친구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면 감히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전화를 거느냐고 화를 낼 만큼, 어린 시절에는 결혼한 이모가 한집에 살면서 늦잠 때문에 출근하는 이모부를 배웅 못하는 것을 보고 당장 일어나 이모부를 배웅하라고 안달할 만큼, 가부장적 기질을 타고 났던 그가 성평등주의자가 되었던 것은 동물을 연구하면서부터라고.

최 교수는 요즘 '인생이모작론'을 전파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같은 제목의 책까지 내면서 그가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겪어야 할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고령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0년이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49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되면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15세 미만의 어린이 인구를 앞지르는데, 여기에는 노동인구의 절대 부족이라는 함정이 있다는 것.

그래서 최 교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번식을 멈춘 후에도 계속해서 삶은 영위하는 별난 동물인 인간의 고령화 문제에 대한 생물학적인 대안으로 '인생이모작'을 내놓은 것이다.

인생이모작이란 그동안 번식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번식 후기에는 덤으로 엉거주춤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던 것을 이젠 번식기처럼 똑같이 중요하게 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00세 시대가 멀지 않은 만큼 50살까지 제1인생기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시기라면 나머지 50년인 제2인생기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기라고 말한다.

애초 돈 버는 재주가 별로 없어 주변에서 노후 걱정들을 많이 해주는데, 스테디셀러 북 10여권만 쓰면 노후 준비가 되지 않겠느냐며 최 교수는 '알면 사랑한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서너 권의 스테디셀러 북을 썼으니까 이 희망사항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30분 이상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약속자를 만나기 위해 기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이 닭을 낳는다 - 생태학자 최재천의 세상보기

최재천 지음, 도요새(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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