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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로 벚꽃
ⓒ 김규환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 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 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 밤이었다

황지우 시인은 '수은등 아래 벚꽃'이란 제목으로 벚꽃을 그렇게 노래했다.

봄밤에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 나온 벚꽃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벚꽃을 우리는 너나없이 즐기고 있다. 4월 진해군항제를 시작으로 온 나라에서 벚꽃잔치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벚꽃잔치는 진해군항제와 벚꽃축제, 전군가도 벚꽃마라톤축제, 서울랜드 왕벚꽃축제 등 30여 개 정도로 보인다.

이렇게 온 나라가 벚꽃으로 떠들썩한 것이 4월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벚꽃잔치를 꼭 벌여야만 할까? 겨레의 자존심 차원에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벚꽃의 꽃말은 결백, 정신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장미과에 딸린 갈잎 큰 키 나무(납엽교목:落葉喬木)로 키는 20미터가량 자라고, 잎은 끝이 뾰족한 길둥근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4∼5월에 분홍색 또는 흰색의 다섯 잎 꽃이 우산 모양으로 피며, 바람이 불면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수많은 꽃잎이 떨어져 아름답다.

벚꽃의 `벚'은 버찌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일본벚꽃(Japanese Cherry)이다. 7월에 버찌라고 하는 열매가 검붉게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고 민간에서는 열매와 줄기를 진통, 심장염, 피로회복, 치통, 대하증 따위에 약으로 쓴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한라산이 원산지인 왕벚꽃은 우리 토종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수입하여 개량한 산벚꽃이다.

일본에는 벚꽃의 전설이 있다. 산의 신 오오야마즈미꼬또와 들의 신 구사노히메꼬또 사이에 태어난 노고하나 꾸야히에노미꼬또는 니니기노미꼬또에게 시집을 가기 전까지 꽃의 궁전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아버지의 명령으로 후지 산 꼭대기에서 내려와 종자를 뿌렸는데 거기에 안개처럼 많은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나라꽃인 벚꽃

▲ 일본의 벚꽃전선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본하면 사꾸라(さくら:벚꽃)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벚꽃은 일본이 여러 원산지 중 한 나라이며, 특히 산벚꽃은 일본 본토의 북방을 제외한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벚꽃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어디까지나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의 워싱턴에 피는 벚꽃은 향기가 없는데 반해 일본의 산벚꽃은 향기가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결혼식장에서 손님들에게 벚꽃차를 주기도 하는 등 경사스런 날이면 어김없이 벚꽃 향기를 즐기곤 한다. 결혼식. 특히 신사에서 식을 올릴 때는 탕(湯,さくらゆ:소금에 절인 벚꽃잎을 더운물에 넣은 것)을 마시는 풍습도 있다고 전한다.

또한 일본에는 '꽃은 벚꽃이요, 사람은 무사'라는 말이 있다. 무사에겐 어떤 일을 당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요구되는데, 일본 사람들은 주저함 없이 지는 벚꽃의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다움으로까지 표현한 것인가 보다.

또 일본에는 '하나미(花見:はなみ)'라는 말도 있다. 하나미는 꽃구경, 특히 벚꽃 구경을 말한다. 벚꽃이 피면 날을 정하여 식구나 친구와 함께 벚꽃 나무 아래에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이야기도 하며 봄날을 즐긴다고 한다. 벚꽃 계절이 되면 하나미로 이름난 공원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성황을 이룬다. 특히, 도쿄 우에노 공원은 벚꽃이 활짝 필 때 24시간 문을 여는데, 등불을 밝히고 바라보는 밤 벛꽃놀이(夜櫻:よざくら)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단다.

또 4월이 되면 일본의 일기예보시간에는 으레 <벚꽃전선(さくら前線)>에 대한 예보가 나오는데, 그 날짜에 벚꽃이 어디쯤 피었나 하는 이야기가 된다. 도꾜는 4월 둘째 주 정도면 벚꽃이 핀다고 한다. 그리고 도꾜에서 벚꽃의 개화를 판가름하는 것은 신주꾸(新宿區)의 정국신사(靖國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에 있는 벚꽃 나무가 그 기준이 된다. 이렇게 볼 때 벚꽃놀이는 일본 사람들의 전통적인 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사람들은 매화, 난을 사랑했으며,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꽃놀이를 갔어도 벚꽃은 없다. 벚나무는 꽃이 아니라 껍질을 벗겨 활의 재료로 사용하였을 뿐이다. 옛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던 벚꽃을 즐기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하나미(花見)'라 불리는 그들의 문화가 전해지면서부터인 것이다.

일본 국화 벚꽃 속에서 충무공 정신 기리는 군항제를?

▲ 밤에 불빛에 비친 벚꽃은 언뜻 함박눈처럼 보인다
ⓒ 이종찬
1910년 한일병탄이 된 이후 일본총독부는 문화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일을 표 나지 않게 은밀히 추진했다고 한다. 그것은 모든 조선 사람들이 조선 정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일로서 조선말과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 성으로 창씨개명을 하는 것, 그리고 한반도에서 무궁화를 모두 없애고 벚꽃으로 바꾸어 심는다는 계획이었다. 이 세 가지 일은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1906년경 진해와 마산 지방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심기 시작한 벚꽃은 점차 온 나라를 차지해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의 나라 왕궁인 창경궁에다 동물원을 만들고, 벚나무를 줄줄이 심어 겨레의 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 일본총독부다.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 때문에 언론들이 떠들썩해 진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이 땅 곳곳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벚꽃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해마다 진해는 벚꽃놀이 인파와 차량으로 홍역을 치른다. 3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몰려드는 이때 진해 시내는 물론 가까이 있는 마산과 창원까지도 교통이 마비되어 버린단다.

꽃을 좋아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진해 등 몇몇 곳의 벚꽃은 우리의 토종 왕벚꽃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의 문화 식민지를 위해 심었다고 하며, 일본 사람들이 벚꽃을 끔찍이 좋아한다니 다시 한번 생각할 일이 아닐까?

더구나 충무공을 기리는 군항제에서 벚꽃잔치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터이다. 왜적을 무찌르고, 이 땅을 지켜낸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자는 행사가,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벚꽃이 흩날리는 속에서 열리는 기이한 풍경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겨레신문 2005년 4월 5일 자를 보면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벚나무의 종류는 왕벚나무, 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 등 20여 종류에 이른다. 그러나 생김새가 비슷비슷하여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이들은 너무 닮아서 오랫동안 식물분류학을 공부한 전문가도 헷갈린다. 따라서 우리나라 원산인 제주도 왕벚나무만을 골라 심어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일본의 '사쿠라'로 보일 따름이다.

결국, 온 나라를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벚꽃 천지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구차한 원산지 논리로 벚나무 심기를 고집하지 않아도 우리 땅에는 아름다운 꽃나무가 얼마든지 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미선나무를 비롯하여 이팝나무, 노각나무, 개살구나무, 야광나무 등은 결코 벚나무에 뒤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개발되지 않았을 뿐이다."

1970년대 초 국제무대에 일본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가리켜 뉴욕타임스는 '벚꽃이 다시 핀다'라고 했다고 한다. 일본이 군국주의 역사관으로 다시 벚꽃을 피게 한다면 결국 누구를 이롭게 할까? 우리는 그저 개인이 벚꽃을 좋아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온 나라가 그것도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혈세를 들여 잔치를 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면서 우리 국민 모두는 흥분했다. 하지만, 흥분하기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겨레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무분별한 '벚꽃 사랑'이 그들의 역사왜곡을 부추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벚꽃축제 대신 우리 고유의 진달래 화전과 꽃놀이를 하면 어떨까?

▲ 벚꽃을 따면 사랑이 깨진다?
ⓒ 이종찬
"벚꽃 아닌 눈,
만산 꽃보라 눈보라 구름보라.
실성을 넘어선 기쁨, 지나쳐선 슬픔.
머흐는 흘러가는 구름보라.

부신 그늘은 시러럼,
만산 좌그르르 눈보라 꽃보라 구름보라.

실성했다 꽃나무 모두는 실성했다.
이젠 우리가 우리를 새롭게 알 때"(벚꽃만개/윤부현)'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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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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