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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원당은 약간 경사진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앞에서 보면 위풍이 느껴진다.
ⓒ 정윤섭
해남윤씨가의 시조인 존부(存富)로부터 시작하여 문헌상에 처음 나타난 중시조 광전과 그의 아들 단봉·단학이 모셔져 있는 곳이 한천동 영모당이었다. 이에 비해 이들 해남윤씨가들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곳이 바로 이웃 마을인 강진군 도암면 강정리 덕정동(德井洞)이다.

강정리는 강진에서도 해남과 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병치재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해남이다. 이곳에 터를 마련한 해남윤씨들은 번성하여 각지로 흩어져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데 그 중의 한 일파가 해남으로 건너온 어초은 윤효정이다.

이곳 덕정동을 찾아가려면 큰 도로를 따라 가다가 해남윤씨 비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작은 언덕길을 하나 넘어서야 한다. 논길 옆으로 작은 개천을 따라가면 추원당 입구에 연못이 나온다.

인공적으로 조영한 것 같지 않아 연못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지만 어김없이 이곳도 풍수적 원리가 반영된 연못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곳 덕정동 또한 이웃 한천동 영모당처럼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은 작은 산을 배경으로 골짜기 여기저기에 묘역과 제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 추원당 입구에 자리잡은 연못 또한 지형을 이용하여 조영한 것으로 보인다.
ⓒ 정윤섭
덕정동 추원당(追遠堂)에는 어초은 윤효정의 조부인 사보(思甫)와 아버지 경(耕)이 모셔져 있다. 또한 사보와 같은 형제였던 사서(思瑞)의 제각도 덕정동 입구에 있다. 주변에는 어초은 윤효정의 형제들인 효인(孝仁), 효의(孝義), 효례(孝禮), 효지(孝智), 효상(孝常), 효원(孝元)의 무덤과 제각들이 흩어져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영역에 자리 잡은 덕정동은 가히 제각들의 동네처럼 느껴진다.

해남윤씨가를 일대 명문가로 기틀을 확립한 어초은 윤효정은 이곳 도암면 강정리 덕정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추원당 옆에는 경(耕)의 묘역이 있다. 그런데 이곳 경의 묘역에는 보통 몇 대의 무덤들이 윗대에서부터 나열되어 있는 것에 비해 경의 묘만 달랑 있다.

광전으로부터 봉사조(제사를 받들기 위한)로 노비를 물려받은 단학은 사보와 사서 두 형제가 있었는데 사보는 종(種)과 경(耕), 묘 3형제를 낳았다. 그런데 해남윤씨가의 족보를 보면 이중 둘째 아들인 경의 손들이 대를 이어 주류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아들인 경은 7형제를 두었는데 이들 형제들이 각 처로 퍼져 나가 파를 형성하고 번성해간다. 이들 형제 중에서 막내아들인 윤효정이 해남으로 넘어와 재지사족의 기틀을 탄탄히 다짐에 따라 '해남윤씨'라는 본을 얻기에 이른다.

▲ 윤효정의 아버지인 경의 묘역
ⓒ 정윤섭
고산이 건립한 추원당

추원당은 이곳 해남윤씨 제각의 본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한천동의 '영모당'과 함께 제각의 위용을 잘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영모당이 거의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해 이곳 덕정동의 '추원당'은 경사진 지형에 본당인 추원당을 중심으로 행랑채와 바깥 행랑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영모당이 정면에서는 그 위용을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에 비해 약간 경사진 지형에 자리 잡은 추원당은 앞쪽에서 보면 그 위용이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추원당의 본당은 건물 뒤에서 보면 새삼 우리나라 건축물의 특징이기도 한 처마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부석사 무량수전을 연상케 하는 겹처마팔작지붕의 구조와 처마선이 아름다워 제각의 위풍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추원당은 뒤에서 보면 겹처마팔작구조의 처마선이 날렵하게 느껴진다.
ⓒ 정윤섭
추원당이 만들어진 것은 고산 윤선도와 관련이 깊다. 그래서일까 자연조영의 마술사(?) 고산이 관여한 것이어서인지 어디를 보아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 고산은 해남윤씨 덕정동파의 직계선조인 통찰공 윤사보와 병조참의 윤정을 향사하기 위해 1649년(인조 27) 자신이 주축이 되어 추원당을 건립하였다. 이 추원당이 건립되기 이전인 1635~1636년 사이에 윤선도는 당시 성산현감으로 있으면서 직계선조인 6대조 사보와 5대조 윤정에 대한 향사를 도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건립 당시 추원당의 규모는 5칸이었으며 창건 후 중수는 1781년(정조 5)과 1936년에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현재도 그 원형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팔작지붕이며 지붕 네 귀에는 활주를 세웠다. 그리고 행랑채는 안쪽으로 트인 ᄃ자형 건물로 중앙으로 1칸 솟을대문을 두어 출입구로 하고 그 양쪽으로는 같은 구조로 대청·방·정지 순으로 배치하고 있다.

▲ 추원당 현판
ⓒ 정윤섭
석축을 쌓아 단을 만들고 들어선 추원당은 통간(원룸)식의 강당으로 되어 있는 단순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추원당'이라는 현판의 크기가 건물에 비해 다소 커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추원당은 17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건립경우나 운영에 관련된 기록이 비교적 충실한 곳으로 주목되고 있다. 특히 17세기 중반은 조선사회의 친족조직이 변모하던 시기였고 그 양태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앞서 소개한 영모당의 건물 구조 및 배치 등과 추원당이 거의 비슷하지만 건립시기는 추원당이 영모당보다 40여년 앞서 이 지방 제각건축의 전형이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해남윤씨 계파와 족보목판본

현재 해남윤씨는 8개의 파가 있다. 중시조 광전의 두 아들인 단봉과 단학 중 맏아들인 단봉(丹鳳)의 후손인 장파(長派)와 그 동생 단학(丹鶴)의 아랫대에서 갈린 죽사동파(竹寺洞派), 지석파(支石派), 부춘파(富春派), 항촌파(項村派), 용산파(龍山派), 어초은파(漁樵隱派) 또는 연동파, 충남파 등이 그 나누어진 파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임관(任官)을 내고 족세(族勢)가 번성한 파가 가장 마지막 아들인 윤효정의 어초은공파이다.

추원당에는 지난 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된 해남윤씨 족보목판 93매가 보관되어 있다. 숙종 28년(1702년) 윤선도가 주축이 되어 추원당을 건립하면서 문중 결속과 친족유대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70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는 해남 윤씨 족보목판은 한 문중의 동족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당 시대 사회 구조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제작 시기가 친족 변화의 과도기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족보의 내용은 부계친과 동일하게 외손도 모두 기록하고 있고 자녀를 선남후녀가 아닌 출생 순위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적자와 서자를 차별 없이 그대로 기록하면서 외손의 경우 성씨를 기입하여 이름만 있는 본손과 구분하였다.

외손으로 본손의 사위나 며느리가 된 경우 또는 본손이 외손의 사위나 며느리가 된 경우는 서로 찾아볼 수 있도록 항렬을 첨기하였다. 이러한 족보의 양식은 해남윤씨 족보가 간행되던 1702년까지 조선 전기의 관행을 지켜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족보는 숙종(1675~1720)년간에 이르러 많은 씨족들이 족보를 만들게 되었는데 해남윤씨의 족보도 숙종 25년 임오년(壬午年, 1702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임오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임오보(壬午譜)라고 한다.

<해남윤씨문헌> 권지1에는 생원 나두동(羅斗冬)이 집(輯)한 해남윤씨 보략이 나와 있다. 이곳에는 금남 최부, 어초은 윤효정, 임수(林秀)등이 모두 호장직의 해남정씨 사위가 되었으며 해남정씨는 당시 해남지역의 향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윤효정의 형인 효원을 모신 덕유재의 쌍어문이 이채롭다.
ⓒ 정윤섭
제각의 대문에 웬 물고기

이곳 덕정동에서 재미있게 살펴 볼 수 있는 것이 어초은 윤효정의 바로 윗형이기도 한 효원(孝元)의 제각이다. 추원당 바로 옆에 있는 제각인 덕유재(德裕齋)의 출입문 문간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덕유재 현판 아래에 마주보고 그려져 있는 이 두 마리의 물고기는 바다와 가까운 이곳 강진땅의 어떤 설화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곳 서남해 일대에는 오래전부터 바다와의 교류를 말해주는 설화나 전설들이 사찰과 포구 등에 전해져 오는데 김해의 김수로왕과 관련된 허황후 설화의 '쌍어문'처럼 이곳도 바다나 물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우기 효원의 바로 아랫동생인 효정의 호가 물고기와 인연이 있는 어초은(漁樵隱)인 것을 보면 이러한 연관성은 더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게 한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에는 연꽃이 그려져 있다. 연 애호가이기도 하였던 고산, 녹우당이 있는 마을이름이 백연동(白蓮洞)이기도 하는 등 유독 연(蓮)과 관련된 이름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집안의 독특함이 묻어난다.

▲ 추원당의 행랑채 건물
ⓒ 정윤섭

덧붙이는 글 | 해남윤씨가의 5백년 역사속으로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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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지역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연구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