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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겨울 어느 날. 아는 후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강아지를 자꾸 때려요… 더는 못 키우겠어요…."

그때 섬광처럼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생각. 이건 아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늦은 밤 후배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내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혹시 나에게 그 개를 떠넘기면 어떻게 하지? 내가 키울 수나 있을까?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차는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하얀색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내가 그다지 개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동네를 지날 때 큰 개가 짖는 소리만 들어도 무서워 도망치곤 했으니까. 그 개는 유독 아버지를 잘 따라서 아버지가 퇴근할 시간만 되면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아마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

우리 집 다락방 작은 창문 옆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을 때 아버지는 비둘기가 새끼를 가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우리가 집안에서 큰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 아버지였으니 그 개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쥐가 많아서 쥐약을 자주 놓곤 했다. 어느 가을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며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개가 쥐약이 섞인 먹이를 먹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개는 마당 한구석에 비스듬히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동물병원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였으니 우리는 어찌할지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저녁때쯤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 개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아버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꼬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사태를 파악하신 듯 아무 말 없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개의 눈에 맺힌 눈물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 우리는 개를 묻었다. 그리고 이후 어떤 동물도 키우지 않았다. 다시는 그 슬픈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12시가 다 되어갈 시간. 후배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가니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태어나서 한번도 털을 깎은 적이 없는 듯 눈을 온통 가린 털이 여기저기 엉겨 있었다. 후배는 곧장 상황 설명을 했다.

"강아지가 말을 안 들어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게 남편의 생각인데… 남편이 강아지를 때릴까 봐 무서워서 밖을 못 나가겠어요…. 더는 이 개를 키우기가 힘들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무슨 반문을 할까. 인간이 하는 가장 손쉬운 변명이 아닌가. 나는 아무 말 없이 수표 한 장을 던져 놓고 강아지를 안고 그 집을 나왔다. 주인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걸 깨달은 개가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마음 속으로 외칠 수밖에. 너를 평생 책임지마. 약속할게.

서로 언어가 통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물며 인간과 개 사이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개를 이해하기란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내가 오랜 시간 집을 비울 수 없다는 스트레스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술자리가 오래 지속되면 내 머릿속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개 생각에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곤 했다.

퇴근길. 집이 저만치서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거의 미친 듯이 뛰어 집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도 바로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지려 놓은 배설물들을 치워야 하고 오물이 묻은 발도 씻겨야 한다.

하지만 발이 더러워졌다고 야단을 칠 수는 없다. 돌아온 주인이 반가워서 뛰다가 그런 것인데 어쩌랴! 장기적인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아플 때 드는 엄청난 병원비에 속이 쓰릴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에게는 직업도 가족도 취미도 친구도 있지만 녀석에게는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5년. 이런저런 인연으로 개를 좋아한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너무나 슬픈 사실은 키워진다는 것이 버려진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픈 개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늙어 여기저기 아프기만 하고 재롱도 부리지 못하는 개는 아무런 매력도 없을 것이다.

일에 쫓겨 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형편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이 개를 더는 책임지기가 힘들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껴주고 함께 살기 위해 집으로 데려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디 사랑에 즐거움만 있을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간혹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대단한 애견가네~' 애견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애견가란 말은 자신의 애완견만 마니아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기호화되어 있다. 나는 이것이 불편할 뿐이다.

내 눈에는 값비싼 순종개나 도살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하늘을 처음 보게 되는 누렁이나 그저 똑같은 개로만 보인다. 잡종과 순종. 잘생긴 개와 못생긴 개란 인간의 시각으로 나눈 편견일 뿐이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달라도 인간이 평등하듯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공평한 자신만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 자리를 인간이 뺏을 권리는 없다. 이 지구는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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