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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시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리그 한국 대 일본전에서 2대 1로 승리한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를 든 채로 운동장을 돌면서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2006년 봄 대한민국은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갔던 '이상한 나라'같다.

WBC(월드베이스클래식)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한국은 격분했다. 미국을 마치 경기를 방해하기 위해 알몸으로 운동장에 뛰어든 스트리커처럼 봤다.

오직 미국만을 위해 만든 이상한 규정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3번이나 경기를 해야했다. '월드베이스클래식(WBC)'이 아니라 'EAP(이스트-아시아 퍼시픽)한일 리그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WBC의 미국 행태보다 더 심각한 일이 지금 한미동맹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야구 일방주의에는 침을 뱉던 이 나라는 한미동맹에서 무자비할 정도로 관철되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찬양 일색이다.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받아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동북아 기동군으로 변했다.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22일 "주한미군이 제3국(중국)을 상대로 활동한다면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전략적 유연성 실현을 위해 주한미군 기지가 오산과 평택으로 옮겨가는데 이 비용 대부분을 한국이 떠맡기로 했다. 원래 미국 부담이라던 오염된 미군 기지의 정화비용도 우리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그 비용이 5억달러다.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 비용으로 우리 국민의 세금에서 나갈 돈이 50억달러가 될지 80억달러가 될지, 아니면 100억달러가 넘을 지 정부는 아직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일미군 기지 이전 비용 100억달러 가운데 일본 부담은 75억달러다.

경제규모가 한국의 8배인 일본도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앓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문제 없단다. 정부가 증세를 시도하는 이유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이 아니라 미군기지 이전 비용 때문이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연말정산 공제 혜택을 약간 줄이겠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포털사이트는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로 도배됐다. 그러나 혈세가 얼마나 쓰일지도 모르는 미군기지 재배치 문제에는 백지 수표라도 써줬는지 무관심하다.

FTA 협상을 하기도 전에 한국은 스크린쿼터 등을 미국에 상납했다. 실체도 불분명했던 '기생충알 중국산 김치'에 비명을 질렀던 것이 엊그제인데 광우병 재발 우려가 있는데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방침이다.

자기 집 인근에 주한미군도 아닌 한국군 부대가 옮겨온다고 해도 "보상금은 필요없다"며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는 이 나라에서, 우리 군대도 아닌 미군 기지터를 만들기 위해 동원된 포클레인에 쫓겨나는, 평생 농사만 지어 어디 갈 곳도 없는 평택 대추리의 할머니·할아버지 등 뒤에는 "돈 더 받으려고 버틴다"는 악담이 쏟아진다.

민족 자주의식은 고구려 멸망 이후 최고?

▲ 시민단체와 학생단체 회원들이 '주한미군 철수' '한미일 군사동맹 파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박준영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야구경기에서 한국이 미국에 이긴 것을 두고 농담성 논평을 했다가 사대주의자로 몰려 '무조건 사과'한다며 백기를 들었다. 이 정도면 민족 자주의식은 고구려 멸망 이후 최고인 것 같다.

WBC에서 4강에 들었다며 병역비리에 연루됐던 선수까지 포함해 11명에게 병역면제 혜택이 돌아갔는데(경기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촐싹댄다는 비판이 있었다),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점을 폭로했던 청와대 행정관에게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아래 벌어지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좌파 운동권 출신이 즐비하다는 열린우리당은 무슨 천벌받을 죄라도 지었는지 비운동권 출신인 최재천·임종인 의원 등을 빼고는 조용하다.

되레 '한미동맹의 재정립을 위한 위대한 선택'이라는 한나라-열린우리당의 한 목소리만 들린다. 이것이야말로 정권 나눠먹기와는 상관없는 정책 공조를 통한 '아름다운 대연정'이다.

WBC의 엉터리 규정 때문에 결국 일본이 우승했다며 약이 잔뜩 오른 대한민국은 어찌된 일인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동북아의 새끼 맹주로 옹립하려는 미일 동맹, 그리고 그 밑에 한미동맹을 졸병으로 거느리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스포츠와 정치는 다르다는 반론이 나올 것 같다. 스포츠는 자체 룰에 따라 움직이고 국제정치는 힘에 따라 결정된다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힘없는 쪽은 더 신중하고 눈을 번뜩이며 우리 이익을 지켜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핵으로 무장한 고래(미국과 중국) 싸움에 부엌칼 만 든 한국(새우)이 등 터지기로 작정하고 끼여드는 것 같다.

야구경기에서 편파 판정으로 져봤자 몇 시간, 길면 며칠 기분 나쁘면 끝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편파성에 순응하면 우리 삶의 터전이 쑥대밭 될 뿐이다.

실종된 동북아 균형자론 우연인가 필연인가?

▲ 2003년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국정주제 토론회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수도권의 비젼과 역할"에 참석한 노무현 당선자가 보고를 받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초 정부는 동북아균형자론을 들고 나왔다. 보수진영은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법석을 떨었다. 보수적 인사들에게 동북아균형자론은 '공산당 선언'의 첫 구절을 연상하게 했을 지도 모른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전 유럽을 떠돌고 있다'는 유명한 그 첫마디 말이다.

물론 이라크파병 등에 실망했던 진보진영은 정부가 정신 좀 차린 것으로 생각했고 기대했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동북아 균형자론은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시아와 세계에서 민주주의·시장경제·자유 및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 증진을 위한 한미동맹'(지난해 11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이 차지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과거의 '방어동맹'에서 '가치동맹'으로 업그레이드 됐다지만 그 내용이 조지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확산'과 비슷하다는 점은 기분이 찝찝하다는 차원을 넘는다.

한미동맹의 강화를 선언한 지 불과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한국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기로 했고, 올 1월에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줬다.

올 1월초까지만 해도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해서 "북한을 두둔한다"고 비판받던 정부는 요즘에는 "북한이 위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있다, 중국도 미국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며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자신의 목에 방울 매단 노무현 정부

'동북아'라는 단어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단어였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국민소득 몇만 달러도 결국 강대국이 득실대는 '동북아'에서 한국이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처음 출범할 때 국정 슬로건을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라는 말을 내세웠다. 이후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부제만 약간씩 달리해 양산되던 '동북아'시리즈는 지난해 말부터 자취를 감췄다.

'동균이(동북아 균형자)'가 집을 나간 것은 분명한데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동균이'의 운명을 출생때부터 예상한 사람은 비록 그 숫자가 적었지만 있었다. 여러 비판이 있었지만 핵심은 간단했다.

"진짜 동북아 균형자를 하고 싶으면 소리내지 말고 조용히 하라, 뭣하러 큰 소리 내서 다른 나라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더 나아가 동북아 균형자론은 실제 목적이라기 보다는 2005년 4월 재보선을 앞둔 지지자 결집용이라는 냉소로 이어졌다.

쥐를 잡겠다고 송곳니를 자랑하던 고양이가 제 모가지에 스스로 방울을 달고 먼저 요란하게 흔들어댄다면, 애초 쥐를 잡을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지난친 음모론일까? 지난해 재보선 뒤 동북아 균형자론은 시들해졌고 곧 종적을 감춘것을 보면 근거는 충분하다.

조중동과 보수세력의 막강한 화력지원

▲ 서울 용산미군기지. 주한미군은 이 기지를 포함해 한강 이북의 주한 미 2사단 기지 이전,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른 군소 기지 통폐합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지 이전비용을 포함해 오염 정화 비용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동맹 만세 삼창을 부르며 미국의 일방주의를 수용해나가는 앞 길의 장애물은 조중동과 보수세력이 막강한 화력지원으로 제거해준다.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다 들어줬고 이 와중에서 입으로만 '자주'를 말할 뿐인데 조중동은 한미동맹 파탄설로 공격했다. 그런데 현 정부 초기 대북송금 특검부터 시작해 이라크파병·용산미군기지 이전·전략적 유연성·FTA 협상 등 모든 것이 미국과 보수진영의 희희낙락으로 끝나지 않은 일이 없다.

'한미동맹 파탄설'은 현 정부가 "그 때 그 일을 할 때 우리는 자주성이 있었다"는 알리바이로 이용됐을 뿐이다. 조중동과 이 정권이 한미동맹을 놓고 싸우는 장면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벌이는 '사랑 싸움' 저리 가라다.

항상 '쨍그랑' '우지근' 소리가 요란하다. 컵도 깨지고 창문도 부서지고 세간살이가 남아날 것 같지 않은데 나중에 보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 "이번 건은 정부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조중동의 칭찬으로 끝난다.

자주파의 수괴라며 뿔달린 도깨비 마냥 묘사되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대학시절 짱돌 한번 던져본 적 없던 외무고시 출신 정통관료 '탈레반 3인방'에 결연히 맞서싸운 '온건파'로 불리는 것은 코미디 월드컵이 있다면 최소 4강 감이다.

총리의 내기 골프에 걸린 100만원은 기를 쓰고 찾아낼 정도로 열성이던 보수진영이 5억달러짜리 쓰레기 처리비용(오염된 미군기지 정화비용)에는 면죄부를 준 것은 '이른바' 좌파 정권과 우파의 이상한 동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마이뉴스>와 '평화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이번에 '한미 동맹, 이제 득실 따지자'라는 제목의 특집 기획을 마련한 것도 동북아에서 현재 우리의 위치는 어떤 것인지, 한미동맹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미국의 일방주의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과연 한미동맹을 계속 유지할 만한 경제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고민해보기 위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미동맹 문제와 전문가들은 물론 관계 정부 부처 및 책임자들의 반론이나 기고를 적극적으로 받습니다. 많은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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