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권우성
'쾌걸 조로' 그리고 '프랑스 황제'. 지단의 별명들이다. 동료 티에리 앙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 대표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을 설명하는데 모자람이 없는 명칭들이다.

올해 독일 월드컵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인 지단이 당당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마지막 국제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와 같은 반열에 놓인 선수는 마라도나나 펠레, 그리고 디 스테파노 정도일 것이다.

지단의 힘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에 있다. 경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솜씨는 단연 최고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가 없다. 그는 빼어난 재간으로 감탄사가 나올 만큼 경기를 운영한다. 순식간에 수비에 가담하는 능력 역시 일품이다. 게다가 슛팅은 힘과 정교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호평하는 지단의 기복 없는 경기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고려해볼 때 그가 축구선수로서 영예를 누리고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지주(Zizou)'라는 애칭으로 널리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의 이런 뛰어난 자질은 큰 탈 없이 평온하게 자라났던 유년기에 어느 정도 싹트고 있었다. 사실 그는 축구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렸다. 1998년 월드컵, 2000년 유로, 2002년 유럽챔피언스리그컵, 1996년, 2002년 세계클럽컵을 거머쥐었고 이탈리아 유벤투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각 프로 리그의 우승을 일궈냈다. 자신이 수상한 개인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단의 위대함은 축구선수로서의 자질과 업적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국민의 인식을 바꿔 놓은 극히 드문 선수에 속한다. 그가 활약하기 전 프랑스 대표팀은 기교에 비해 강인함이 떨어졌기 때문에 늘 "뭔가 부족한" 팀으로 평가되었다. 1980년대 중반 프랑스 대표팀은 또 다른 이민자의 후손인 미셸 플라티니의 지휘 아래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1984년 유로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어진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뚜렷한 침체기에 접어든 프랑스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놀랍게도 4년 뒤인 미국 월드컵 본선에도 나가지 못하는 등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월드컵 예선 마지막 두 경기에서는 승점 1점만 추가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상대는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이스라엘과 적수라고 보기 어려웠던 불가리아였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뭔가에 홀린 듯 두 경기에서 내리 패하고 말았다. 그 여파로 대표팀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그 즈음이었던 1994년 8월 17일, 지단은 체코를 상대로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나선다.

이민자의 후예... 사회적 결속의 새 가능성 제시

지단은 프랑스 1부 리그 오세르의 미드필더인 마르탱을 대신해 투입되었다. 그가 체코를 맞아 그라운드를 밟은 순간 프랑스는 이미 예전의 팀이 아니었다. 그는 후반 종료 5분을 남기고 2골을 몰아쳐 2:2로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며 팀을 패배 일보직전에서 구해냈다. 그후 지단은 대표팀의 핵심선수로 자리 잡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은 물샐 틈 없는 수비를 자랑하던 브라질을 상대로 두 차례의 폭발적인 슛을 성공시킴으로써 프랑스가 그토록 갈망하던 우승컵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는 그로부터 2년 뒤 네덜란드에서 열린 유로 2000 대회에서 예술의 경지에 이른 솜씨를 뽐낸 지단을 앞세워 상대를 압도하며 결승에 올랐다. 유로 2000 본선에서 지단은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스페인과의 8강전, 포르투갈과의 4강전에서는 달인의 수준이었다. 결국 '지주'가 이끈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대표팀 동료들과 더불어 프랑스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은 다양한 이민자들의 후예였다. 그들의 출신지역은 유럽은 물론 프랑스령 과들루프 섬에서 뉴 칼레도니아, 세네갈, 가나에 뻗어 있었다. 지단은 프랑스가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 아래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대표팀이 자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우승을 일궈내자 공공연하게 인종주의를 선전하던 장-마리 르펜의 국민전선은 지지 기반을 잃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프랑스 '본토'의 많은 젊은 부부들은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지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다. 아랍-이슬람계 이름이 이민자 출신이 아닌 주류 프랑스인들의 후손에게 붙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네딘'은 고대 아랍어에서 '믿음의 성스러움'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던 일이었다.

그가 이룬 업적, 인간적 품성으로 더욱 빛났다

팬들을 열광시킨 지단의 네 경기

▲ 1998년 7월 12일 프랑스 생드니 경기장. 브라질과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극적인 2골을 작렬시키다. 프랑스 축구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꾼 경기

▲ 2000년 6월 28일 벨기에 브뤼셀. 포르투갈과의 유로 준결승에서 연장전 종료 2분을 남겨놓고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다. 상상을 초월하는 심리적 부담을 극복한 골

▲ 2002년 5월 12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레버쿠젠과의 챔피언스리그컵 결승전에서 환상의 발리슛을 쏘다. 챔피언스리그컵 역사상 최고의 골

▲ 2004년 6월 13일 포르투갈 리스본. 유로 2004 영국과의 첫 경기. 영국에 끌려 다니며 1:0으로 패색이 짙던 경기. 후반 종료 직전 환상적인 프리킥을 성공시켜 동점을 만든 후 추가시간 2분째 페널티킥을 꽂아 넣다. 침몰 직전의 프랑스를 극적으로 구해낸 2골


지단에게는 또다른 면모가 있다. 바로 그의 품성이다. 그가 이룬 업적은 인간적 품성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그라운드의 거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망각한 채 욕설을 앞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지단은 평정을 잃지 않는 고고한 자세로 다른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동료 호나우도와 함께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홍보대사로 일하며 매년 빈곤퇴치를 위한 자선경기를 열고 있다. '지단의 친구들'과 '호나우도의 친구들' 두 팀이 경기를 치러 수십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빈곤층을 위해 쓰고 있다. 그는 또한 신체 및 정신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돕는 프랑스 어린이 긴급구호단체(SOS Children France) 행사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해 후원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가족사랑 역시 각별하다. 1988년 AS 깐느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그는 급여 수표를 고스란히 부모님께 드렸다. 그 후 고향 마르세유 부근에 부모님께 집을 장만해 드렸다. 그가 성장기를 보냈던 라 가스뗄란 지역의 낡은 공영주택과는 다른 곳이었다.

지단은 어린 시절 친구이기도 했던 베로니끄와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잉꼬부부라 불릴 만큼 다정하다. 지단이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 베로니끄의 조언이 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탈리아 언론이 빈정댈 정도였다. 몸에 밴 기사도 정신은 그의 남성적 인기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1998년 월드컵 이후 전세계 여성들의 애정공세를 받을 때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들이 내가 결혼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지단은 겸손하다. 그는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없으며 온유한 성품으로 타인을 배려한다. 1999년 2월 필자가 그를 직접 만나보았을 때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선수였다. 그럼에도 그의 곁에 있던 필자는 조금도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그의 품성이 사회의 모든 계층으로부터 그가 사랑을 받으며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는 이유이리라.

지단은 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육체적 능력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독자들이여, 그 천부적 재능에 흠뻑 빠져 보시길. (*번역:이완기)
덧붙이는 글 | 아사드 알렉스 야와르 기자는 'OneEuropa NGO'의 설립 멤버입니다. 야와르 기자는 95년 이후부터 프리랜스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제작, 국제관계, 경제, 축구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6-03-22 16:5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사드 알렉스 야와르 기자는 'OneEuropa NGO'의 설립 멤버입니다. 야와르 기자는 95년 이후부터 프리랜스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제작, 국제관계, 경제, 축구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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