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브이 포 벤데타> 포스터
ⓒ 2006 워너 브라더스
<매트릭스>로 영화 팬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는 워쇼스키 형제. 그들이 <브이 포 벤데타>로 돌아왔다. 하지만 제작에만 참여했을 뿐, 직접 연출을 맡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2>의 조감독을 맡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오던 제임스 맥티그가 연출을 맡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만들기 전부터 준비했고 미래의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물이란 점에서 관객들에게 <매트릭스>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기에 직접 연출한 제임스 맥티그보다 제작자 워쇼스키 형제에게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진 후, 미국이 몰락한 2040년. 영국의 모든 이들은 철저한 통제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정부와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 누구도 세상이 잘못됐음을 깨닫지 못한다.

어느 날, 위험에 처한 이비를 V라고 불리는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 구해준다. V는 옛날,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사형당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현란한 입담과 무술솜씨를 지닌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그는 폭력과 압제에 맞서 세상을 구할 혁명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이비는 점점 V에게 이끌려 그의 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매트릭스>와의 비교는 태생적 운명

이 영화는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공동으로 창작한 동명 그래픽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V 역에는 <매트릭스>에서 워쇼스키 형제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휴고 위빙이, 이비 역은 나탈리 포트만이 맡았다. 또한 존 하트와 스티브 레아 등 성격파 배우들이 탄탄하게 뒤를 받친다.

특이한 것은 이 영화를 통해 휴고 위빙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면을 쓴 채 오로지 목소리와 몸짓으로만 모든 감정을 전달한다. 한편, 삭발투혼을 발휘한 나탈리 포트만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이비란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그녀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부터 고문을 버텨내는 강인함, 그리고 혁명에 동참하는 비장함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한다.

<브이 포 벤데타>는 태생적으로 <매트릭스> 시리즈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했다는 점을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이 영화 자체가 <매트리스>와 상당 부분 닮아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의 후광을 업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두 영화의 상황과 캐릭터는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정부의 철저한 통제 속에 살아가는 <브이 포 벤데타>의 상황은 기계에 의해 설정된 가상현실을 살아가는 <매트릭스>와 흡사하다. 또한 두 영화에서 혁명을 주도하는 V와 모피어스는 물론이고, 그들의 혁명에 동참하는 이비와 네오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 V는 강한 힘과 화려한 입담을 과시한다.
ⓒ 2006 워너 브라더스
지루하게 펼쳐지는 거창한 입담

V는 비판의식을 상실한 채, 정부의 선전문구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의 통치수단이자 매스미디어의 중심인 TV를 공격한다. 그는 TV 화면에 직접 나타나 국민들이 자신의 우매함을 깨닫고 혁명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그러나 방송국을 공격하는 과정에서의 화려한 액션도 결국은 TV를 통한 그의 설명을 듣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매트릭스>에서 보여 졌던 기발한 상상력과 액션장면은 약화됐고, 많은 대사와 고상한 입담은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하고 말았다.

많은 대사를 선호하는 워쇼스키 형제의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대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중앙형사재판소 파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영화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인용하고 고전 영화와 클래식 음악을 곳곳에 삽입하는 등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는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은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피의 복수를 부르는 V의 한계

V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의 상징인 형사재판소와 국회의사당을 공략한다. 이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공격함으로써 부패에 빠진 집단 전체를 겨냥하는 것이다. 비판의식을 상실한 채 독재정권의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살아왔던 국민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배달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광장에 모여든다.

국회의사당의 폭파는 부패권력의 몰락을 의미하며,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광장에 모여든 국민들은 자아 정체성 회복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V에 의해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V의 의도대로 움직여지는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바보스럽고 섬뜩하다.

독재정권을 향한 V의 감정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보다는 복수심에 가깝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피의 복수를 부른다. 이는 혁명의 정당성을 훼손시키고 영화는 설득력을 상실했으며, V의 원맨쇼를 통한 메시지 전달에는 한계가 있었다.
2006-03-21 11:3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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