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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박영희, 소설가 전성태, 사진가 김윤섭과 함께 <길에서 만난 세상> 낸 소설가 오수연.
ⓒ 조성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가 기획하고 시인 박영희(44), 소설가 전성태(37), 사진가 김윤섭(31)과 함께 <길에서 만난 세상>(우리교육 펴냄)을 펴낸 소설가 오수연(42)은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의례적인 사양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라크전 종군작가 오수연, 또 소설가 오수연의 요즘이 궁금하던 차 때마침 나온 책을 핑계 삼아 인터뷰하자고 끈질기게 치근댔다. 결국 오수연은 3월 14일로 날짜를 잡아줬다.

내심 지금 전 국민의 입에 회자되는 늦깎이 개그맨 고혜성의 유행어 "대한민국에 안되는 게 어디 있어!"를 외치며 서울 마포에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오수연을 만났다.

오수연은 기자와 만나자마자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숨기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언론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을 추진하고 있기에 미리 통성명이라도 해놓으면 나중에 여러 모로 쓸모 있겠다는 심산에서였다고 했다.

그래서 오수연과의 인터뷰는 약간의 긴장이 필요했다. 책 <길에서 만난 세상>과 이라크, 소설에 관해 미리 준비해간 인터뷰어(interviewer)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하면서도 자신의 숨은 의도를 군데군데 지뢰처럼 박아놓으려는 인터뷰이(interviewee). 그러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팽팽할 것 같았던 심리전은 당초 예상과 달리 그다지 어긋남이 없어, 사실 무척 싱거웠다.

어떤 논리로도 인권은 유보할 수 없다

"요즘 한창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성추행범에게도 인권이 있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있습니다'입니다. 인권은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입니다."

▲ 상반기 출간을 목표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오수연.
ⓒ 조성일
인권에 관한한 오수연의 생각은 단호했다. 오수연은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가면서 성추행범 처벌에 관한 라디오 대담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그런 사람은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아직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은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수연은 성추행범에게도, 사회적 파렴치범에게도, 사형수에게도 누구에게나 인권은 똑같이 있다고 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얘기하면 "우리가 그런 사람의 인권까지 지켜줘야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들 하는데, 그건 인권을 얘기하면 혹시 죗값을 덜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서 오는 견해차이라고 말했다.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죗값은 너무도 당연하게 물어야 한다고 오수연은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수연은 소설가 전성태가 <길에서 만난 세상> '민족주의의 또 다른 얼굴, 일본인 처' 편에서 말한 메시지를 덧붙인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당사국인 우리의 반일 감정도 엄연히 존재하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의 문제가 해결조차 안됐는데, 가해국 출신 소수자인 일본인 처의 인권까지 생각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인권 문제에는 선후가 없습니다. 일어나는 그 즉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오수연은 인권문제의 적은 경제논리, 민족주의논리 같은 인권에 우선하려는 논리들이라고 했다. 오수연은 인권은 유보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더 큰 화 부른다

오수연이 이라크 문제를 특별히 천착하는 것도 이런 인권 차원에서였다. 알다시피 오수연은 이라크전쟁 당시 민족문제작가회의가 이라크 현장에 파견한 종군작가였다.

"이라크에서는 지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내전을 벌이고 미군이 떠나면 당장 이라크가 자멸할 것처럼 말하는데, 미국이 이라크를 해방시켰습니까?"

오수연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더 큰 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했다. 무슬림 하면 우선 연상되는 이미지가 테러리스트인데, 이는 서구가 일방적으로 비하하고 범죄시했던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라며 오수연은 근대 이후 당하기만 하고 차별받는 가운데 살 길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자살 폭탄을 짊어지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무슬림 중에서 가정이 불우한 10대들도 있지만 여자, 엄마, 변호사처럼 도무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하는 오수연은 그들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 일어난 덴마크의 마호메트 만평 사태와 관련해서도 오수연은 마호메트도 만평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덴마크 사회의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고조돼 있던 점과 기독교 만평을 싣지 않는 등 차별이 불러온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오수연은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줄이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사실 오수연은 이라크에 다녀온 이후 이라크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상당히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지금도 앓고 있다고 했다.

"잠깐 가서 본 것만으로도 전 화병이 났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이슬람을 제대로 안다면 이렇게 매도하지는 않을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나 이런 것을 보고 미국 문화를 이해하듯 이슬람 영화나 문학과 같은 문화를 접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이런 교류가 많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상반기 출간 목표로 소설 쓰고 있다

▲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오수연.
ⓒ 조성일
오수연은 여전히 이라크와 함께 살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꼭 이라크 얘기를 하게 된다는 오수연은 이전처럼 세상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세계가 원만한 둥근형이 아니라 이지러져 보입니다. 그래서 이라크에서 도망갈 것이 아니라 차라리 끊임없이 더 깊이 파고들어 이라크와 함께 살아야 치유될 것 같습니다."

이라크를 다녀온 것을 계기로 가기 전과 다녀온 후 삶이 완전히 달라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오수연은 그 경험이 작가에게 결코 유리한 것만 아니라고 했다. 이라크를 다녀온 후 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아 이전의 오수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오수연은 그래서 이슬람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소설가로서 의무를 하려는 듯 상반기 출간을 목표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천착해오고 있는, 음식을 소재로 '왜 다른 생명을 죽여야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가 전부가 아니라면 분명 출구는 있을 것 같다는 게 오수연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작가가 꼭 소설만 써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소설이 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다큐나 르포도 소설가의 몫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세상이 보통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밥 먹고, 일하고, 텔레비전 보고 하면서 하루 일과가 지나가고 있어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은데, <인권>지 부탁을 받고 취재해보니 우리 사회의 밑받침이 참 허술하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모든 게 다 팽개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쯤에서 책을 낸 소감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창신동을 취재하고 나서 오수연은 모두 소박하게 살려고 하는데 세상이 보통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너무 쥐어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농촌 청소년 문제도 예외는 아니어서 죽어라죽어라 하면서 안간힘으로 버티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어제(16일) 대법원은 새만금 사업이 법적으로 문제 없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에서 이겼다며 '만세!'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텔레비전과 인터뷰하는 한 변호사의 승전가(?)가 오수연이 만났던 그 청소년들의 희망 없는 얼굴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수연은 눈앞에 보이는, 잘못된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도 살기 힘든데, 아니면 혹시 봉변당하는 것 아닐까, 또 보복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그럼에도 오수연은 그런 일과 맞닥뜨리면 주저하지 않고 온갖 간섭을 하다 봉변을 잘 당한다.

그러나 오수연은 고발하는 시민정신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공명정대해지고 부정부패가 방지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혼자라도 이런 일을 감수한다. 그래서인지 오수연이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이 쓴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에 인용했던 존 러스킨의 말을 책에 재인용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중 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럽고 힘든 일을 할 것인가? 만약 그와 같은 일을 한다면 보수는 얼마나 받을 것인가? 그리고 누가 쾌적하고 깨끗한 일을 할 것인가? 얼마의 보수로?"

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 우리교육(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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