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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1년을 맞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아직도 친일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이 미·일 동맹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매몰된 일부 한국 지식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 덕분에 우리 민족이 근대화될 수 있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또 전파하는 일부 한국 지식인들이 학계와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의 과거사 청산은 비단 '친일파 청산'이나 '역사 바로 세우기'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매몰되어 일반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일부 한국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엄정한 비판과 청산 작업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정부나 시민사회가 아무리 일제 과거를 청산하려 해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배후에서 이론적 역공을 가하고 수많은 일반 대중이 그에 현혹되는 한, 한국은 앞으로 수백 년 세월이 흘러도 과거를 청산하기 힘들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도 청산 대상

지금 그것을 명확히 청산하지 않으면, '제2의 한승조' '제2의 지만원' '제2의 김완섭'은 앞으로 얼마든지 '마음껏'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마다 아까운 민족적 역량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포털 사이트의 서버 공간까지도 축내게 될 것이다.

그럼, 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왜 비판받고 배척받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어떤 이론적 비판을 가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의 주장대로,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에 조선 경제가 성장하고 어느 정도 근대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의 성장률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또 그들의 말대로, 한국사회가 일제 식민통치의 피해를 다소 과장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어느 정도 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설령 피해자가 사실을 부풀린다 해도, 문제의 본질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지 '피해를 과장했다'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지식의 정확성 여부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문제의 본질은,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가 조선에서 근대화작업을 전개한 목적이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그릇된 가치판단을 하고 있다(근대화의 목적). 일반 한국인들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에서 산업을 일으킨 것은, 조선을 일본 자본주의의 하청으로 만들고 또 조선을 중국 진출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일반적 관념을 부정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아직까지 제기되지 않고 있다.

일제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은 '떼강도'의 예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떼강도'가 가정집에 침투하여 쌀통을 뒤지고 장롱을 뒤지는 목적은 바로 재물을 탈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떼강도'가 그 집 식구들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한다고는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일제가 조선의 '쌀통'을 뒤지고 '장롱'을 뒤져 근대화 작업을 벌인 것은 기본적으로 일본인들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지 결코 조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일제 덕분에 근대화되었으니 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그 근본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근대화 작업은 어디까지나 일본 자신을 위한 것

둘째,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의 근대화작업이 조선인들의 재산 처분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근대화의 방법). 조선인들은 조선 땅에 대한 천부적 재산권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조선이라는 국가권력의 소멸 여부와 관계없이 조선인들은 조선 땅과 그 자원에 대한 천부적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작업은 그 같은 조선인들의 천부적 소유권을 침해한 것이었다. 조선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혹은 그것을 무시하고 또는 그것을 억압한 상태에서, 일제는 조선인들의 재산과 자원을 침탈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그것을 바탕으로 근대화작업을 전개했다.

이는 가정집에 침투한 '떼강도'가 주인 허락도 없이 쌀통을 뒤지고 냉장고를 뒤져 음식을 장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설령 '떼강도' 중의 전직 요리사가 그 재료를 이용해서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그들이 남의 재산 처분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이 아니었으면 조선인들이 그 정도의 근대화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선인들이 근대화 작업을 잘 하든 못 하든 간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들의 문제이며 그 책임 역시 조선인들이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일제가 벌인 근대화 작업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든 간에, 그것은 기본적으로 조선인들의 재산 처분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바로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윤리에서 이탈된 경제 성장이 어떤 폐해를 낳는가 하는 점은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폐해를 이미 톡톡히 경험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근대화 작업은 조선인들의 재산 처분권을 침해한 것

셋째,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식민지 근대화의 결과물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하는 점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근대화의 결과). 다시 말해, 그들은 '성장'만 중시할 뿐 '분배'의 측면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식 가치관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식민통치 하의 조선 땅에서 곡식이 생산되고 철제 제품이 생산되었다지만, 조선인들은 배를 굶주리고 심지어는 숟가락·젓가락까지 빼앗겼다. 일제가 쌀 공출을 하면서 대금을 지불했다고 하지만, 쌀을 거의 다 빼앗긴 조선인들에게는 그 대금이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돈이 무용한 것과 마찬가지다.

'떼강도'들이 남의 집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장만했다고 해도, 그것을 먹는 것은 인질이 된 주인집 식구들이 아니라 바로 '떼강도'들이다. '떼강도'들이 그런 음식을 '많이' 장만했다면, 그것은 떼강도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그만큼 더 많이 빼앗긴 것이므로 하나도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화 작업의 결과물을 일본이 독식하고 대부분 다 가져갔는데, 조선인들이 과연 그에 대해 감사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 집 식재료를 강탈하여 더 좋은 음식을 더 많이 만들어 자기들끼리 다 먹은 '떼강도'들에게 우리는 과연 감사해야 할까?

근대화 작업의 결과물은 일본이 독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서 벌인 근대화작업은 ▲그 기본목적이 조선을 일본 자본주의의 하청으로 만듦과 동시에 조선을 중국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근대화 작업 자체가 조선인들의 재산 처분권을 침해하는 반윤리적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근대화 작업의 결과물을 일본이 독점하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전적으로 일본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 우리에게는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조선인'을 근대화시킨 것과 '조선 땅'을 근대화시킨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제의 근대화작업은 조선인의 삶의 질을 근대화시킨 게 아니라, 단순히 조선 땅을 근대화시켜 일본 자본주의를 배불린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질을 애써 무시한 채 식민지 근대화론을 유포하고 일제를 미화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가치관의 문제'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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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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