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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명동 중화 거리

▲ 명동 중화거리 진입로. 명동 CGV 몰 오른편으로 승용차 2대 정도가 지나 다닐 정도의 폭으로 나 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인파는 오히려 한산하다. 해가 떨어지면 간이 포장마차가 들어서 불야성을 이루기도 한다.
ⓒ 손호진
토요일 점심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명동' 거리는 어깨를 비스듬히 하고 걸어 다니기도 비좁아 보였다. 미인(美人)과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오늘 모두 명동에 모여 있는 듯하다. 이런 번화가 중심에 중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도 한국적인 모습이고 바로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명동 'CGV'에서' 명동성당'까지는 이미 차량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차량들은 'CGV'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는 소방 도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소공동 쇼핑의 중심지와 명동이라는 지역적 수사에 어울리지 않게 그 거리만은 한산하게까지 보인다.

앞서 보았던 명동 진입로와 비교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양편으로 높이 솟은 건물의 그림자 때문인지 좁은 거리는 더 어둡고 쓸쓸해 보였다.

▲ 대부분 일본 잡지 등과 같은 수입 서적들이나 밀리터리나 마니아를 위한 잡지도 있어 수집에 관심이 있다면 알아두면 좋은 장소다. 일본 관관객이 늘자 한류의 붐을 타고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도 부쩍 늘었다.
ⓒ 손호진
처음 길에 들어서자 명품 수선, 환전, 일본 잡지 등 시각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문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외국 문자들의 진열만으로도 마음속에 이미 어린 시절 달력 사진으로만 보았던 먼 이국의 감성들이 살아나는 듯했다.

아직은 마수걸이를 하지 않은 듯 서점들이나 수선방은 문을 닫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묵묵히 진열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도깨비 시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젠 추억담이 된 누나들의 '논노 잡지'라는 단어의 유행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거기다가 일본어로 무슨 감탄사 비슷한 말들을 연발하는 일본 관광객들의 호사스러운 웃음이라도 버무려 놓으면 이곳이 중화 거리라는 느낌이 그제야 가깝게 다가온다.

충무로 1가 15번지 한성화교소학교

중화 거리는 'CGV'에서 구 '중앙우체국'까지 이어져 있다. 중화 거리에는 대부분은 명품 수전 전문점이나 수입 서적 그리고 중국 특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명동에 근접한 거리일수록 명품 수선방이 더 많고, 한성화교소학교에 가까울수록 중국 차(茶)나 해바라기씨 등 중국 특유의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 서 있다.

가게들은 하나 같이 벽을 타고 붙어 있는데,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고 이 거리가 생길 때부터 있은 듯 문고리가 닳고 닳아 있었다. 대부분 이런 잡화류를 팔기 보다는 국제통화카드나 암시장이긴 하지만 중국돈을 환전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듯 곳곳에 환전이라는 문구들이 눈에 들어 왔다.

▲ 한성화교소학교 정문에 있는 화교 상점. 상점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작고 영세해 보이지만 물건 만큼은 중국 물건을 그대로 수입해 갖다 놓았다. 간식으로 애용되는 해바라기씨, 중국 쟈스민차 등 없는 것이 없다.
ⓒ 손호진
한성화교소학교는 연희동 한성중학교와 함께 화교민들 위한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다. 한국인만큼이나 교육에 대한 열의와 자부심이 높은 것이 화교민들이다. 이미 국내 화교 교육의 역사는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 명동 신한은행 부지에 '한성화교초급중학'이 설립된 것이 그때였다.

이후 한국 전쟁과 대만 대사관의 불법적인 부지 매각 등으로 잠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 당시 몇몇 화교들은 대만 정부의 학교 부지 불법 매각을 비판하면서 자살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교육에 대한 열의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인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상황만 보아서는 현재까지 세계 곳곳의 화교민을 지탱하는 것은 분명 교육의 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 한성화교소학교의 눈 덮인 전경. 부설 유아원과 함께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인들은 입학 할 수 없다. 교내에서는 중국어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 손호진
화교 초등학교의 정문을 지나면, 교내에서는 중국어만 사용할 것을 권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득 '민족'이라는 감정은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 더 강하다는 상대적인 정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대만수교 단절 이후 관광지가 되어버린 중국대사관

▲ 중국 대사관 건물. 대저택을 떠올리게 한다. 기와를 얹은 모양이나 처마가 한국의 것과는 구별된다. 붉은 대문은 자동문으로 차량 출입 때만 열리고 사람은 왼쪽 편 출입구를 통해 드나든다.
ⓒ 손호진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대사관의 주인이 중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후 중국은 대사관 앞 골목에 대해서도 명의 이전을 요구해 소유권 분쟁으로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 중화 거리도 사라지는 듯했으나 현재는 일본 관광객과 중국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 코스가 되었다.

중국 전통 가옥을 연상시키는 출입구와 붉은 출입문이 인상적이며, 그 주위로 '한성화교청년회' 등의 건물들이 모여 있다.

주변으로는 작은 중국집들이 많은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동네 중국 식당이 아니다. 규모는 작으나 요리만큼은 화교민들이 해내는 일품 중국 요리다. 특히 산둥성 출신들이 초기에 가게를 열었던 터라 정통 산둥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주말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연인과 또는 가족들과 함께 짧지만 어딘지 모를 이국적인 거리를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소학교가 개학을 하게 되면 어쩌면 학교 앞 교문에서 어린 학생들의 귀여운 중국어 인사를 덤으로 챙길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붕어낚시21>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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