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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제적 행동기준은 국가이익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면 지구상 어떤 누구와도 협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이 협력을 끊는다. 즉, 미국은 철저한 국가이익 중심의 외교를 하는 나라다.

대한민국이 미국에게 필요하니까 6·25도 참전했고 전후 군사독재까지 용인하며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라. 인도의 경우 2005년 미국이 민간 핵기술 개발을 지원키로 해 미국이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파키스탄의 경우에도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공격에 도움을 주니까 군사독재 정권을 용인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지원은 물론 파키스탄의 핵문제는 유야무야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망하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은 대한민국더러 북한 주민 2200만 명을 먹여살리라고 할 것이 뻔하다. 경수로 사업에서 이는 이미 입증되었고,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선전이나 정보취득에만 도움이 되는 극소수만 받고 있는 것에서도 입증된다.

보수적 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에서조차 2005년 6월 발행한 <매력 있는 한국 : 2015년 10대 선진국 진입전략>이라는 행사 책자에서 예기치 못한 '준비없는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독일통일의 사례를 감안할 때 천문학적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통일비용과 불확실성이 대한민국 경제의 선진국 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면서,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의 중요한 조건은 바로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임을 강조했다.

또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의 존 체임버스 이사는 대한민국의 신용등급 추가 상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북한 문제라는 뜻을 나타내며 예기치 못한 '준비없는 통일'이 대한민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단언했다.

그는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경우 한국 신용등급은 몇 단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북한 경제가 붕괴될 경우 한국의 통일비용 부담이 더 늘어나 한국 신용등급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핵문제 자체보다 통일비용에 대해 특히 우려를 표명했다. 체임버스 이사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추가로 오르려면 한국정부의 통일비용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이데일리> "'한국경제 OECD 국가 중 강하다' 존 체임버스 S&P이사," 2005년 10월 26일자 참조)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경제상황 등은 아예 고려하지 않고, 단지 북한체제 지도부의 돈줄을 죄어 붕괴시키기 위한 경제금융 봉쇄를 원하고 있다. 달러 위조지폐 문제도 이러한 맥락이다. "북한에 대해 추가 경제ㆍ금융제재를 고려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조선일보>, 2005년 12월 15일자)"한 2005년 12월 9일 조지프 국무부 군축차관의 미국 버지니아대 연설은 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는 북한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고 또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의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정부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한·미간에 마찰, 이견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설적 어법은 미국과의 협상 전략상 매우 유리하다. 즉, 이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비대칭 협상전략(Asymmetrical Negotiation Strategy)이라고 하겠다. 비대칭 협상 이론에 관해서는 윌리엄 마크 하비브(William Mark Habeeb) 박사의 <국제협상에서의 힘과 전술>(Power and Tactics in International Negotiation - How Weak Nations Bargain with Strong Nations, Baltimore :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c1988)를 보면 자세히 나온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외교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열강인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을 상대해야 했는데, 그동안 외교협상 이론은 이러한 현실과는 동떨어져 국내에서 사용되었다. 즉, 약소국의 대(對)강대국 외교협상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비브 박사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비해 총체적 힘이 약하지만 어떤 특정 이슈를 두고 강대국과 협상을 벌이는 경우, 언제나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비브 박사는 협상의 결과는 총체적 힘보다 이슈 관련 힘에 의해 결정되며, 또한 약소국이라 할지라도 이슈 관련 힘의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태적인 힘, 즉 협상전술을 적절히 구사하면 강대국보다 많은 외교적 성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약소국은 강대국과의 협상에서 총체적 힘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슈관련 힘의 균형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만들고자 노력하며,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여러 가지 협상전술을 구사하게 된다. 협상전술에 해당하는 행태적 힘에는 위협, 경고, 약속, 예견, 보상, 이면보상, 응징, 양보, 동맹형성, 지연 등이 있다.

이러한 협상전술은 자국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이슈 관련 힘을 바탕으로 구사될 수도 있으며, 약소국인 자국의 이슈 관련 힘을 강화시키거나 또는 강대국의 이슈 관련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구사될 수도 있다.

이러한 비대칭 협상이론 차원에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미국의 북한 압박과 봉쇄 반대, 북한체제 붕괴시도 시 한국과 미국 간 이견 생길 것"이라는 발언은 비대칭 협상전술에 해당하는 이슈 관련 행태적 힘 중 위협이나 경고에 해당한다. AP통신이 "북 붕괴 말도록 한국대통령이 미국에 경고"했다고 타전한 것은 비대칭 협상이론 차원에서 본다면 적확하다.

한편, 일본 <산케이신문>의 2006년 1월 26일 서울발 보도도 이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존 니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2005년 12월초 한국과 일본 등을 방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협력과 함께 현 정권 들어 급증한 한국의 대북지원 정책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한국정부는 달러위조를 북한의 '국가범죄'로 확언하는 것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협력 요청에도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신문은 이로 인해 미국은 재무부 직원을 2006년 1월 21일 서울로 급파하는 등 초조해 하고 있으며, 양국간 불협화음이 노출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러한 일본 언론의 보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들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공개적 합의와 선언을 했고, 2005년 12월 29일 NSC 상임위원회에서 WMD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 참관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은 비대칭 협상이론 차원에서 본다면 보상이나 이면보상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스크린쿼터제를 전격적으로 축소시킨 것이나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결정은 비대칭 협상이론 차원에서 본다면 약속이나 예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비대칭 협상이론 차원에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은 전략적 유연성이나 PSI 등에서 양보하더라도 대북한 압박과 봉쇄 및 체제붕괴 유도를 위한 구체적 실행에는 명확히 반대한 것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특히 미국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일본 신문의 보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비대칭 협상전술에서 승기를 잡았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덧붙여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이익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일찍이 전 미국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Kazimierz Brzezinski)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1997년의 역작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 New York: Basic Books, 1997)에서 한반도, 특히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갈파한 바 있다.

"한국과 관련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 전략적 쟁점은 바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져 미국의 '세계 최고 지위(Global Primacy)'를 위협하는 세력이 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민주화가 안 된 상태에서 부강한 것도 심각하지만, 민주화가 된 상태에서 부강한 중국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미국의 'Global Primacy'에 큰 대가를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한의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주한미군 없이는 미국과 일본의 방위협력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지속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본이 군사적으로 미국의 통제권에서 이탈하여 더 자립적이 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통일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은 주한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영구히 받으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 한국통일을 찬성해주는 대신 강력하게 요구할 부분이기에 그렇다."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한반도, 특히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의 2006년 1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러포트 사령관은 "전시작통권 이양은 군사능력이 갖춰져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양시기 또한 토의해야 한다"며 "한국군이 전시작통권을 갖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을 쥐고 싶어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북한의 체제붕괴가 미국의 국익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기치 못한 북한의 체제붕괴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군사적으로 남과 북 주민들 모두에게 엄연한 대재앙이 될 수 있으므로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단호한 자세대로 이러한 대재앙을 막는 데 흔들림 없이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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