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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매사냥 봉받이 전영태 옹.
ⓒ 최성민
'꿩잡는 게 매' '눈은 매눈' '꿩도 매도 다 놓치다' '시치미를 떼다' '끈떨어진 매'…. 이런 말들은 모두 매사냥에서 나와 우리 생활 깊숙이 속담처럼 스며든 것들이다. 매사냥이 예전에 그만큼 인기 종목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1응, 2마, 3첩'이라는 말도 있었다. 예전 남성들의 풍류 인기순위를 말하는 것이다. 첫째가 매사냥, 둘째가 말타기, 셋째가 첩질이라는 것이다.

매사냥을 '삼뜯기'라고도 했다고 한다. 매사냥을 하다보면 들과 산의 가시나무(산딸기 나무 등)에 몸이 뜯기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마누라한데 꼬집히고, 매사냥에 품이 팔려 땔감을 못해와 울타리를 뜯어 불을 땐다는 뜻이다.

▲ 꿩털이꾼들이 꿩을 날려 띄우는 순간 봉받이는 "애기야~ 매나간다!"라고 소리지르며 매를 내보낸다
ⓒ 최성민
매사냥에서 사냥을 할 수 있는 매과 새로는 (참)매밖에 없는가? 나는 언젠가 운교리 매사냥패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참)매와 그밖에 한두 가지가 더 있다고 하면서 다른 매과 새들인 황조롱이와 부엉이 등을 잡아서 보여 주었다. 다른 것들은 영특하기가 매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매는 사람에게 붙들려오면 상황을 곧 감지하고 쓸데없이 도망가려고 애쓰기보다는 먹이에 순응한다는 것, 그러나 황조롱이 등은 먹이는 거들떠보지 않고 한사코 도망가려고 애만 쓰다가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가 늘상 사람 손에 붙어있는 것만은 아니다. 매꾼들이 사냥을 하다가 매를 잃어버린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은 매가 적당한 기회에 산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적당한 때'는 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밖의 사냥매에는 날아가거나 물에 떠있는 오리떼를 낚아채는 다리가 긴 날진이가 있고 참새떼를 사냥하는 몸집이 작은 (새)매도 있다고 한다.

ⓒ 최성민
매로부터 꿩을 앗아내고 매를 진정시키는 일로 그날의 매사냥이 모두 끝나는 건 아니다. 잡은 꿩을 집 안에 가져와 꿩탕을 끓이면서 '제2의 매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날 잡은 꿩으로 끓인 꿩탕을 가운데 놓고 사냥꾼들은 낮에 벌어졌던 매사냥의 관전평을 펼치기에 입씨름을 벌인다. 털이꾼들이 꿩을 잘못 털어내서 놓쳤느니 봉받이가 매를 너무 늦게 내보내서 꿩이 산을 넘어가 버렸느니, 주로 남을 탓하기에 바쁘지만 그건 모두 다음 번 매사냥을 더욱 잘하자는 단합대회라고 할 수 있다.

▲ 봉받이의 손을 떠난 매는 힘차게 벌판을 날아 꿩을 향해 질주한다.
ⓒ 최성민
▲ 눈벌판에서 꿩을 잡은 매.
ⓒ 최성민
진안에 매사냥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산세좋은 자연 때문이다.

진안의 지형은 '산 태극, 수 태극'이다. 마이산을 중심으로 한 노령산맥의 산줄기들이 금강과 섬진강 자락을 감싸고 돈다. 따라서 으슥한 데가 많아서 들짐승 날짐승이 깃들만한 곳이 많다.

또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고원의 가운데에 있어서 진안에는 눈이 많이 온다. 눈이 많이 오면 들짐승들이 먹을 것을 잃게 돼 힘이 빠지게 된다. 게다가 흰눈 색이 받쳐주므로 들짐승들의 색깔이 눈에 잘 띄게 된다.

▲ 꿩을 잡은 매는 꿩살을 몇 점 뜯어먹도록 한 뒤에 곧바로 꿩에서 떼어낸다.
ⓒ 최성민
▲ 매사냥날 저녁 사냥꾼들은 꿩탕을 들며 그날의 사냥평과 내일을 위한 작전회의를 한다.
ⓒ 최성민
여기에 이런 자연의 특질을 생활의 묘미로 잘 활용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 김용기씨나 '신세대 마사냥꾼(봉받이)' 박찬유씨, 그리고 진안 매사냥을 알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매사냥 인간문화재 전영태옹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5천년 동안 전해져 온 우리 전통의 마지막 실줄기를 이어 놓은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텅 빈 시골 들녁에서 그들은 조상전래의 풍류를 현대의 오락이나 세파에 굽히지 않고 지켜왔다.

▲ 산태극 수태극 형상으로 펼쳐져 매사냥이 성행해 온 진안 백운면 운교리.
ⓒ 최성민


돌아가신 고 김용기옹에게 죄송합니다
매사냥 취재 뒷 이야기

내가 매사냥 취재를 나선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여행담당 기자로서 '자연주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우리 토속을 여행의 소재로 찾고 있었다.

어느 토속 관련 간행물에서 진안에 매사냥이 성행했었다는 내용을 한 장의 봉받이 사진과 함께 만나게 되었다. 수소문해서 사진의 주인공을 찾았으나 오래전에 고인이 된 분이었다.

이웃 동네를 더듬어서 예전에 매사냥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은 끝에 백운면 운교리 전영태옹(당시 80살 안팎)과 연락이 닿았으나 그 분은 자신은 이미 매사냥에서 손을 뗀 지 오래고 이웃 마을 박찬유씨(당시 40대 중후반)가 바통을 잇고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튿날 바로 박찬유씨 댁을 찾아 방문을 여니 매 한 마리가 매방울을 떨렁거리고 횃대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박찬유씨를 설득해 생매를 잡는 장면을 재현하고, 이튿날 직접 박씨의 매사냥에 동참했다.

그는 타고난 매사냥꾼이었다. 매를 다루는 방법, 꿩이 숨어있는 장소, 봉받이가 설 자리 등을 잘 짚어내 한 나절에 산토끼 2마리와 꿩 2마리를 거뜬히 잡았다.

박씨를 신문에 소개하고 <그곳에 다녀오면 살맛이 난다>라는 여행서 뒷표지 사진으로 실었다. 미국에 있는 한 교포가 이 사진을 보고 시커멓게 묵은 미국 매를 들고 귀국했다. 미국에서처럼 매사냥을 상업적으로 운영해보겠다는 목적이었다.

이렇게 박찬유씨가 매사냥 재현 공로자로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 시작할 즈음, 이듬해 겨울 전영태옹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은 자기가 매사냥 원조로서 다시 매사냥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용모와 언변으로 매스컴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연세도 있고 재산도 많은 편이어서 주위 사람들을 매사냥 도우미들로 쉽게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사냥에 관한 온갖 이론을 조리있게 제공하고 사람과 매에 대한 통솔력을 잘 발휘하여 매사냥을 볼품있게 시연해 보였다.

전옹을 취재하러 갈 때마다 늘 한 노인이 전옹의 매사냥 도우미로 따라다녔는데, 알고 보니 항상 그 분이 생매를 받는 일(매사냥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과 매 훈련을 시키는 일을 도맡았다. 그 분이 바로 이 연재기사 1회에서 매받는 그물을 놓고 위장막에 숨어 기다리던 사진의 김용기옹이다.

그 기사 댓글을 단 '용가리(필명)'씨에 따르면 김옹은 3년 전 돌아가셨는데, 용가리씨는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김옹의 매사냥을 따라 다녔다고 한다.

나는 당시 문화재관리국에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적잖은 돈을 들여 '매사냥 현장실태 조사'를 하여 보고서를 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전국에 매사냥 경험이 있는 사람이 20여 명 생존하고 있으나 진안 전영태옹이 '유일하게 현재 실행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매사냥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거부했다. 이유는 첫 번째 매사냥이 한국 수렵문화를 대표하지 않는다, 두 번째 매사냥은 매가 주인공이다, 세 번째 매사냥은 개인놀음이다 등이었다.

그런데 1년 뒤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매사냥을 전북문화재로 지정하고자 하니 자료를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문화재관리국이 위의 이유로 국가문화재지정을 거부했다는 설명과 함께 내가 쓴 매사냥 기사와 매사냥을 소개한 내 책을 보냈다.

얼마 뒤 매사냥은 문화재관리국의 국가문화재지정 거부 이유와 정반대의 이유로 전북문화재로 지정됐고 전영태옹이 매사냥 인간문화재(기능보유자)로 지정됐고 평생 지원금을 받게 됐다. 즉 매사냥은 한국 수렵문화를 대표하고, 사람이 도구인 매를 부리는 주인공이며, 꿩털이꾼 등 20여 명이 동원되는 집단놀이라는 등의 이유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매사냥을 꾸준히 해온 김용기씨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문화재위원회 스스로 자료와 실태를 파악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언론보도를 자료의 전부로 삼은 탓이다.

나는 그때 김용기옹이 매를 받아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고 말았다. 이 점 돌아가신 김옹께 사죄하고자 한다. 김옹은 그 뒤로도 누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인간문화재를 지정할 때 후계자도 함께 지정한다. 나는 마땅히 '신세대 매사냥꾼'으로 매사냥의 모든 기능을 원활히 갖춘 박찬유씨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씨가 후계자로 지정되지 않았다.

매사냥 취재가 끝난 후 한참 뒤 텔레비전에서 어떤 사람이 그 지역(진안이 아닌 다른 지역이다) 매사냥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면서 출연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고 매사냥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인 생매 받기를 문화재지정 심사에서 점검했는지, 당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답은 한국조류보호협회에서 매를 빌려주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몸을 다친 매를 치료해서 자연에 돌려보내지 않고 굶겨서 혹사시키는 사냥매로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매는 천연기념물로서 문화재이고 "문화재 이동에 관한 법률이 있다!"고 했다.

나는 '문화재 이동'이란 다친 매를 '죽음의 현장'에 내보내는 게 아니라 도자기나 회화, 조형물 등 무생물 문화재를 전시 등의 목적으로 장소를 옮길 수 있다는 게 아니냐고 묻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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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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