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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가 논문조작과 관련해 12일 오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말 몰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기극으로 결론난 '황우석 사건'에 대해 청와대 인사들이 보인 한결같은 반응이다. 얼핏 들으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진짜로 몰랐으니 책임은 묻지 말라'는 투로도 들린다.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책임이 더 크다.

황우석 교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기자만이 아니다.

박 보좌관이 아직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역할'을 감안할 때 사표 수리는 확정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청와대 움직임이 좀 수상하다. 그가 사퇴하는 것으로 '청와대 책임론'을 면피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명 과학기술부장관은 자진 사퇴해 '1·2 개각'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황 교수를 지원하기 위한 권력내부의 네트워크인 '황금박쥐'의 멤버들, 즉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문책 얘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책임을 추궁할 '근거'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노 대통령이 총애하는 인사들이어서인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 권력'이 움직이자 '황우석 신화'도 가속 페달 밟아

▲ 노무현 대통령.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실 황우석 사태는 권력과 언론, 자본의 삼중주가 빚어낸 비극이다. 특히 권력의 정점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 그 누구보다 무겁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황우석 칭송'을 통해 알게 모르게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적극 협력해왔다. 그런데 모든 연구논문이 조작인 것으로 드러난 지금, 그러한 역할은 결국 황우석 주연의 사기극을 후원한 꼴이 됐다.

노 대통령이 지난날 황 교수를 얼마나 극찬해왔는지를 잠시 살펴보는 것만으로 그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 동북아시대, 2만달러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다."(2003년 12월, 세계 최초로 광우병 저항소를 개발했다고 발표하자)

"감동과 느낌이 넘쳐서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다. 앞으로 애로사항이 있으면 말해 달라"(2003년 12월, 황 교수 연구실을 직접 방문)


또한 노 대통령은 지난 2004년 6월에는 황 교수 연구팀 11명에게 과학기술 최고훈장을 수여하면서 "여러분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고 추켜세웠다. 이에 황 교수는 "대통령이 평소에 과학도에 베푸는 애정과 성원이 가슴에 와 닿는다"며 "노벨상 수상자 20명의 첫 페이지를 여는 대통령으로서 2015년 사회 교과서에 당당히 기록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9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해 "이 시기에 제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과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큰 행운"이라며 "옛날에는 제가 별로 도움이 안됐지만 지금은 좀 돕고 있고 앞으로 확실히 밀겠다"며 '황우석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이날 준비해간 연설원고 내용까지 수정했다. 그는 즉석연설을 통해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가지 논란이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겠다"며 '생명윤리논란'보다는 '연구'에 더 방점을 찍었다. 황 교수에 도취되어 중요한 원칙을 내버린 셈이다.

'권력'이 움직이자 하방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정책이 펼쳐진 것이다. 황우석 연구지원 모니터링, 지적재산 관리팀 구성, '황금박쥐' 모임, 최고과학자상 신설, 3부요인급 경호 서비스 제공 등등…. 이는 모두 황 교수를 위해 '참여정부'가 마련한 선물들이었다.

▲ 2005년 10월 10일 오후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구지원금도 대폭 늘었다. 2004년 65억원에 불과하던 지원금이 2005년에는 265억원으로 늘어 무려 4배나 증가했다. 또 올해에만 205억원의 지원예산이 책정돼 있었다고 한다(민주노동당의 집계).

노 대통령과 청와대 등 권력의 배경이 없이 한 과학자에게 수백억원의 지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결국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대부분 조작으로 드러난 이상, 노 대통령도 수백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론몰이식 문책인사는 싫다?... 여론에 귀 막은 대통령

또한 노 대통령은 황우석 사건을 초래한 인사들을 문책하라는 여론에 철저하게 귀를 막았다. 그래서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인사를 제때 문책하지 못했다. 황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의 진실고백이 이어졌지만 문책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가장 집중적으로 인책 요구를 받은 인사는 박기영 보좌관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박 보좌관의 사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인사권자인 노 대통령조차 '합리적 인책론'을 내세우며 박 보좌관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황우석 사태와 관련) 막연한 분위기로 책임을 묻는 일이 없도록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책임을 물어나가는 행정풍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여론몰이식 인책론'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김병준 실장과 박기영 보좌관은 경질하지 않겠다는 인사권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 보좌관은 황 교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황우석 신화의 숨은 주역'으로 불려왔다. 그는 지난 2004년 1월 청와대에 입성한 이래 정부의 황우석 지원정책을 주도해왔다.

또 박 보좌관은 기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였다. 그는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불법 매매난자가 사용됐다는 윤리적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황 교수를 적극 옹호했다가 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언론과의 접촉마저 끊어버려 눈총을 받았다.

▲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그에 대한 지원을 주도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왼쪽부터).
ⓒ 자료사진
게다가 < PD수첩 > 취재팀의 취재활동과 관련 편파적인 보고서를 올려 노 대통령의 판단을 흐렸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지난 1월 황 교수로부터 직접 "줄기세포 6개가 오염됐다"는 중대한 사실을 직접 보고받고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아 의혹을 샀다.

지난해 12월,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의 고백에 이어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중간조사 발표를 통해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됐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최종조사 결과를 보고 거취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문책을 미뤘다.

물론 노 대통령은 박 보좌관이 자진사퇴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가 여론에 밀려 문책인사 하는 걸 싫어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다. 하지만 지난 10일 박 보좌관이 사의를 표명하기 전까지 청와대 안에서 그의 사퇴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꼬박꼬박 청와대에 출근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는 후문만 들릴 뿐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박 보좌관을 감싸안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대연정 제안과 탈당 검토 등 승부사적인 그의 정치스타일을 생각할 때, 인사문제는 왜 그리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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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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