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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그들 토호세력의 실체가 궁금했다. 행정권력·정치권력 뒤에 숨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토호로 성장해왔는지, 그들이 의도적으로 숨겨온 과거 행적은 뭔지를 까발리고 싶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지역현대사는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기회주의자와 비기회주의자의 싸움이었다"고 단언했다. 김 기자는 최근에 펴낸 <토호세력의 뿌리>(불휘 간)라는 책에서 어떻게 해서 '정권이 바뀌어도 토호는 영원'했던 지에 대해 까발려놓았다.

책에서는 마산 현대사를 통해 본 지역사회의 지배구조를 다루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빌붙은 자들이 누구였는지, 보도연맹 희생자 등 민간인 학살은 왜 일어났는지, 3·15와 4·19 때도 토호세력들은 어떻게 버텨냈는지, 박정희 군사정권 때 그들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토호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몸부림은 어떠했는지를 정리해 놓았다.

해방 후 지역 우익단체는 어떻게 뿌리 내렸을까. 저자는 경남 우익단체의 뿌리는 '한민회'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결성되었다. 일제 때 지주·예속자본가·친일관료·언론인·해외유학파들이 중심이 됐다. 한민회는 마산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건준의 좌파성향을 비난했고, 미군이 진주하자 열렬한 친미주의자가 되었다.

"해방 직후 도망갔던 일제 경찰관들도 다시 나타난다. 이들은 미군정의 비호 아래 해방된 조국의 경찰관으로 모두 복귀한다. 일제 고등계 형사 노릇을 하던 전진원이라는 자는 45년 9월 군정의 마산경찰서 경무주임으로 복귀하며, 초대 마산경찰서장과 제3지구(마산) 감찰관이 된다." 지역에서도 왜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한 대목이다.

토호세력은 민중의 역사도 은폐... "이은상은 양지만 쫓아 살아왔다"

지역 토호세력들은 민중의 역사도 철저하게 은폐해 왔다. 1946년 10월 7일 마산을 비롯한 경남에서는 미 군정을 상대로 한 대규모 민중봉기가 있었다. 당시 마산에서만 최소 6000여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10명 넘게 죽었다. 1980년대 이후에 나온 <경남도사>나 <마산시사>의 역사편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 뒤에 나온 향토사에도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이 극히 일부분만 소개할 정도.

저자는 "정권과 국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는 건 곧 '사상이 꼬롬한' 일이었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면서 "힘센 놈에게 붙어야 출세"했던 사실들을 들추어냈다. 토호세력들은 미군과 이승만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반공주의자로 변신에 성공했고, 박정희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산 현대사는 이은상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논쟁은 세기가 지났어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은상에 대해 "철저하게 양지만을 쫓아 살아왔다"고 평가했다. 몇 년전에 '노산(이은상)문학관' 명칭 문제가 불거졌는데, 논란 끝에 명칭은 '노산'을 버리고 '마산'으로 결정이 났다.

지난 해 마산시의회는 표결 결과 '14 대 13'으로, 딱 한 표 차이로 장장 6년에 걸친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 시민단체 대표의 말을 빌어 "사회개혁과 진보를 위한 운동은 51%와 49%의 싸움인 것 같다"면서 "이 논쟁도 어쩌면 그 2%를 건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끝난 싸움이 아니다"고 말했다.

'마산국화박람회'는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은상이 살던 동네는 '노산동'이고, 거리는 '노산로'이며, 시민의 날 이름은 '가고파 큰잔치'다, 또 이은상이 물을 떠 먹었다는 '은상이샘'이 아직도 무슨 기념물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런 현실에 저자는 "우린 여전히 2%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1999년 김대중 정권 때 만들어진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가 실패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 주도의 운동이라는 자체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역시 사람이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운동의 목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토호와 지역유지가 대거 위원으로 위촉됐기 때문이다.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개혁의 주체로 행세하고 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제2건국위 실패 원인은?... 지방분권은 어떨까?

책에서는 경남지역 제2건국위의 명단을 적시한 뒤, "여기에 참여했던 인물이나 단체 중 15명 가량이 노무현 정권 출범 시기에 발족된 지방분권운동 경남본부에 임원 또는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50여 명에 가까운 자문위원도 거의 대부분 제2건국위원 명단과 겹치고 있다"고 설명.

"그들은 4·19 직후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61년 5·16쿠데타가 발생하자 다시 박정희의 힘을 믿고 공화당과 각종 관변단체를 통해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과정에서 이들 우익인사들이 대부분 토착 기업체를 하나씩 꿰어차거나 이름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토호세력 대부분이 관변단체를 중심으로 집결하고 있는 전통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참여정부가 목청을 높이고 있는 '지방분권'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토호세력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설명.

"문제는 다시 지역이다. 과연 우리 지역사회가 지방분권을 제대로 실현할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 '모든 분권은 다 좋은가'. 분권을 통해 중앙권력은 지방으로 분산될지 모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구축돼 온 '지방독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방독재'의 핵심에는 토호세력과 권위적인 단체장들이 자리를 틀고 있다. 그들은 지방자치의 근본정신을 유린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들과 손잡고 추진하는 지방분권 추진운동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우리는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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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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