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우즈벡을 떠나기에 앞서서 나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세관신고서와 관련된 문제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외환 관리가 엄격한 나라라고 한다. 외국인은 입국할 때 두 장의 세관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 세관 신고서에 자신이 가지고 들어온 외화의 액수를 기입해서 한 장은 제출하고, 다른 한 장은 입국시 도장을 받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출국시에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출국할 때는 별도의 세관신고서를 또 작성해서 가지고 있는 외화의 액수를 적어야 하는데, 이때 외화의 액수는 입국시에 신고한 외화의 액수보다 많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는 입국할 때 한 장의 세관신고서만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이럴 경우에는 많은 벌금을 물게 되거나 외화를 가지고 출국할 수 없다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혼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현지 여행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소개해준 가이드 한 명과 함께 동행을 해서 국경검문소에서 내 사정을 설명하고 육로로 국경을 통과해서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 타슈켄트의 거리
ⓒ 김준희
나를 도와주러 나온 가이드는 '수잔나'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젊은 시절의 조디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진 수잔나는 29살이지만 미혼이라고 한다.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 다른 우즈벡의 여성들에 비해서 수잔나는 노처녀인 편이다. 여행사 일을 하느라 바빠서 데이트 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함께 국경으로 가게 되었다. 타슈켄트 북쪽의 큰 국경검문소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국경을 넘어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사람들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그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운이 좋다면 약간의 벌금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될지도 모른다.

검문소에는 적당히 살이 찐 경찰이 앉아 있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보았던 우즈벡의 다른 경찰들과 달리 이곳의 경찰들은 하나같이 굳어있고 딱딱한 얼굴 표정이다. 왠지 일이 잘 안 풀릴 것 같은 그런 인상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잔나가 나의 여권을 들고서 담당자에게 얘기를 했지만 소용이 없어보였다. 세관 담당자는 반드시 입국시 도장을 받은 세관신고서가 있어야 한다면서 나의 출국을 막았다.

"어쩔수 없어요. 여기서 국경을 통과하려면 뇌물을 줘야되요"

밀려오는 현지인들 때문에 다시 검문소 바깥으로 나온 나에게 수잔나가 말했다.

"벌금요?"
"벌금이 아니라 뇌물이요"
"뇌물요? 얼마나요?"

수잔나는 다시 검문소로 가서 뭔가를 얘기하더니 돌아와서 말했다.

"200달러 달라고 하는데요"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하마터면 험한 말이 나올뻔 했다. 모르고 한 실수를 처리해주는데 200달러나 요구하다니!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입국할 때 공항으로 들어왔죠?"
"네, 타슈켄트 공항으로요."
"공항으로 갑시다. 걱정하지 마세요."

▲ 타슈켄트에 있는 천주교 성당
ⓒ 김준희
이때부터 수잔나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공항에 가서 세관신고서를 분실했다는 신고서를 쓰고, 입국시에 제출한 세관신고서의 사본을 하나 받아서 국경으로 가면 될거라고 한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분실신고서를 작성하고 세관신고서의 사본을 받으려고 했지만 세관 담당자가 없다고 한다. 전날 그 부서의 상사가 부친상을 당해서 모두 그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점점 꼬여가는 기분이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혹시라도 담당자가 돌아올까하고 기다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와 수잔나는 결국 잔머리를 굴리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화를 모두 수잔나에게 맡기고, 난 20달러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신고하고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다. 20달러 정도는 세관신고서가 없더라도 눈 감아줄 거라는 게 수잔나의 말이었다. 그리고 함께 국경을 통과한 다음에 수잔나가 다시 나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비자카드 가지고 있죠?"
"네. 있어요."
"돈없이 어떻게 여행하냐고 묻거든 카드를 사용한다고 하세요."

아까 갔던 국경에서는 우리 얼굴을 알고 있을테니 다른 국경으로 가기로 했다. 이번에 간 국경검문소는 아까보다 작은 곳이다. 국경을 넘는 현지인들도 훨씬 적은 수다. 여권 검사를 통과하고 세관관리소로 향했다. 난 현지 사정을 모르는 데다가 말도 통하지 않기때문에 엄마를 따라다니는 어린아이처럼 수잔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조마조마했다. 내 우즈벡 비자는 오늘로 만료가 된다. 끝까지 세관신고서가 문제가 되어서 오늘 중으로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난 우즈베키스탄에 불법체류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을 카자흐스탄에서 맞을 수 있을가? 머리 속으로는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즈베키스탄을 떠나지도 못하고, 카자흐스탄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하나? 왜 우즈벡에 오기 전에 입출국시 주의사항을 알아두지 못했을까. 세관신고서 한 장이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난 지금부터 허위로 세관신고를 해야한다. 혹시라도 내가 세관신고하는 것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는 어떻게 하나? 단순하게 뇌물로 끝날 성질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세관관리소에서 다시 세관신고서를 2장 작성했다. 한 장은 제출하고 한 장은 도장을 받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카자흐스탄을 떠날 때 제출해야 한다. 난 가지고 있는 미화가 20달러 뿐이라고 적었고 수잔나는 내 세관신고서와 여권을 들고 담당자와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여권과 세관신고서를 돌려주며 말했다.

"됐어요. 갑시다."

뭐가 되었다는 얘기일까. 난 여권을 펼쳐서 비자가 있는 부분을 보았다. 우즈베키스탄 비자에는 출국도장이 찍혀 있었고, 카자흐스탄 비자에는 입국도장이 찍혀 있었다. 국경을 통과한 것이다. 난 기쁜 나머지 수잔나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며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냥 '씩' 웃어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도장이 찍힌 세관신고서를 보았다. 서류상으로 내가 갖고 있는 미화는 20달러다. 이제 난 카자흐스탄을 떠날 때 공식적으로 20달러 이상을 갖고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통과했다는 기분때문에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 타슈켄트 북쪽 침간의 풍경
ⓒ 김준희
국경을 통과한 시간은 4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우리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기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카자흐스탄 여행의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는 알마티로 가야한다. 수잔나의 말에 의하면 알마티까지는 15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한다. 오늘 저녁에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 도착한다. 누쿠스에서 타슈켄트로 올 때 이후로 두 번째로 장거리 버스를 타는 것이다.

버스터미널에는 많은 버스들이 늘어 서 있었다. 나는 5시에 알마티로 출발하는 버스의 표를 샀다. 이 버스의 가격은 1500팅게. 팅게는 카자흐스탄의 공식 화폐단위다. 1달러는 약 130팅게로, 팅게 곱하기 8하면 대충 한화로 계산되어진다. 카자흐스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화폐단위를 한화로 계산하는 법부터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이 표를 예약해놓고 나서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서 꼬치구이와 양고기 국으로 밥을 먹었다.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과 비슷한 음식들, 그리고 귀에 들리는 것은 똑같은 러시아어다. 수잔나에게 맡겼던 돈을 다시 찾아서 우선 100달러를 환전 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수잔나는 꼼꼼하게 이것저것 챙겨주고 신경을 써주었다. 꼭 필요한 돈만 조금 주머니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깊숙이 감춰두라고 한다. 그리고 알마티 가는 도중에 식당에 한 번 설테니까 그때 밥을 먹으라고 하는가 하면, 버스 운전사에게는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러시아어를 못한다며 당부해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수잔나와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난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버스 바깥에서는 수잔나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수잔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된 것이다.

▲ 타슈켄트 브로드웨이 거리의 밤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