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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쿠스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버스
ⓒ 김준희
누쿠스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버스는 예상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아마 우리나라의 80년대 버스가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외관이 낡아 보이는 버스다. 누쿠스에서 타슈켄트까지는 1200km. 한반도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달려간 다음에 300km를 더 간 거리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만주벌판 한복판에서 부산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꼴이다. 저 낡은 버스가 과연 1200km를 주파할 수 있을까?

요금이 9500숨(숨은 우즈벡의 공식화폐단위, 1숨은 한화 약 1원)인 이 버스의 예상 소요시간은 18시간이라고 한다. 물론 뻥 뚫린 포장도로를 시속 120km로 달린다면 10시간 만에 타슈켄트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승객과 짐을 실은 대형버스가 그렇게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호텔 매니저인 타자베이의 말에 의하면 넉넉히 20시간 정도 예상하라고 한다.

출발시간은 저녁 5시인데 4시 20분경이 되자 사람들이 버스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출발 전에 미리 버스에 짐을 실으려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섞여서 버스 실내를 보았다. 의자가 낡았고 의자들의 앞뒤간격이 좁다는 것만 빼면 그런대로 20시간을 탈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자리 때문에 불편한 것은 어느 정도 참는다 하더라도, 달리던 도중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나?

보따리 장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가져온 많은 짐들이 버스 양옆의 짐칸으로 들어갔고, 내 배낭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짐을 싣고 나서 버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버스 안에는 서로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사람들, 돌아다니며 표검사를 하는 아저씨, 그 와중에도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를 파는 아주머니와 뭔지 모를 말을 하면서 구걸을 하는 할아버지가 뒤섞여 있었다.

5시가 되자 버스가 출발했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버스는 포장도로 위에서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이 버스의 운전석 뒤쪽으로는 창가에 간이 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 보니까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는 기사말고도 주위에 여러명이 모여있었다. 한명은 운전을 하고 다른 한명은 운전기사가 졸지 못하도록 계속 그에게 말을 붙이고, 그 외에도 두 명 정도가 더 있었다. 18시간을 운전해야 하니까 교대로 운전을 하면서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는 모양이다.

▲ 버스의 내부. 좌측 위쪽으로 간이침대가 있다.
ⓒ 김준희
그 간이침대에는 어린아이 두 명이 이미 올라가 있었다. 무엇이 좋은지 그 아이들은 계속 떠들고 웃는 모양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신문을 보거나 서로 얘기를 하는 모습이다. 난 그냥 등받이에 기대앉아서 창밖을 보았다. 낡고 불편한 버스지만 어쨌건 단돈 9500숨에 1200km를 이동하면서 하루 밤 잠자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수지맞는 일이 어디 있겠나.

창밖으로는 우즈베키스탄의 벌판이 보인다. 타슈켄트를 떠나고 나서 기차와 택시로 누쿠스까지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서 타슈켄트로 돌아가는 꼴이다. 다만 시간의 차이가 있다. 타슈켄트에서 누쿠스까지 오는 데는 20일이 걸렸는데, 누쿠스에서 타슈켄트로 돌아갈때는 20시간이 걸린다. 저녁이라서 그런지 그다지 덥지도 않고 창밖의 풍경은 황토색 벌판 뿐이다.

저녁 7시가 넘어서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덩달아서 버스도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어두워지고 나면 이 버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잠을 자거나 그냥 앉아있거나 생각을 하거나 3가지 중에 하나다. 대단한 선택의 여지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간이침대위에 올라간 아이들만이 소꿉놀이를 하는지 잠꼬대를 하는지 연신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도 피곤해졌지만 자는 것 대신에 창밖을 보았다. 잘 시간은 앞으로도 많은데다가 우즈베키스탄의 넓은 벌판에 어둠이 오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다.

▲ 누쿠스 터미널 앞의 식당. 삼사를 굽는 화덕.
ⓒ 김준희
그리고 창밖을 보면서 왜 내가 여기까지 여행 왔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오게될 줄은 몰랐다. 예전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몇 달간의 긴 여행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다시는 예전의 일상으로 못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이런 여행을 시작하려면 누구나 계기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

여행가 피터 플레밍은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도 그런 것이다. 가보고 싶던 곳에 가보는 것.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과 처음 보는 환경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단조롭지만 안정적이던 생활보다 더 절실하게 이런 것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난 여행을 택했을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나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사실 난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론 여행을 하다보면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애초에 그것을 위해서 길을 떠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게 여행은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한 때였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만 5년. 난 그 생활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생활. 그 안에서 별 목적의식 없이 나에게 주어진 일들만을 처리하는 생활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게 느껴진 것이다. 당시에 내가 바라본 나의 모습은 밤이면 술집을 전전하고, 아침이면 술이 덜 깬 채로 사무실에 앉아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날들 속에서 가끔씩 문득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도. 그럴 때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곤 했다. 마치 내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싫어~!'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택한 시점이 바로 그때였다. 중앙아시아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거기에 맞추어서 직장생활 속의 일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지점에서 난 여행을 결심했다.

▲ 구워진 삼사를 정돈하는 요리사
ⓒ 김준희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몇달간의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는 예전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 그때는 어떻게 하나. 막말로 얘기해서 뭐해서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여행은 일상을 떠나는 방법이지만,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예전의 그런 고민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인생을. 남들처럼 군대를 가고, 졸업하고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해왔다. 흔히 말하듯이 뒤처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했지만, 뒤처지고 아니고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별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난 이미 30살을 넘어있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의지와는 관계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때 했던 것 같다.

"내가 인생에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35살을 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골프선수 '할 서튼'의 말처럼 나도 그 꼴이었던 것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런 생각이었다. 남들보다 뒤처지건 말건 상관하지 말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배낭을 꾸렸다. 40리터짜리 배낭에 여름옷 한 벌과 속옷 한 벌, 점퍼 하나 그리고 면도기, 세면도구와 다른 것들을 챙겼다. 노트북과 mp3 플레이어를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둘 다 포기했다. 노트북이 있으면 숙소에 처박혀 주야장천 게임만 하게 될 것 같았고, mp3 플레이어가 있으면 밤에 음악만 듣게 될 것 같아서다. 한술 더 떠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면서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면? 그거야 말로 최악의 여행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 지 2달이 되어가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한국에 있을 때 했던 많은 것들 중에서 여행을 떠난 이후로 계속 떠오르는 것 한 가지가 있다. 아마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위해서 여행을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알 것도 같은 것이다.

▲ 어두워지는 이찬칼라의 거리.
ⓒ 김준희
8시 30분이 넘어서자 어두워졌다. 우즈베키스탄 벌판에 어둠이 오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못보고 말았다. 어둠은 내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이 벌판을 덮은 모양이다. 그리고 버스 창밖으로 별이 보인다. 카시오페아도 보이고 그 옆으로 북두칠성도 보인다.

이렇게 많은 별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에 와서는 밤하늘을 본적이 없다. 하긴 그동안 계속 도시로만 다녔으니 밤하늘에는 별도 별로 없었을 거다. 타슈켄트에 돌아가서도 별은 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우즈벡에서 많은 별을 보는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다.

한국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토요일이고 저녁 8시 30분이니까 주말의 술집들은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할 시간이다. 그리고 로또복권 당첨번호가 판가름 났을 시간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다면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을 시간에 난 달리는 버스에 앉아서 중앙아시아의 하늘에 깔린 별들을 보고 있다. 이 별들이 사라질 때쯤이면 이 버스는 타슈켄트와 가까운 어느 곳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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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