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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은 영국의 동성연인들에게는 특별히 감회가 깊을 듯하다. 이제 영국에서도 동성애자들이 합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엘튼 존 경과 결합해도 데이빗 퍼니시는 '레이디 존'이 되지 않는다는 가십을 담은 < FemaleFirst > 기사.
지난 19일 북아일랜드를 시작으로, 20일 스코틀랜드, 21일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동성간의 결합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시민동반자법'이 발효되었다.

영국의 유명 팝 가수 엘튼 존(58) 경도 21일에 동성 연인인 데이비드 퍼니시(43)와 18년 만에 식을 올렸다. 팬들의 환호 속에 거행된 존의 결합식은 얼마 전 찰스 황태자와 카밀라 공작부인의 결혼식이 있었던 윈저시 길드홀(시청)에서 이루어져 더욱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이어 팝스타 조지 마이클도 그의 동성 연인 케니 고스와 결합식을 치를 예정이다.

하지만 시민동반자법 발효에도 불구하고 현재 영국의 모든 동성애자들이 자유롭게 결합을 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영국국교회(성공회)의 동성애 성직자들은 성공회 교단과의 갈등으로 마찰을 빚고 있다.

50여년 만에 탄생한 영국 시민동반자법

19일, 영국 역사상 최초로 북아일랜드에서 두 레즈비언 동거자가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 Act)으로 가족이 되었다. '결혼'이란 표현 대신 '결합(Union)'이란 표현을 사용할 뿐, 이성간의 결혼과 동성간의 결합은 차이가 거의 없다.

'동성 간 결합' 법령 제정은 세계적 추세

현재 동성애자들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법령 제정은 세계적 추세다. 50여년에 걸쳐 서서히 준비되어 온 금번 영국에서의 시민동반자법 시행은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와 유사한 법령들이 이미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지 오래기 때문.

1989년에 덴마크는 결혼과 똑같은 효력을 갖는 동성애자들의 결합 법령을 제정했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결혼식은 금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아이슬란드는 1996년에, 핀란드는 2002년에 동성애자 결합 법령을 승인했다.

네덜란드는 2001년에 세계최초로 '동성애자 결혼' 제도를 도입했다. 벨기에도 2003년에 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다. 스페인은 2005년 6월에 이미 이와 비슷한 제도를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면시행했다.

독일은 동성간의 '동거 관계' 법령을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간에 법적 보호 테두리 하에서 정식으로 동거를 할 수 있는 법령을 1999년에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의 제도와 유사한 법령을 2004년에 도입했다.

미국의 경우, 의회의 반대로 인해 연방 헌법 차원에서의 지원은 어려운 실정이지만, 각 주별로 동성 간 결합의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버몬트 주는 2000년에 '동성애자 결합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켜 시행하고 있으며, 코네티컷 주는 2005년 4월에 유사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매사추세츠 주는 2006년 법령 시행에 관한 투표를 앞두고 있다.

뉴질랜드는 2004년에, 캐나다도 2005년 7월에 동성애자 결합법령을 통과시켰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최초로 아르헨티나는 입양과 유산 상속 부분을 제외한 결합법을 2003년에 통과시켜 시행해 오고 있다.
(자료 참조 : BBC 뉴스 인터넷 판 12월22일자)
시민동반자법의 탄생 과정은 역사가 길다.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1953년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하원 의회 차원의 조사에서 시작된다. 1957년의 울펜덴 보고서에 따라 동성애자들의 사생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영국 사회에 퍼지게 되었다. 당시 성공회 대주교였던 피셔 박사는 '신성한 사생활'을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동성애자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된 것은 이로부터 10년 후인 1967년이다. 이때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21세 이상이면서 군인이 아닌 두 성년 남자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갖는 것을 범죄로 간주하지 않기로 했다. 1980년에는 '스코틀랜드 소수자그룹'의 활동에 힘입어 스코틀랜드에서도 위와 같은 법이 받아들여졌다.

이어 1990년대엔 동성애 가능 연령에 대한 논란이 생겨났다. 결국 1994년에는 동성애 가능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추어졌으며, 아예 연령을 16세(영국에서 부모 동의 없이 결혼 할 수 있는 나이)로 낮추자는 의견도 제기되었으나 하원에서 부결됐다. 1998년에 하원은 이 의견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다시 부결되었다.

그러던 중, 현 런던 시장인 켄 리빙스턴이 2001년 시장선거 당시 공약으로 '동성애자의 권익 향상'을 내걸면서 동성애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많은 논란이 벌어졌지만 2002년에는 '동성애 커플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입양 법안이 통과되었다.

2002년 1월에 의회에 소개된 시민동반자법은 2004년 11월 18일에 통과되어 왕실 동의서(Royal assent)를 받았다. 이어 지난 2005년 11월 19일, 북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줄 잇는 동성 결합식 ... 종교계는 '반대'

▲ 영국 최초의 동성애자 결합을 보도한 <더 타임즈> 19일자 인터넷판.
이처럼 영국 동성간의 결합법은 50여 년에 걸쳐 천천히 단계적으로 도입됐지만 일부 영국인들은 아직도 이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다. 특히 종교계의 반발은 극심할 정도.

영국 최초로 동성결합식이 거행된 지난 19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시청 앞에서는 40여 명의 자유장로교회(Free Presbyterian Church) 소속 기독교 신도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결혼은 남자와 여자 간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강조했다.

영국 내 로마 가톨릭 교회 측도 시민동반자법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카디프의 주교는 동반자법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많다고 경고했으며, 스코틀랜드의 웨스턴섬 주 당국은 결합식을 올리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일부 영국인들도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정상"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것" "이걸 법으로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나" 등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영국 전역에서 동성 결합식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동반자법 시행으로 인해 20~30년씩 장기간 동거해왔던 동성연인들이 속속 가족으로 맺어지며 새 삶을 찾고 있다. BBC의 통계에 따르면, 영국 전체를 통틀어 앞으로 1200건 이상의 동성결합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성공회 "교단 내 성직자 동성결합 제재하겠다"

이런 가운데 영국 성공회의 교단 내 동성결합 반대 목소리는 의견 제시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제재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더럼 시의 성공회 주교인 톰 라이트는 교단 내 성직자들이 동성결합을 하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겠다고 공언해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 영국국교회(성공회) 교단에 대한 동성애 성직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내용을 보도하는 24일자 BBC 뉴스.
성공회는 그간 동성애 성직자를 인정해왔으나 최근에는 역설적으로 "성행위는 이성 결혼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성공회 교단 측은 "일반 신도들이 동성결합을 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성직자들이 동성결합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BBC 뉴스 인터넷판 24일자는 이런 성공회 교단의 입장에 대해 "일부 동성애 성직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며,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성공회의 실질적 지도자인 켄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에게 동성애 성직자들의 반발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동성애 성직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 21일, 뉴캐슬 시에서는 워데일 목사(59)가 은퇴 교수인 마코트(58)와 결합식을 했다. 하지만 현재 이 커플은 자신들의 결합이 어떤 성격인지, 즉 두 사람 사이에 성행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 폴 콜리에 목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교회가 동성결합 문제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동성애 성직자는 용인하면서, 법적으로 맺어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그는 "성직자의 사생활도 존중되어야 하며, 스캔들이 발생하지 않는 한 성직자의 동성결합에 반대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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