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말라버린 아랄해 바닥에 버려진 배 1
ⓒ 김준희
아랄해. 중앙아시아의 한복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양국의 영토에 걸쳐서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내륙호(염호)의 이름이다. 아랄해는 한때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호로 1960년 당시만 해도 6만 6400km²의 면적으로 남한 면적의 2/3에 달하는 크기였다.

하지만 이 아랄해가 지금은 40년 전에 비해 면적은 40%로, 수량은 채 20%도 안되는 양으로 감소했다. 아랄해가 이렇게까지 작아진 이유는, 구소련정부에서 이곳으로 흘러드는 주요한 두개의 강이었던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의 물줄기를 강제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아랄해를 가운데 두고 아무다리야 강은 남쪽에서 아랄해로 흘러들고, 시르다리야 강은 북쪽에서 아랄해로 흘러든다. 1960년 이전만 하더라도 아랄해는 이 두 개의 커다란 강에서 공급되는 물로 그 수량을 유지하면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호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60년대 후반. 구소련정부는 목화경작을 위해서 아무다리야 강을 카라쿰 사막으로, 시르다리야 강을 키질쿰 사막으로 흐르도록 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서 커다란 두 강의 물줄기를 강제로 돌렸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가 주요 수출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40여년 전의 이 공사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공사 때문에 아랄해는 재난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랄해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감소하면서 수량과 면적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지금은 해안선이 150km나 후퇴해 있다. 그리고 염분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과거에 아랄해에 살던 많은 어류들이 멸종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물의 양이 감소하면서 호수바닥이 드러나게 되었고, 여기에서 발생한 소금먼지 때문에 주변의 땅까지 황폐화된 것이다. 그 결과로 과거 아랄해에 인접해 있던 항구도시인 무이낙은 모든 어업을 중단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서 현재는 과거에 비해 1/3 수준으로 작아졌다고 한다.

▲ 말라버린 아랄해 바닥에 버려진 배 2
ⓒ 김준희
아랄해를 보기 위해서 나는 볼라드와 그의 사촌인 마라드와 함께 오전 9시 경에 누쿠스를 떠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랄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아랄해였던 곳'을 보러가는 것이다.

영어가 유창한 34살의 마라드는 무이낙이 고향이라고 한다. 결혼을 해서 3자녀의 아버지라는 그는 9월 말에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 현재 비자를 신청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한국어를 공부해서 전문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10월 말 이후에 귀국할테니 그때쯤에는 나와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무이낙이 고향이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과거 무이낙의 모습을 물어보았다.

"무이낙이 예전에는 인구가 얼마나 되었어요?"
"글쎄요… 아마 5만은 훨씬 넘었을 거에요."
"지금은요?"
"지금은 아마 1만 5000명 정도? 그 정도 밖에 안될 거에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떠나간거죠?"
"그렇죠. 더 이상 무이낙에서 어업을 할 수 없으니까 모스크바나 타슈켄트로 떠나간 거지요."

누쿠스에서 무이낙으로 가는 길도 양옆으로는 목화밭이 많았다. 원래 더운 곳인데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더워져만 가는 기분이다. 한 3시간쯤 달렸을까. 과거의 항구도시 무이낙이 나타났다. 볼라드는 여기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예전에 아랄해였던 곳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무이낙의 거리는 한산해 보였다. 과거에 5만명이 살았던 곳이지만 이제는 1만 5000명으로 인구가 감소한 데다가 지금도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니 오죽 한산한 도시일까. 하지만 여기에도 있을 건 다 있어 보였다. 학교도 있고 큰 병원도 있고 정수시설도 있고 축구장도 있다. 없는 것이 있다면 예전 항구도시로서의 면모 뿐일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자 과거의 아랄해 해안선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차를 세운 우리는 내려서 과거에는 아랄해였지만 지금은 사막으로 변해버린 광경을 보았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오면서 보았던 키질쿰 사막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황량하고 단단한 땅과 그곳에 듬성듬성 솟아있는 메마르고 거친 풀들. 이곳이 예전에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호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 과거 아랄해의 해안선. 우측에 사막처럼 보이는 곳이 예전에 아랄해였던 곳이다.
ⓒ 김준희
아랄해가 이 해안선에 접해있을 때는 이곳에서 저 멀리 아랄해의 수평선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랄해를 헤치며 달리는 많은 배와 갈매기도 있었으리라. 뱃고동 소리와 함께 항구로 드나드는 많은 배들 속에서 항구도시 특유의 활기참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얀 소금기가 내려앉은 흙바닥과 거친 풀이 전부다. 갈매기 대신에 흙먼지가 날아다니고 있고 수평선 대신에 지평선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차를 타고 버려진 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라드가 '배들의 묘지'라고 부르는 곳에는 이제는 쓸모없게 되어버린 녹슨 배들이 메마른 바닥 여기저기에 방치되어 있었다. 난 그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배를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하얀 소금먼지가 내려앉아 있고 메마르고 억센 풀들 사이로 도마뱀도 보인다.

예전에 철갑상어와 용상어가 살던 곳에 지금은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한때는 아랄해를 누비고 다녔을 많은 배들이 이제는 폐선이 되어서 하얀 소금 바닥에 놓여져 있다. 이곳에서 발생한 소금먼지와 모래먼지가 주위로 날아들어서 주민들의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지역은 매년 넓어진다고 한다.

난 다시 마라드에게 물어보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아랄해를 되살릴 노력을 안하고 있나요?"
"구체적인 노력은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무이낙과 그 주변 주민들만이 아랄해의 모습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까 한쪽에 폐선이 놓여있는 호수가 나왔다. 이곳은 아랄해가 아니다. 한때는 아랄해였지만 지금은 아랄해에서 떨어져 나와서 만들어진 작은 호수다. 여기에서도 수평선을 볼수있다. 하지만 이 수평선을 어찌 예전 아랄해의 수평선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 시커먼 물속에는 예전에 아랄해에서 살던 어류들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작아진 아랄해를 보러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곳을 보려면 여기에서부터 150km가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한다. 한때는 아랄해였지만 지금은 사막으로 변한, 길도 없는 이곳을 뚫고 짚차로 꼬박 7시간을 달려야 아랄해에 도착할 수 있다. 하루 코스는 안되기 때문에 최소한 1박 2일은 잡아야 그곳을 다녀올 수 있다. 물론 그곳에는 먹을거리도 없고 마실 물도 없기 때문에 텐트와 먹을거리와 물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볼라드는 말한다.

▲ 배들의 묘지 1
ⓒ 김준희

▲ 배들의 묘지 2
ⓒ 김준희

▲ 아랄해에서 떨어져나와 만들어진 작은 호수.
ⓒ 김준희
'배들의 묘지'를 보고나서 우리는 다시 무이낙으로 향했다. 마라드의 소개로 한 집에 들어가서 튀긴 생선과 토마토로 점심을 먹었다. 각자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조용히 음식을 먹고 나서 다시 햇볕이 내리쬐는 무이낙의 거리로 나왔다. 망가진 아랄해의 모습을 보고난 이후라서 그런지 무이낙의 거리는 한층 더 한산하고 쓸쓸하게 보였다.

구소련 정부는 1968년에 수로공사를 했다고 한다. 요즘 같은 때에 그런 공사를 한다면 각종 환경단체에서 대규모의 반대집회와 시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68년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이 조용히 공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무이낙의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서서히 감소하는 아랄해의 수량과 어획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으리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을 때 이미 아랄해는 저 멀리 작아져있고, 자신들은 더 이상 이곳에서 예전같은 방식으로 삶을 유지할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후에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무이낙을 떠났다. 과거에 번창했던 항구도시 무이낙은 이제 그 모습을 잃어버리고 작은 마을로 변해있다.

▲ 한때 철갑상어가 살던 곳에 지금은 도마뱀이 기어다닌다.
ⓒ 김준희
아랄해를 되살릴 방법이 있을까. 아랄해를 살리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예전처럼 다시 물을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아무다리야 강의 물줄기를 다시 아랄해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목화경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즈베키스탄의 딜레마일지 모른다.

이후에 카자흐스탄에서 들은 소식에 의하면, 카자흐스탄 쪽의 아랄해에는 다시 물이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미미하지만 수량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쪽의 아랄해는 되살릴 방법이 없다고 한다. 지금의 추세라면 2020년 경에는 아랄해가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국제환경단체는 말하고 있다. 한때 커다란 내륙호였던 아랄해가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있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누쿠스로 향했다. 누쿠스와 아랄해까지 보았으니 우즈베키스탄에서 보고 싶은 곳은 모두 본 셈이다.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가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목화밭에서는 아이들이 뭔지 모를 이야기를 하며 한참 목화를 수확하고 있었다. 그 모습 위로 조금 전에 보았던 아랄해의 폐선이 겹쳐지고 있다. 여전히 더운 날씨다.

▲ 아랄해에 버려진 폐선들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1.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2. 마라드는 현재 한국에 있습니다. 일산에 살고있고 신촌으로 통학하면서 한국어를 공부중입니다. 바쁜 연말이라서 만나보지는 못했고 전화통화만 하고있는 상태랍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