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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족들 아침밥을 차려주고 난 뒤 굶고 있으려니 배가 고팠습니다. 구수한 된장국냄새가 식욕을 당겼지만 애써 참아야 했지요. 평소 아침밥을 제일 많이 먹는지라 조금 힘들긴 하더군요. "엄마, 왜 밥 안 먹어? 밥맛이 없어?" 관심도 없는 남편대신 막내아들이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엉. 엄마 오늘 병원 가는 날이잖아."
"아 그렇지. 엄마 오늘 종합검사 받으러 간다고 했지."

오래 전부터 이유 없이 몸이 피곤하고, 힘이 없으며, 소화도 안 되어 종합검진을 한번 받아볼까 싶었는데 매년 미루기만 하다가 한 달 전 마음먹고 집에서 가까운 국립경찰병원 종합건강검진센터에 접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약이 많이 밀려 있어 한 달이나 기다려야 했지요.

위 검사나 부인병 검사는 몇 번 해본 적이 있으나 종합검사는 15년 전 직장생활할 때 해본 뒤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제 몸에 대해서 그동안 너무나 무심하지 않았나 싶은 자책감이 들더군요. 주부로 살아오다보니 가족들 건강이 우선이었지 제 몸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 해가 다 가기 전에 기어이 종합검진을 한번 받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던 거지요.

예약시간에 맞추려고 부리나케 집안정리를 한 뒤에 집을 나섰습니다. 차를 타고 가기는 어중간하고, 걸어가기는 너무 먼 것 같아 자전거로 가려고 했는데 간밤에 눈이 왔는지 도로가 얼어 있어 결국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9시,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더군요. 다른 날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수납창구에서 접수를 한 뒤에 기다리고 있으니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하더군요. 원래 기본검사비는 26만원인데 부인과검사 중 난소검사비 2만4천원이 더 추가되어 종합건강검사비 28만4천원을 지불했습니다. 살아오면서 저 자신을 위해 투자한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종합검진이 제 자신을 위한 가장 큰 투자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검사를 위해 팬티를 제외한 속옷을 다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맨 첫 번째 검사는 혈압측정이었습니다. 혈압은 평소에 일반병원에서도 재봤기 때문에 정상인줄 알고 있었고, 두 번째는 폐 기능 검사를 하는지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라고 하더군요. 시키는 대로 하고 난 뒤 체중계에서 키와 몸무게를 쟀습니다.

체중계계기판에 키 155, 몸무게 46.9, 비만도19.5로 나온 걸 보니 정상에 가까운 저체중이더군요. 평소에 누가 키를 물어보면 159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제 키가 정말 작다는 걸 이번에 또 실감했습니다. 다음은 시력검사를 하는데 근시가 있어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 별의미가 없는 검사였고, 청력도 작은 소리까지 모두 들을 수 있는 걸로 보아 아직까지 기초체력은 괜찮구나 싶더군요.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유방검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거라 상당히 긴장을 했는데 별로 어렵지는 않더군요. 양쪽에 두 번씩 네 번, 통증이 올 정도로 가슴을 꽉 누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소변검사를 위해 채뇨를 했는데 채뇨는 몇 번 해봤던 거라 쉽게 할 수 있었고, 채혈은 생각보다 피를 많이 뽑더군요. 피가 뽑혀나가는 걸 보지 않기 위해 다른 곳을 쳐다봤는데 적어도 다섯 개 이상 작은 유리관에 피를 뽑아 담는 것 같았습니다. 빈혈 있는 사람은 현기증이 나지 않을까 싶더군요.

종합검사는 체계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고, 안내해주는 간호사들도 친절해 차분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부초음파 실에 들어갔다 나온 후 제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했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위해 반듯하게 누웠는데 한참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제게 묻더군요. "혹시 복부 초음파 검사 해보신 적 있으세요?" 그 말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것 같아 없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혹시 무슨 이상이라도 있나요?"
"네, 혹이 하나 보이거든요. 물혹 같은데 크기가 심상찮아요. 거의 10cm 정도, 말하자면 어른 주먹만한 크기인데 어느 장기에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네요."
"네?"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가더니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그렇다면 암 같은 건가요?"

제 말에 선생님은 "아니에요. 암하고는 거의 관련이 없고 양성인데 문제는 어느 장기에 있느냐이고 크기가 크다는 거죠. 일단 검사결과가 나오면 CT촬영을 한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처음 초음파를 하러 들어갈 때 담담했던 마음과는 달리 저는 침대에서 힘없이 내려왔습니다. 저체중에 불필요한 혹까지 가지고 있다니 이게 웬 일입니까.

갑자기 비관적인 생각이 들고 그동안 제게 스트레스를 줬던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 잠시 고개를 쳐들더군요. 요즘 갑작스레 힘이 없고, 우울해지고, 어지럽고 했던 증상들이 모두 혹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뱃속에 주먹만한 혹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꺼림칙했습니다. 만약 수술을 해야 한다면 어떡하나 싶어 병원에서 지내야할 복잡하고 괴로운 과정들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더군요.

그러나 다른 장기라도 결과가 좋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힘을 내어 검사를 받았습니다. 심전도검사, 체성분검사, 흉부 X-선 검사 등은 별 어려운 게 아니라 쉽게 받을 수 있었지만 또 하나 괴로운 검사가 남아 있었죠. 바로 위내시경 검사입니다. 평소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정기적으로 위내시경검사는 받아오고 있었는데 검사를 받은 지 2년이 지났고, 요즘 부쩍 뱃속이 편치 않아 걱정을 많이 했던 터라 긴장이 되었습니다. 내시경 검사는 검사과정이 무척 괴롭기 때문입니다.

저랑 나란히 검사를 받던 50대 아주머니는 노란 마취약을 마시면서부터 기분이 나빠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목 마취를 위해 마시는 노란약은 맛도 이상하지만 기분도 좀 이상하게 만들거든요. 그 아주머니는 저보다 먼저 검사를 받고 나오셨는데 입을 감싸 쥐며 "아이, 기분 나빠. 아우, 지랄 같아"라는 말을 계속 하셨고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고 정말 긴장되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입을 헤 벌리고 이빨로 플라스틱 기구를 물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구토가 나던지... 간호사가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쉽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더군요. 위 내시경검사는 병원마다 그 느낌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어느 병원은 좀 편한 느낌이 있는 반면, 어느 병원은 몸이 경직될 만큼 고통스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대장내시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위내시경검사를 비교적 잘 받았습니다.

"위는 별 이상이 없고 깨끗하네요." 의사선생님의 한마디가 어찌나 고맙던지요. 그동안 위에 무슨 이상이 있나 싶어 커피도 제대로 못 마시고, 밀가루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아무래도 제 위는 스트레스성 위장장애가 아닌가 싶더군요.

마지막으로 부인과 검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역시도 긴장이 되더군요. 검사를 받은 지 5년도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인과에서도 별 이상 없이 깨끗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검사결과가 다 나와 봐야 자세히 알겠지만 그래도 전문의 한마디가 마음에 커다란 힘을 주는 것 같더군요.

▲ 달력에 붙여놓은 검사결과 상담일
ⓒ 장미숙
모든 검사를 마치고 검사결과 예약을 하기 위해 상담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선생님이 제 표정을 보더니 물었습니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신데 괜찮으세요?" "네, 실은 초음파 검사에서 커다란 물혹이 발견 되었다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라고 했더니 그분은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물혹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거든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가지십시오"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 정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제 마음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조금은 걷힌 거 같았거든요.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혹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죠. 드디어 신빙성 있는 정보를 하나 발견했는데 내과 전문의가 밝히는 물혹에 관한 설명이었습니다. 의학용어로 '낭종'이라고 하는 물혹은 '엄밀한 의미에선 물혹도 종양의 일종이긴 하지만 암 같은 악성 종양은 아니고 건강에 별다른 위협을 주지 않는 양성 종양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고 설명을 해 놓았네요.

물혹이 생기는 부위는 손발톱을 제외한 모든 신체 조직이며 생기는 이유는 체질일 수도 있고, 신체 조직의 어느 부위가 무언가에 감염이 된 후 그 부위가 녹아내리면서 물혹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관절을 싸고 있는 막이 늘어나 그곳이 끈끈한 액체로 채워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사이즈보다는 오히려 위치가 더 중요한데 간혹 뇌 쪽에 물혹이 생겼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물혹은 특별히 치료할 필요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네요.

물혹 외벽이 울퉁불퉁하다든지 비정상적으로 두껍고, 물혹 주변에 출혈이 동반되고, 물혹이 다른 장기를 압박해 답답한 경우랍니다. 제 물혹은 어떤 것인지 검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발견 되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니 일주일 동안 꽤 마음 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가기 싫은 곳 중에 하나로 병원을 꼽듯이 병원에 있어보면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하게 되죠. '건강을 위해 항상 조심하고, 규칙적이고 낙천적으로 살아야겠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또 생활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기 쉬운 게 건강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도 그동안 제 자신에 대해 너무나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꾸준하게 운동은 하고 있었지만 세상 걱정은 다 안고 사는 사람같이 살았거든요. 제 자신을 스스로 대우해주지 못했고,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받고 보면 별것 아닌데도 너무나 두렵고, 큰일로 여겨졌던 종합건강검진이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요? 아마 건강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속이 시원합니다. 비록 물혹제거 수술을 받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좀 더 일찍 받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맹순이처럼 돈 아끼고, 아등바등 살다가 몸속에 암을 키우는 일은 없어야 될 것 같아요.

올해는 저희 가정과 제게 많은 일이 있었고, 특별한 일도 있었지만 2005년 나만의 특종을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저는 종합건강검진을 꼽고 싶네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주위 분들께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몸 속에 이상이 생기기전에 미리 종합검진을 받고 건강을 챙기라고요.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며, 현명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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