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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2일 오전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개정 사학법을 거부권 행사해 줄 것을 거듭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강경투쟁은 박근혜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원내대표단이 "온 몸으로 사학법을 막아내겠다"는 공언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에 무력하게 밀린 것에 실망한 박 대표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개방형 이사제를 골자로 한 사학법 개정을 국가정체성 훼손사안으로 규정한 박 대표는 측근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공격방향을 전교조로 정조준하면서, 장외집회를 필두로 한 강경투쟁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서 당내 이견을 모두 묵살했다. 공개적으로 반발한 원희룡 최고위원과 고진화 의원은 물론 "공당이 노조를 투쟁상대로 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2~3일 나가서 싸우고 조건 없이 등원하자"는 주장도 일축했다. 당 중진인 김덕룡 전 원내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21일 '원내외 병행투쟁론'을 제안했으나 "한번 칼을 뽑았으면 끝까지 가야한다"고 거부했다.

결국 그의 강공 드라이브는 당내 반대파와 관망파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장외투쟁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던 강재섭 원내대표도 지금은 박 대표와 같은 수준의 발언을 하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장외투쟁 초기 "우선은 가보자"며 반대파와 관망파 의원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박근혜의 '고집', 대선후보 경쟁·영남대 경험·이념성향의 합작품

▲ 지난 13일 서울 명동등지에서 거리연설에 나선 박근혜 대표는 "열린우리당이 처리한 개정 사학법이 전교조에게 우리 교육을 넘겨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 대표의 강공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지지율에서 앞서가고 있는 이명박 시장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있다. 청계천이라는 상품으로 날개를 단 뒤 최근에는 고건 전 총리까지 제친 이 시장에 대해 '투쟁하는 야당지도자'라는 카드로 대응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존 한나라당 지지세력에 확실한 기반을 만들어 두겠다는 분석이다.

박 대표의 이념성향과 영남대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80년 3월 영남대 이사장(이후 이사직)을 맡았다가 반대에 부딪쳤다. 그 뒤 1988년에 영남대의 입시부정 등이 문제가 돼 관선이사가 파견되면서 다른 이사들과 함께 동반퇴진한 바 있다. 박 대표의 이념성향에 대해 한 초선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아주 좁고 완고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또 다수의 사학법인을 갖고 있는 종교계의 강한 압박도 강경책의 요인으로 꼽힌다. 가장 많은 사학을 갖고 있고, 한국 보수세력의 주근거지 중 하나인 개신교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경우 박 대표에게 "투쟁의지를 밝히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강공이 한나라당과 대선 후보인 박 대표에게 이익이 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의 지지도 상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관심을 주고 있기 때문인데, 박 대표는 1년에 한두 번씩 '우리는 너희와 달라'라고 확인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소한 한나라당을 선택지 중의 하나로 보게 해줘야 하는데, 계속 이런 식의 이념투쟁을 선동하면 결국 돌아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당도 박 대표도 그동안 벌어놓은 것을 한번에 까먹게 됐다"고 비판했다.

민생을 우선하는 온건 보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박 대표가 국가보안법에 이어 사학법까지, 이른바 박 대표가 말하는 '국가정체성'사안에 대해서는 우향우를 계속해 '꼴통 수구'의 색깔이 짙어지면서 당과 본인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어차피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역시 박 대표가 모두 지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며 13일 장외투쟁에 나서 서울 명동등지에서 집회를 가졌다. 장외투쟁에 나선 박근혜 대표가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 대표 행보, 지지층 확산 추세에 찬물 끼얹나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달 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41.4%의 기록적인 정당지지도를 얻은 배경에 대해 "기득권 집착·수구보수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있고, 정부 여당과의 정책대결을 통해 대안정당으로서의 위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또 "박근혜 대표가 영남권, 보수층, 서민층을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고, 이명박 시장이 수도권, 중산층에 개혁성향층 일부까지 흡수하는 등 양 대권주자의 기지기반이 상이한 점도 한나라당의 외연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며 "이명박 시장이 지니는 개혁적 이미지가 한나라당의 보수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면서 개혁성향층과 중산층을 흡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최근 박 대표의 행보는 이같은 지지층 확산 추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강경파 쪽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박 대표와 당에게 손해일 수 있으나, 당장의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고 할 일은 반드시 하는 지도자(당)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표도 "표가 되지 않는 줄 안다,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고 나서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해왔다.

박 대표 덕에 상대적으로 개혁·온건 보수적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는 평을 받는 이명박 시장은 사학법 문제와 관련해 정부 여당을 비판하면서도, 국가정체성 논쟁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 시장은 20일 대학생 상대 강연에서 "국가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며 "남북한 간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는데 누가 지금 그런 얘기를 하냐"고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한편, 개정사학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한인 오는 31일까지 숨가쁜 일정이 계속될 전망이다.

23일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종교계지도자들이 사학법 문제로 회동하고,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인천에서 장외집회를 연다. 27일에는 사학법 문제를 논의하는 국무회의가 열린다. 이어 28일엔 사학법인들이 개정사학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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