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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13

날이 참 맑다. 계절의 여왕이란 말이 틀리지는 않나보다. 땅에서 오른 지열이 잔디의 새순 냄새를 담아 코끝으로 스민다. 비릿한 풀냄새를 피해 올려다 본 하늘은 '청명'했다. 조카의 부사관 임관식을 축하라도 하는 듯이.

▲ 육군부사관학교 임관식 전경(2005.5.13)
ⓒ 유성호
서울에서 부사관학교까지 거리를 따지자면 서둘러야 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둘이 데이트를 했다. 충남과 전북의 도계에 접해 있는 부사관학교까지 내려가는 중에 조카의 장래를 생각했다. 4년간의 연장된 복무를 마치고 조카는 또 어떤 결정을 내릴까. 아마 조카는 군대건 사회건 어디서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튼튼한 뿌리를 키울 것이다.

고아처럼 자란 조카... 외할머니의 각별한 사랑

▲ 외할머니와 함께
ⓒ 유성호
누나의 이혼과 재결합, 그리고 또 다시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조카들의 생활이 어지럽게 요동쳤다. 엄마 슬하와 친가를 오가기 반복했고 그 사이 조카들은 사춘기를 맞으면서 성장통을 앓았다. 아빠 소식은 끊어진 지 오래고 그 와중에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조카들은 고아 아닌 고아가 돼버렸다.

마침 외손들을 끔찍이 아끼는 외할머니가 계셨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카들은 세상살이가 버거웠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당신 집 인근에 집을 장만해주고 조카들을 한집에 모여 살게 했다. 삼남매 중 막내 조카를 가장 아꼈다.

그런 조카가 어느새 훌쩍 커서 군 입대를 할 때 어머니는 친자식을 보내듯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틈만 나면 거동까지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면회를 다녀오셨다. 조카의 계급이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어머니의 기쁨도 커갔다. 그러나 전역 후를 생각하자니 걱정 또한 함께 커갔다.

공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간 조카가 사회에 나왔을 때, 지금의 고용 상황으로 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가끔 그런 걱정을 탄식처럼 흘렸다. 그럴 때마다 죽은 누나의 몫까지 어머니가 챙기시는 듯해서 자식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조카를 부사관으로 장기복무시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부사관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비약적으로 좋아졌고 특히 조카가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남자 형제 없이 자란 조카에게 군대는 형과 동생 노릇을 톡톡히 해낼 것이란 생각과 함께.

▲ 학교장으로부터 임관증을 받는 모습
ⓒ 유성호
조카의 장래를 두고 가족회의를 열었다. 우리 가족은 조카도 조카지만 어머니 걱정이 앞섰다. 조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역하면 어머니 슬하에서 부대낄 것이 걱정돼 만장일치로 부사관 지원을 권유하기로 결정했다. 오래전 칠순이 넘어 선 어머니에게 조카를 건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조카에게 부사관 권유... "생각 중이다"

가족들의 뜻을 담아 조카가 근무하는 부대를 찾았다. 조카보다 부대 행정관이 먼저 내려왔다. 부사관인 그는 최근 경기 때문에 장기복무 지원자가 늘고 있으며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부사관 경쟁률이 5대1 가까이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특기병과를 바꾸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조카는 결손가정이라서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뒤이어 면회실에 들어 온 조카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외삼촌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표정이다. 조카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집안 사정을 설명하고 부사관 지원을 권유했다. 뜻밖에 조카는 생각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주특기를 전차에서 통신으로 바꿨으면 했다.

장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전차보다는 통신기술이 더 유용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털어 놓았다. 코흘리개 같던 조카가 어느새 장래를 걱정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런 것은 걱정 말고 지원여부에 대해 심사숙고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여기는 부사관 훈련소입니다! 임관식에 꼭 오세요"

그렇게 헤어지고 조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사이 조카는 상병 계급장을 떼고 부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어느새 훈련을 모두 마치고 임관식을 앞두고 있었다. 조카는 전화로 임관식에 와달라고 했다. 목소리가 예전같이 않고 밝았다. 조카의 밝은 목소리에 슬픔을 느꼈다. 조카의 청춘을 재단한 것 같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꼭 가보마하고 약속을 했다. 어머니도 노구를 이끌고 함께 가셨다.

강경 시내에서 꽃을 한 다발 사들고 도착한 부사관학교의 현대식 건물과 잘 다듬어진 교정이 인상적이었다. 대운동장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군인들 중에 조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방울의 피라도 섞인 천륜은 그것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했다. 멀리 보이는 조카에게서 내공이 느껴졌다. 그새 인생의 나이테가 한 뼘쯤 더 자란 듯했다.

▲ 동기생들과 함께
ⓒ 유성호
어머니는 목을 빼며 살피지만 찾을 수 없어 연신 노안만 탓했다. 임관증을 받기 위해 연단에 올라 선 조카의 모습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욱 단단하게 느껴졌다. 봄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과 팔뚝, 우렁찬 목소리, 그리고 두툼해진 손마디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계급장을 달아 주는 내 손끝이 떨렸다. 어금니에 힘을 주었지만 가슴 속에서 치받쳐 오는 기쁨과 슬픔이 뒤엉킨 눈물 한 방울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조카는 청춘의 새로운 길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부사관의 계급장처럼 청춘의 여정이 찬란히 빛나기를 기원했다.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죄인이 되지 않게 해다오"

연말이고 하니 네 덕에 오랜만에 위문편지 한 장 쓴다. 먼저 건강하게 군생활 잘하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다. 요즘이야 휴대전화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생각하고 연락하지 않았다.

네가 원했던 통신병과의 부사관이 됐으니 모두 네 복이다. 또한 전해들은 소식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한다니 기특하구나. 부사관은 군대에서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한다. 엄마의 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네게 그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줄 안다.

하지만 모자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외려 채워주는 방법도 잘 알 것으로 여겨진다. 모쪼록 병사들의 마음 속을 채우는 어머니가 되어 존경받는 부사관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순종과 희생의 미덕을 배우고 또 배워서 사소한 일에 감정 상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아울러 외삼촌을 죄인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런 나의 생각이 기우란 것을 안다만 노파심으로 적어본다.

너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 안에서도 자기계발을 위해 고삐를 늦추지 말아다오. 그리고 네가 바라는 것을 간구하기 바란다. 꿈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다.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사랑하는 나의 조카가 군대에서 필요한 존재로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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