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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에 있는 소품들과 작은 사진
ⓒ 유근종
2004년 8월,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임소혁 갤러리를 다녀 온 지 거의 1년 반 만에 친구들과 사진가 임소혁씨를 만나러 갔다. 지난 번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싶었고 최근의 얘기도 듣고 싶은 마음에 사진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임소혁씨를 알게 된 것은 지리산 안내책자를 통해서였는데 거기에 실린 프로필 사진을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마치 원시인 같은 자연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책자에 실린 지리산 사진 또한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산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리산의 매력이 물씬 배어나오는 사진이었다.

보통 지리산 사진이라면 멋있는 능선과 운해, 일출, 고사목, 철쭉 군락 등 누구나 그 자리에 서기만 하면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이지만 임소혁씨의 사진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사진들이어서 그 감동은 배가 되는 듯하다.

▲ 최근 모 주간지에 연재하고 있는 임소혁아저씨의 야생화사진
ⓒ 유근종
1998년 여름, 러시아에 처음으로 가면서 엽서를 선물로 골라 간 적이 있다. 그 엽서들 중 하나가 임소혁씨의 겨울 지리산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러시아 선생님이 "한국에도 겨울이 있어?"라고 한 말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한 엽서가 바로 임소혁씨의 사진들로 구성된 엽서였다.

지난번에 갤러리를 찾아갈 때는 곡성읍을 거쳐 가서 꽤나 먼 길을 둘러 갔는데 이번에는 서순천 나들목으로 가니 훨씬 빨랐다. 갤러리에 들어선 순간 갤러리 한 켠에 마련된 찻집에서 임소혁씨가 차가운 날씨에도 반갑게 맞아준다. 이리저리 사진설명도 해주고 요즘의 일상도 얘기해주었다.

▲ 열변을 토하고 계신 임소혁씨
ⓒ 유근종
현재 모 주간지에 야생화 사진을 연재하고 있고 1월 중순이면 구름에 관한 책이 나온단다. 나 역시 길을 가다 구름이 멋있으면 꼭 기록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벌써부터 나올 책이 기대된다.

여러 소식들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은 진주국립박물관에서 내년 봄에 지리산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지만 일이 잘 추진되어서 진주에서도 임소혁씨의 멋진 사진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난로에 은행을 구워주는 임소혁씨 부부
ⓒ 유근종
사진과 지리산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 덧 배 안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 지난 번에는 곡성에서 유명하다는 참게정식을 먹으러 갔다가 참게가 비싼 철이라고 양이 너무 적어 실망했었는데 이번에는 임소혁씨의 추천으로 다슬기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의 정겨운 다리.
ⓒ 유근종
다슬기 수제비는 지난번 참게탕의 실망스러움을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풍성한 양에 남도의 인심까지 합쳐지니 그 포만감은 먹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 태안사 능파각
ⓒ 유근종
임소혁 갤러리를 떠나 지척에 있는 태안사에 들렀다. 태안사에는 잔설이 제법 있었다. 태안사 아래 능파각은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지난 번 여름에 왔을 때는 비온 뒤라 우렁찬 물줄기 소리에 좋았는데 겨울은 그 나름대로 소곤대는 물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 눈 내린 태안사
ⓒ 유근종
산중이라 겨울바람이 꽤나 차갑다. 그런데도 절 어귀 삼층탑에는 내년 소망을 비는 듯 탑돌이를 하는 아가씨들도 보인다. 볕이 잘 드는 절간 뜰을 하릴없이 서성이다 구례 화엄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엄사는 10여 년 전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대학시절 은사님과 다녀간 적이 있는데 이번에 가보니 희한하게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아무 기억이 없으니 오히려 차분히 절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화엄사는 지리산 노고단 서쪽에 있는 호남 제일의 사찰로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절이다. 화엄사에는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 화엄사 보제루의 주춧돌과 기둥
ⓒ 유근종
우선 보제루(普濟樓)를 들 수 있는데, 보제루는 사찰 중심 불전 앞에 세우는 누각으로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라 한다. 화엄사 보제루의 기둥과 주춧돌은 마치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 대양루의 그것과 너무 비슷하다.

주춧돌은 특별히 다듬지 않고 그 돌의 요철을 그대로 이용해서 주춧돌 위에 세우는 기둥의 밑 부분을 그 요철에 맞게 다듬은 것이다. 볼수록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 선조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어 좋다. 매끄럽게 만든 인공미 보다는 매끄럽지는 않지만 질박한 것에 더 마음이 간다.

▲ 화엄사 각황전
ⓒ 유근종
화엄사하면 국보 제 67호로 지정된 각황전(覺皇殿)이 유명하다. 각황전이라는 이름은 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 전해지는데 원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다. 그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이고 양식은 중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각황전은 보는 순간 압도당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세심함에 찬탄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그것도 오랜 세월에도 끄떡없는지 경외심까지 든다.

각황전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를 기둥으로 썼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기둥을 세운 것 또한 감탄하기에 충분하다. 큰 절은 큰 절 나름대로 , 작은 절은 작은 절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서 좋다. 알싸한 겨울 기운을 느끼며 산사를 배회하는 사이 해는 벌써 지리산 자락으로 뉘엿뉘엿 넘어간다.

▲ 내가 본 당간지주 중 가장 큰 화엄사 당간지주
ⓒ 유근종


 

덧붙이는 글 | * 임소혁 사진갤러리 찾아가는 길은 태안사라는 이정표를 찾아가면 된다.  순천방면에서 서순천 나들목에서 나와 구례구를 지나 곡성 쪽으로 가다보면 압록에 이르는데 압록 다리를 지나 좌회전 해서 10여분이면 태안사 가는 길 오른쪽에 폐교를 갤러리로 꾸민 학교가 보인다.

전화:061-363-0269

* 구례 화엄사 찾아가는 길은 화엄사 홈페이지(http://www.hwaeomsa.org)참조.

* 주변 관광지로는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운조루와 산수유마을 입구에 위치한 지리산 온천을 들수 있고, 가까운 하동에 쌍계사와 최참판댁을 둘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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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에 입학했고,지난 1998년과 1999년 여름 러시아를 다녀와서 2000년 졸업 뒤 사진전 "러시아 1999"를 열었으며 2000년 7월부터 2001년 추석전까지 러시아에 머물다 왔습니다. 1년간 머무르면서 50여회의 음악회를 다녀왔으며 주 관심분야는 음악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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