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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깔스럽게 무친 무채나물
ⓒ 이종찬
서리 맞은 무는 동삼이다

예로부터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무다. 무는 송송 채를 썬 뒤 갖은 양념을 넣고 손으로 버무려 무채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새콤달콤한 맛이 참 뛰어나다. 또한 무국이나 생무즙은 술을 많이 마셔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과로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기침이나 천식, 가래 등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그만이다.

무는 여러 가지 음식의 밑바탕이 되는 맛국물을 낼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채소다. 게다가 요즈음처럼 날씨가 추운 겨울날, 기침 감기에 걸린 사람들은 생무를 갈아 즙을 낸 뒤 꿀에 타서 먹으면 신기할 정도로 기침이 금세 사라진다. 그만큼 무는 겨울을 맞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약처럼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무는 뭐니뭐니 해도 초겨울 서리 맞은 무가 단단하면서도 약간 매콤한 맛이 나는 게 아삭아삭 씹히는 느낌도 좋고 영양가도 뛰어나다. 서리 맞은 무가 오죽 몸에 좋았으면 예로부터 '무서리 맞은 생무를 밭에서 금세 뽑아먹고 트림만 하지 않으면 동삼을 먹은 것과 같다'라는 말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겠는가.

어디 그뿐이랴. 무는 니코틴을 삭히는 해독작용뿐만 아니라 이뇨작용까지 있어 우리 몸 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버리는 역할까지 한다. 그러므로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들이나 음식을 먹어도 아랫배가 더부룩한 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평소 무채나물이나 무국, 무밥, 깍두기 등 무로 만든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이 좋다.

▲ 무는 서리 맞은 것이 가장 맛이 있고 영양가도 뛰어나다.
ⓒ 이종찬
▲ 통통하게 살이 찐 서리 맞은 무
ⓒ 이종찬
무 생즙은 사람 몸의 독을 풀어주는 소화제

중국 명나라 의사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 따르면 "무 생즙은 소화를 촉진하고 독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해준다"고 씌어져 있다. 이어 "무는 담을 제거하고 기침을 그치게 해주며 설사를 다스린다"고 덧붙여져 있다. 게다가 조선 초기 의학서 <향약집성방>에는 "수제비를 만들 때 무를 갈아 함께 반죽하면 배부르게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 했다.

사람들이 흔히 메밀국수를 먹을 때 양념장에 무를 갈아 넣거나 냉면에 무채를 얹는 것도 바로 무의 탁월한 소화 효능 때문이다. 맛국물을 낼 때 멸치나 다시마, 파, 양파와 함께 무를 반드시 집어넣는 것 또한 시원한 맛과 함께 음식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독성을 풀어내 소화기능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동무들이 꽁보리밥을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먹은 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얼른 뒷마당 텃밭에 나가 생무를 뽑아 도구통(절구통)에 찧어 즙을 내 먹였다. 또한 그렇게 생무즙을 마신 동무들은 금세 괜찮아지곤 했다. 간혹 동무들이 설사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마을 어머니들은 무를 넣은 꽁보리밥을 지어 무국에 말아먹게 했다.

무는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나와 동무들의 훌륭한 간식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밭에서 거둔 서리 맞은 무를 집 뒷마당 텃밭을 깊숙이 파낸 뒤 볏짚 움막을 지어 쌓아두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와 동무들은 입이 심심하거나 배가 고플 때마다 그 볏짚 움막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 생무를 훔쳐 먹곤 했다.

▲ 물에 깨끗히 씻은 무를 손가락 길이로 토막 낸다
ⓒ 이종찬
▲ 부엌칼로 얇게 채 썬다
ⓒ 이종찬
한약 먹을 때 무 먹으면 흰 머리 난다?

"허어! 저 넘 아직까지 대가리 소똥도 안 벗겨진 넘(아직 철도 들지 않은 놈)이 새치(흰머리)가 하얗게 난 거 좀 봐라."
"저 넘 저거 너머(남) 집 장독대 위에 한약재 말려놓은 거 훔쳐먹은 것도 모자라 생무까지 훔쳐 먹은 거 아이가."
"아예 밀가루를 덮어 쓴 거 겉구먼. 애 늙은이도 아이고, 저래가꼬 커서 장가나 갈 수 있것나."

그때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마을에서 누군가 몸이 아파 한약을 달여 먹을 때는 무를 절대 먹지 못하게 했다. 한약을 먹을 때 생무를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는 것이었다. 또한 젊은 나이에 머리가 듬성듬성 센 사람들을 보면 팔자 좋게 한약을 달여 먹으면서 남의 집 밭에 심어둔 생무를 몰래 뽑아먹은 탓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이는 뒤에 어느 한의원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한약을 먹을 때 생무를 먹는다고 해서 머리가 세는 것은 아니었다. 그 한의원은 내게 "한약에 숙지황이라는 약재가 들어 있을 때 생무를 먹으면 약효가 떨어진다"라며, "머리가 센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한약을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할 음식이 많다"라는 그런 뜻에서 나온 말일 거라고 했다.

그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한의원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어릴 때 한약을 먹은 뒤 멋모르고 생무를 먹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한약을 먹은 뒤 식당에서 별 생각없이 깍두기나 무로 만든 반찬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오십 줄에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흰 머리칼 하나 없다.

▲ 식초와 소금을 뿌려 2~30분 정도 재워둔다
ⓒ 이종찬
▲ 실파는 송송 썰고, 마늘, 풋고추 등은 잘게 다진다
ⓒ 이종찬
무채는 얇게 썰면 얇게 썰수록 그 맛이 좋아진다

무채나물을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렇다고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고 많은 재료도 필요 없다. 그저 가까운 채소시장에 나가 장딴지처럼 통통하게 살찐 무를 하나 고르고, 실파와 풋고추만 조금 사면 된다. 고춧가루나 마늘, 생강, 식초 등 기본양념들은 어느 집에나 조금씩 보관하고 있을 터.

먼저 무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다. 이때 무 껍질을 칼등으로 얇게 긁어 지저분한 곳만 없애는 것이 더욱 좋다. 무 껍질에는 비타민C가 특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어 껍질을 벗긴 무를 손가락 길이 정도로 토막 내 얇게 채 썬다. 이때 얇게 썰면 얇게 썰수록 좋다. 그래야 무채나물을 무쳐 놓아도 양념이 잘 배어들어 맛이 좋아진다.

그 다음, 얇게 채 썬 무에 소금과 식초를 약간 뿌려 2~30분 정도 재워두는 것이 좋다. 금방 썬 무채에 곧바로 양념을 하여 무쳐내면 양념이 잘 배어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뻣뻣해서 먹기에도 좋지 않다. 또한 잠시 두면 무채가 시들시들해지면서 무 속에 든 물기가 흥건하게 배어져 나와 무채 특유의 아삭아삭한 맛이 떨어진다.

이어 무채에서 흘러나온 물기를 꼬옥 짠 뒤 그릇에 담아 고춧가루를 뿌린 뒤 조물조물 주무른다. 그리고 실파와 곱게 다진 풋고추, 빻은 마늘, 식초 등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고 다시 한번 조물조물 주무른 뒤 소금으로 간만 맞추면 그만이다. 이때 매운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설탕을 조금 뿌리면 된다.

▲ 고춧가루와 식초 등 갖은 양념을 넣는다
ⓒ 이종찬
▲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른다
ⓒ 이종찬
사과와 비교했을 때 비타민 C가 10배나 많다는 서리 맞은 무. 요즈음 채소시장에 나가보면 곳곳에 서리 맞은 통통한 무가 수북이 쌓여 있다. 오늘 저녁 식탁에는 가까운 시장에 나가 서리 맞은 무를 하나 사서 무채나물을 만들어 하얀 쌀밥에 쓱쓱 비벼 먹어보자. 아삭아삭 씹히면서도 새콤달콤하게 혀끝을 감도는 그 맛이 금세 얼어붙은 겨울밤을 포근하게 감싸주리라.

소화 잘 되고 맛깔스런 무채나물 이렇게 만드세요
무 껍질 얇게 벗겨 채 썬 뒤 소금, 식초에 절여야 제맛

▲ 새콤달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인 무채나물
ⓒ이종찬

재료: 무, 실파, 풋고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식초,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

1. 서리 맞은 통통한 무를 깨끗한 물에 씻어 껍질을 얇게 벗긴 뒤 손가락 한 마디 길이로 토막내 곱게 채 썬다.

2. 채 썬 무에 소금과 식초를 약간 뿌려 30분 정도 절인 뒤 물기가 사라지도록 꼭 쥐어 짠다.

3. 실파는 1cm 길이로 썰고, 풋고추는 반으로 잘라 씨를 빼낸 뒤 잘게 송송 썰어 곱게 다진다. 이때 마늘과 생강도 잘게 다진다.

4. 채 썬 무에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붉은 색깔을 낸 뒤 실파와 마늘, 생강, 식초,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을 넣고 다시 한번 살짝 버무려 간을 맞추어 낸다.

※맛 더하기: 송송 썬 무채에 생굴과 갖은 양념을 버무려 먹어도 시원한 감칠맛이 좋으며, 입맛에 따라 새우젓 국물이나 멸치젓 국물을 살짝 뿌려도 깊은 맛이 우러난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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