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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초저녁 홍등가 입구. 바털로 플렝 지역에서 이어지는 길이다.
ⓒ 박성진
"이리로 쭉 걸어가면 돼요. 저 안 쪽이 전부 홍등가랍니다."

'트리플 엑스(XXX)'가 도시의 상징인 암스테르담. 이 도시를 방문한 내게 홍등가를 구경하는 것은 어떤 임무와도 같았다. 대놓고 성(性)을 사고파는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늦은 저녁 시간, 길을 나섰다.

'홍등가'의 유래

홍등가(red light district).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에 유포된 이야기에 따르면, 기차 철도원이 철도 교통 관리를 하던 홍등을 초소밖에 걸어 놓고 초소 안에서 성매매를 하던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다.
호기심과 흥분이 동시에 느껴졌지만 혹시나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다. '암스테르담은 마약으로도 유명한데 혹시 누가 시비를 걸어오면 어떡하지?' '마피아들의 총성이 울려 퍼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온갖 두려운 상상이 기어올라 왔다.

아파트 밀집 지역을 벗어나니 저 멀리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불빛이 보였다. 한발 두발 다가섰다. 평범한 거리의 사람들이 오가고, 옷 가게도 나오고, 커피숍도 지났다. 그런데, 어느덧 홍등가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왠지 이상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와 술집에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 빵집에서 갓 구워낸 바게트를 집어 들고 흐뭇해하는 사람들, 과일가게에서 흥정하는 사람들만 보이는 것이다.

'홍등가 모습이 이래도 되는 건가?' 머리 속에 그려온 홍등가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밝고 유쾌한 그곳. 아, 나는 도대체 어디를 온 것인가.

홍등가가 이래도 되는 건가?

▲ 담(Dam) 광장으로 이어지는 홍등가 길거리. 홍등가 중심부로 이어지는 골목이다.
ⓒ 박성진
홍등가를 생각하면서 굶주린 남성들의 음흉한 눈빛을 떠올렸다면 암스테르담에서만큼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성매매업소, 라이브 섹스극장, 스트립 바, 포르노 극장 등 강도 높은 성인 유흥 업소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도시의 유흥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유흥가에 비하면 조용하고 차분하기까지 하다.

데이트하는 연인들이나 산책하는 노부부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옷 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사먹는다. 그 사이를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퇴근길의 샐러리맨의 모습까지. 홍등가하면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질펀한 분위기는커녕 도시의 공원 같은 풍경이다.

심지어 미성년 가족을 동반한 부분도 볼 수 있다.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와 함께 가족 동반 관광을 하고 있던 스웨덴 관광객 부부는 "오히려 교육하기 좋다. 미리부터 알려주고, 비판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성을 보다 올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남자 성인의 전유 공간이 아닌,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아무 거리낌 없이 즐기는 듯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그러나 아직 어둑한 밤의 모습은 알 수 없다.

몽환적이되 음침하지 않은 밤의 홍등가

▲ 홍등가 가로등과 운하.
ⓒ 박성진
홍등가든 유흥가든 어둠이 깔리고서야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암스테르담 홍등가 역시 그렇다.

홍등가를 가로지르는 4개의 운하, 그 주변의 각종 식당 카페 유흥업소가 만들어내는 불빛, 거기에 더해지는 주황색 가로등은 차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거칠고 음침하고 음흉한 느낌은 없다.

유럽에서 소문난 섹스 관광지답게 이곳에는 홍등가 관광프로그램이 개발돼 있다. 전문투어가이드가 홍등가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들려주기도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는 일본인 관광 가이드 토시카츠의 설명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홍등가는 400여 년 전에 형성됐다. 네덜란드가 해상무역으로 유럽의 초강국으로 떠올랐던 1600년대 초반에 시작된 것. 암스테르담을 거미줄처럼 이어주는 수많은 운하를 타고 배가 들락거리며 뱃사람을 상대로 한 술, 음식, 윤락업 등이 번성하면서 홍등가는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했다.

중앙역, 구 왕궁, 오래된 교회, 참전용사 기념탑, 국립 미술관. 동서남북으로 암스테르담 홍등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다. 암스테르담 도심에 있는 이곳에서 불과 몇 발작 떼지 않고도 곧바로 홍등가로 들어갈 수 있다. 사통팔달의 요지에 홍등가가 있는 셈이다. 자정 무렵까지는 관광객들로 홍등가의 온 골목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합법적 납세자로 일하는 성매매여성들?

▲ 홍등가의 유명한 섹스숍 '치키타'. 성인 영상물을 비롯해 각종 성인용품이 총집결 돼 있다.
ⓒ 박성진
그런데 네덜란드 정부는 성매매를 왜 합법화 한 걸까. 미국 국무성이 2000년에 발간한 <국가별 인권실태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성매매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합법화함으로써 성매매여성들의 건강 증진, 영업환경 개선을 꾀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넓게는 인권 관련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한편, 규정된 법체계 내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성매매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홍등가를 순찰 중이던 암스테르담 경찰서의 마르셀 경관은 성매매 합법화와 성매매업소에는 지방정부가 발급한 공식 영업허가증이 있어야 하고, 포주 영업, 호객 행위, 강제 성매매, 미성년윤락, 성매매를 자극하는 언행은 모두 불법이며 단속 대상이라고 말한다. 비유럽권 출신 여성의 성매매도 불법이다.

▲ 홍등가를 순찰하는 경찰.
ⓒ 박성진
이 곳 성매매여성들은 불법체류자를 제외하고는 정식 노동자로 권리를 보장받으며 세금도 낸다. 또 이들 여성들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과 업소자체 경비망이 갖춰져 있다. 홍등가 유흥업소 종사자인 타이론(가명)은 성매매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손님으로부터 폭행이나 위협을 당할 경우, 긴급 비상벨을 통해 경비나 경찰이 곧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장치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 '니엘 테 카테 매춘협회'는 미성년자 윤락 금지, 안전한 섹스 등 7가지 성매매 규칙을 홍보하고 있기도 하다. 7가지 성매매 규칙이란 '상호 존중' '청결한 신체' '정확한 금액, 시간, 행위 합의' '안전한 섹스' '주변 업소나 손님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환불 절대 불가' '미성년윤락금지' 등이다.

▲ 홍등가의 성매매여성 밀집 지역. 유명한 붉은 불빛의 전면 유리창과 그 뒤에 선 여성들이 보인다.
ⓒ 박성진
사실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유명세는 바로 성매매업소의 붉은 창과 그 너머에 서 있는 성매매여성들의 풍경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집창촌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성매매는 서구에서는 매우 희귀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주로 길거리에서 유혹하여 어디론가 이동하거나, 윤락녀 개인 주거지, 공원이나 차 안에서 영업하는 방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물론 현재도 이런 방식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암스테르담에도 계속 남아있다).

붉은 창 너머로 성매매 여성이 서 있는 형태의 성매매업소는 2000년 10월부터 합법화 됐다.

그러나 절반은 불법 영업

▲ 홍등가 길거리 중 술집, 스트립바 밀집 지역. 홍등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 박성진
그러나 아무리 납세자로서 합법적인 노동자로 살아간다지만, 사회적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암스테르담 매춘 정보센터 홈페이지에 따르면, 윤락 여성들은 은행 대출 창구에서 무시 당하기 일쑤이고 은행 대출 상품 구매자격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또 위에서 말한 <국가별 인권실태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의 '야무진 꿈'과 달리 현재 이 곳에 있는 성매매 여성의 절반가량이 불법으로 일하고 있다. 합법화 조치 이후에도 불법매춘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 홍등가 붉은 창 너머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출신의 여성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타이론은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또한 경찰들은 밤마다 거리를 순찰하며 포주단속을 하고 있다.

더욱이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성매매 문제가 과연 합법화로 해소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홍등가를 둘러본 한국인 관광객 정선아씨는"성매매의 합법화는 결국 정부에서 성매매 관련 문제를 관리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서 포주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며 일침을 가한다.

암스테르담의 '트리플 엑스(XXX)'

▲ 암스테르담 음악박물관 입구에 붙어있는 'XXX' 장식.
ⓒ박성진
엑스표 세개. '키스로 봉했음(sealed with a kiss)'이라는 로맨틱한 의미도 있지만, 한편 포르노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트리플 엑스 기호는 암스테르담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도 보호 철기둥, 교회 첨탑, 극장, 기차역 시계 밑 등 없는 데가 없다.

그렇다면 암스테르담 도시 자체가 섹스로 뒤덮인 타락의 도시라는 의미일까? 아니다. 암스테르담의 '트리플 엑스'는 '자비심, 결단력, 용맹심'을 상징하며 오래된 무역 상업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네덜란드는 서구 세계에서도 특히 '자유롭고 관대한' 정서로 유명하다. 때문인지 섹스, 마약 문제에 대해 늘 개방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암스테르담 관광 전문 사이트 '암스테르담 인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정서는 섹스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 속에서 자리 잡게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유롭고 관대한 정서, 400년이라는 역사도 여전히 '성매매 자체가 과연 합당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는 해답을 제시할 수 없는 듯했다. 매매춘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와 다른 점이라면, 은밀하지 않고 체계화된 공간에서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성매매만을 위한 어둠의 골목을 넘어서,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거대한 종합 유흥 공간이자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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