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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5일 이후 국방부는 고 노충국씨 사건에 대해 모두 4차례나 해명 및 조사결과 발표를 했지만 내용은 모두 달랐다. 지난달 27일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 앞서 고개를 숙인 윤 장관. 11월 5일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김홍식 국방부 감사관. 11월 10일 국방부 발표에 항의하는 기자들. 17일 국방부 발표 모습(왼쪽부터)
ⓒ 오마이뉴스

"진실하지 않은 보고는 조직에 해를 끼치고 국민을 속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군대조직에서 보고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생명과 같다. 잘못된 보고로 인한 혼선과 혼란, 이로 인한 잘못된 판단과 대책은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 16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여단장급 이상 지휘관들에게 보낸 '장관 지휘서신'의 일부다. 절제된 문장으로 이어졌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게 아니다. 서신에는 윤 장관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다. 한마디로 군 일선 지휘관들에게 "앞으로 똑바로 보고하라"는 질책을 쏟아 부은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위암 말기로 사망한 고 노충국씨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윤 장관과 국방부는 톡톡하게 '망신'을 당했다. 군의 수장인 윤 장관은 10월 25일 국회에 출석해 "군 당국은 노충국씨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윤 장관의 해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 나라의 장관이 졸지에 '거짓말쟁이'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이후 국방부의 해명과 조사 발표가 거듭 됐지만, 의혹은 더욱 커졌다. 발표 내용이 매번 번복됐기 때문이다.

장관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국방부의 허위 보고

윤 장관을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은 군과 국방부의 허술한 조사와 보고 시스템이었다. 국방부는 고 노충국씨 사망사건과 관련, 10월 24일 <오마이뉴스> 첫 보도 이후 모두 네 차례에 걸친 반박과 해명, 감사 및 수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발표 내용은 '그때그때 달라요'였다.

●10월 25일 브리핑 "군 당국 최선 다했다"= 고 노충국씨 사건이 보도된 바로 다음날인 10월 25일 오후 국방부는 출입기자를 모아놓고 '반박성 브리핑'을 진행했다. 국방부는 이 자리에서 고 노충국씨 외래진료기록지와 소견서를 근거로 "군 병원의 진료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방부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노씨가 3월 29일과 4월 28일, 5월 27일 세 차례에 걸쳐 국군광주병원 등에서 진료를 받았고 군의관도 위암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반박했다. 또 7월 27일 노씨 아버지인 노춘석씨가 진료기록부와 소견서를 복사해서 가져갔다고 밝혔다. 진료기록지까지 들이댄 국방부의 반박 탓에 대부분 언론은 노씨 사건을 외면했다. 국군의무사령부로부터 똑같은 보고를 받은 윤 장관도 국회에 나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됐다.

●11월 5일 중간 감사결과 발표 "군의관 진료기록부 조작"= 10월 27일 새벽 노충국씨가 끝내 사망하고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국방부는 진상조사에 나섰다. 10월 28일 국방부는 대변인 명의의 애도 성명을 내고 모두 6명으로 이뤄진 임시 합동조사단(단장 최홍숙 국방부 감사기획과장)을 구성했다.

임시 합동조사단은 10월 28일 곧장 광주로 내려가 국군광주병원과 군의관들을 상대로 자체 감사를 벌였다. 이어 11월 4일 <오마이뉴스>가 "노씨의 진료기록부와 소견서가 조작됐다"고 보도하자 다음날 임시 합동조사단은 부랴부랴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는 여기에서 "국군광주병원 군의관 이모 대위가 4월 28일 최초 작성했던 진료기록부에는 '위암 의증'과 관련한 기록이 없었으나 7월 24∼25일경 노충국씨 부친이 진료기록부 복사를 요구하자 이 대위가 진료기록부에 '내시경 소견상 악성종양 배제 어려워 환자에게 설명'이라고 추가로 기록했으며 내시경 소견서에도 가필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오마이뉴스> 보도 하루만에 '진료기록부 조작'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10월 25일 첫 반박 브리핑과는 정반대 결과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때도 "진료기록부는 조작됐지만 군의관이 위암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사실"이라고 버텼다.

군의관이 '위암 의증'을 가필한 것은 맞지만 노씨에게 구두로 경고한 것도 맞다는 주장이었다. 국방부는 또 상부 지시에 의한 진료기록부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11월 10일 감사결과 발표 "위암 경고했다는 군의관 주장 사실 아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조사 결과는 또 바뀌었다. 11월 10일 임시 합동조사단은 중간 감사결과 발표 5일 만에 '최종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위암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군의관 이아무개 대위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불과 닷새 전에 "위암 가능성을 구두로 경고했다"고 버티던 국방부가 또다시 말을 바꾼 것이다. 아울러 이날 국방부는 '조직적 은폐 의혹'에 대한 군의관 이 대위의 새로운 진술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대위가 임시 합동조사단 조사 과정에서 "지난 8월 10일 국군광주병원 병원장실에서 병원장 홍아무개 대령과 진료부장 직무대리 황아무개 대위에게 가필 사실을 보고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는 진료기록부 조작이 애초 '상부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국군광주병원 책임자들은 <오마이뉴스> 보도 전에 이 대위의 가필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셈이 된다. 이 부분 역시 조직적 은폐 의혹을 발뺌하던 국방부 해명과 정면 배치되는 진술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병원장과 진료부장이 이 대위 진술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며 추가 수사를 하겠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피해갔다.

●11월 17일 추가 수사결과 발표 "이 대위 상부에 '가필' 보고 안했다"= 1주일 후인 11월 17일, 이번에는 국방부 합동조사단 수사1과(과장 권태석 중령)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합동조사단 수사1과는 국방부내 상설 조직으로 자체 조사활동을 벌인 임시 합동조사단과는 다른 조직이다.

합조단 수사1과는 이날 "이 대위가 진료기록부 조작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감사결과 발표에서 "8월 10일 병원장 등에 보고했다"던 이 대위의 진술 자체를 전면 부인하는 내용이다. 1주일 만에 이 대위의 진술이 또 번복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이 대위가) 언론보도 이후 자신으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데 따른 심적 부담감을 느껴 최초에는 지휘계통인 진료부장, 병원장에게 진료기록부 가필 사실을 보고했다고 동료들에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이 대위가 책임 회피를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다.

합조단 수사1과는 임시 합동조사단이 밝힌 가필 날짜(5일 발표에서는 7월 24∼25일, 10일 발표에서는 7월 24∼28일)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수사1과에 따르면, 이 대위는 7월 20일 노씨 아버지 노춘석씨가 병원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건강보험과 군무원에게 곧바로 진료기록부를 건네 받아 가필했다는 것이다.

군대와 국방부, 일개 군의관 거짓말에 휘둘렸다?

이처럼 지난 1개월 사이 노충국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발표는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윤 장관이 16일 장관 지휘서신을 내려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윤 장관의 서신에는 '보고와 명령'에 의한 지휘체계 확립이 최우선 과제인 우리 군의 문제점이 '노충국 사건'으로 인해 낱낱이 드러났고, 이를 책임질 조직의 수장마저 거짓 보고에 휘둘렸다는 뼈아픈 반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17일 국방부 발표와 장관 지휘서신으로도 풀리지 않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우리 군과 국방부는 지난 1개월 사이 일개 군의관 한 사람의 거짓 보고에 속아 뿌리째 흔들렸다는 결론이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진료기록의 조직적 은폐 여부를 둘러싼 의혹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노충국 사건'에 대한 네 번의 발표가 모두 번복된 데는 이 대위 진술에만 의존한 탓이 크다. 군 수사당국은 이 과정에서 군의관 대위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는 더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군 수상당국은 지난 10월 28일 처음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뒤 지난 10일까지 노충국씨 사건을 포함한 4건의 군 의료민원 사고에 대해 피해자 조사를 거의 하지 않아 '부실조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과연 군의관 이 대위의 상급자들과 의무사령부 간부들은 진료기록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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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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