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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시궁창으로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가

▲ 개울에 떨어진 떨잎들
ⓒ 박도
산과 들, 그리고 거리에도 떨잎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늦가을이랄까 초겨울의 썰렁한 계절이다. 부지런한 농사꾼들은 들판의 곡식들을 모두 거둬들여서 들판조차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벼를 거둬들인 농사꾼들은 날로 떨어지는 쌀값으로 죽을상이다. 평생 농사만 지어왔는데 영농비는 해마다 오르고 쌀값은 더욱 떨어질 테니 이제는 뭘 해야 하느냐고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조상이 물려준 땅을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어서 남들이 다 떠나도 그대로 고향을 지켰건만 남은 건 빚이요, 냉대요, 고독이요, 병이라고 푸념한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게 자신의 팔자요, 못난 탓이라고 이내 체념하면서 엊그제 뽑은 콩포기에 들깨 단에 도리깨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음 책을 내고자 서울로 가서 출판사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두 사람이나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사무실을 지키는 출판사 대표가 지난 책 인세를 여태 정산해 드리지 못하였다고 무척 겸연쩍어 했다. 낯익은 두 사람은 출판사 사정이 어렵게 되자 그분들이 알아서 떠났다고 하였다. 늘 그랬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때는 없었다면서 출판사 경영 20년에 쪽박 찰 형편이라고 하였다. 평소 낙천적이고 말이 없는 분의 입에서 나온 얘기고 보면 예삿일이 아닌 모양이다.

▲ 들깨 단에 도리깨질을 하는 농사꾼들
ⓒ 박도
책상 위에 나뒹구는 스포츠 신문의 머리기사는 포로야구 선수들의 스토브리그 연봉 얘기로 전면을 메웠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김 아무개 선수는 4년 계약에 14억원에 사인을 하고, 장 아무개 선수는 4년에 42억원, 양 아무개 선수는 2년에 13억원, 정 아무개 선수는 3년에 16억원… 등으로 '억'이라는 단위가 일반화가 되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연예인 CF 출연료는 6~7억이요, 슈퍼는 10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게 아니고 그들 가운데 일부라고 하지만, 작가나 출판인들 가운데 연봉 1억원이 넘을 분이 몇이나 될까? 어떤 시인은 평생 부인에게 갖다 준 돈이 장례식 때 부의금보다 적었다고 한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의 고수입에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문화의 불균형이 너무 심하고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점차 더욱 심해가기에 하는 말이다. 걸핏하면 ‘억 억’ 하는 소리가 글쟁이나 출판인들을 기죽이는 정도를 지나 살맛을 잃게 하고 있다.

▲ 떨잎이 진 자작나무 미술관
ⓒ 박도
내가 전업작가로 들어선 이래 연 수입을 공개치 않겠다. 연봉이 사람 능력의 평가 척도가 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내 수입을 공개하다가는 이나마 지니고 있는 자긍심도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출판사 대표는 "달리던 자전거가 멈추면 넘어지듯이, 출판사가 책을 내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가지고 온 원고를 두고 가라고 했다. 원고를 떨어뜨리고 빈 손으로 출판사 문을 나서는데 마침 가로수의 떨잎이 우수수 쏟아져서 내 마음이 더욱 썰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글을 쓰는 사람이 배가 부르면 그 처지에서 글을 쓰게 된다고. 하기는 내 배가 부르면 들판에서 도리깨질하는 농사꾼들이 보이지 않을 게다. 새로 태어날 내 책이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기를 빌면서 안흥으로 내려오고자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내년 봄에는 다시 곡식들로 가득 차리라.
ⓒ 박도
명품이나 해외유학이나 프로골프,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에만 사람들이 쏠리고 영혼을 밭갈이하는 데는 소홀하는 세태가 염려스럽다. 우리 모두 시비선악이 뭔지, 염치 양심이 뭔지도 모른 채, 물질에 껍질문화에 취하여 시궁창으로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안흥으로 내려오는 버스 차창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썰렁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을 되새김질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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