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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의 두보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는 말년을 전란으로 피난지에서 비참하게 보냈다. 가족과 생이별한 뒤 홀로 떠돌면서 늙고 병든 자신의 모습을 절구나 율시에 그대로 담았다. 내가 두시언해를 배울 때도, 가르칠 때도 매번 깊은 감동받았고, 지금도 읽을수록 그윽한 맛을 느끼게 한다.

많은 병에 얻고자 하는 것은 오직 약이니
미천한 이 몸이 이것밖에 무엇을 구하리오.
(多病所須唯藥物 微軀此外更何求)


위 시구는 두보의 <강촌(江村)> 미련(尾聯, 마지막 연)이다. 전란 가운데 고향과 가족을 이별하고 외롭게 객지를 떠돌면서도 안분지족하는 두보의 넉넉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얼마 전 나는 작가로서는 치명적인 어깨 병을 얻어 횡성에 있는 한 한의원(평화당)에 다니면서 부지런히 침을 맞고 있다. 어깨 통증이 올 때마다 절망감에 빠지곤 하였는데, 침술의 신통함을 얻어 다시 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한방병원 따끈한 전기 매트에 누워 팔다리에다 침을 꽂고 있으면 그때마다 '침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내 지난 생애에서 고교 시절이 가장 어려웠는데 등록금을 낼 수가 없어서 휴학을 하였다. 그런 중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입이 돌아져 있었고 입에서 침이 흘렀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침술원에 갔으니 별 효험이 없었고 치료비도 부담이 되었다. 주인집 할머니가 나를 보고서는 종로 재동초등학교 옆에 사는 한 할아버지를 소개해 주었다.

▲ 이 백도라지꽃을 가난한 학생을 치료해 준 이름 모를 할아버지에게 드립니다
ⓒ 박도
그 할아버지는 면허가 있는 한의사가 아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에게 침을 놓아주는 분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 몰골을 훑어보더니 ‘와사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영양 실조에다가 찬 방에서 자면 오는 증세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허리에 찬 안경집 같은 침구통에서 대침을 꺼내더니 입이 돌아간 반대편 볼에다가 대침을 꽂았다. 그때 나는 그 대침에 진땀을 흘리면서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아프리라는 내 선입감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0센티미터쯤 되는 대침을 내 오른쪽 볼에 거의 다 꽂고는 손가락으로 몇 번 친 뒤 천천히 뽑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침을 뽑고는 찬 방에서 자지 말고 세 끼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일렀다.

돌아오면서 어머니가 저고리 소매에 넣어둔 돈을 수고료로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그 돈으로 아이 고기국이라도 끓여주라고 끝내 받지를 않았다. 나는 그 침 한 방으로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나는 그 뒤 그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하였고, 함자도 모른 채 오늘까지 지내왔다. 그때가 1961년으로 44년 전이니 아마 그 할아버지는 벌써 저 세상 분이 되셨을 거다. 내 저승에 가서 그 어른을 만나 뵐 수 있을는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10여 년 전, 고3 졸업반 담임을 맡으면서 그 해 장편소설을 썼다. 그때는 워드를 칠 줄 몰라서 만년필로 원고지에다가 썼다. 나는 원고에 대하여 결벽증이 심한 성미라 완성한 원고는 3000매 정도였지만 파지까지 1만매는 더 썼다. 혹 학생들 지도에 소홀하였다는 후문을 들을까봐, 결근 지각 조퇴 한 번 하지 않고 주말과 밤을 이용하여 썼더니 탈고 후 얼마 지나자 마침내 어깨 통증이 왔다.

오른 팔을 들 수도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하였다. 고통을 참아가며 수업을 하는데 판서에 이만저만 고통이 심하지 않았다. 누군가 학교에서 가까운 연희 입체교차로 곁에 있는 한 한방병원(동서한방병원)을 소개해 줘서 열심히 다니면서 침을 맞았다.

▲ 지난 여름, 내 집 뒤뜰에 핀 원추리꽃, 이 꽃을 나에게 침을 놓아준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평화당한의원 이현주 선생에게 드립니다
ⓒ 박도
한 달 남짓 다니자 씻은 듯이 나았다. 침을 맞으러 다닐 때는 다시는 팔을 무리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만 어찌 작가가 어깨를 쓰지 않으랴. 안흥에 내려오고도 벌써 두 번째 앓는 어깨 통증이다.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절망감이 심하였는데도 다행히 이번에도 침술 덕분에 통증이 멎었다.

나를 치료하였던 이현주 한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더니, 서로 인연이 맞아서 제 침이 들었던 모양이라고 겸손해 했다. 다행히 나는 기(氣)와 혈(血)이 살아 있어 효험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내 몸 돌보는데도 힘쓰라고 충고하였다.

하늘은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면서 허튼 글 쓰지 말고, 내 마음 속 깊이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라'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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