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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에 도착해보니, 널따란 공원 마당에 옛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지프차가 많이 서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그곳이 전시장인줄 알고 한참동안 헤매며 보더군요. 그런 아들을 데리고 박물관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제 눈에 뜨인 것이 바로 '가이드 투어'였죠.

안내서를 읽어보니 주말과 일요일에는 오전11시와 오후 3시에 가이드가 직접 자동차 박물관을 안내해준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퀴즈를 맞춘 가족에게는 명차 시승의 기회를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저를 유혹했죠. 시계를 보니 2시 45분. 저는 박물관 관내를 관리하는 분께 여쭤보았습니다.

"정말 3시부터 투어를 하고 명차도 태워주나요?" 그분은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잘 맞춰보세요"하며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오후 3시. 그런데 입구 로비에 모인 가족은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달랑 2가족 뿐이었습니다. 가이드 안내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죠. "두가족밖에 없어서 설명하기가 곤란하실 것 같아요." 가이드는 웃으면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다보면 하나 둘 늘어난답니다" 하면서 저를 안심시키기까지 하시더군요.

가이드는 우리 일행에게 나름대로 선별하여 자동차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를 받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죠. 그러는 동안 가이드의 말대로 하나 둘 사람들이 투어에 합류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제게 귓속말을 하더군요.

"엄마! 경쟁자가 자꾸 늘어나요. 이래서야 명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저는 딸아이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가이드의 설명을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꼭 태워줄게." 그날 저희가 설명을 들었던 자동차들은 대부분 이제는 운행이 되지 않는 자동차가 많았습니다. 20년대 이전의 자동차들은 시동을 걸기가 매우 불편했죠. 하긴 자동차라기보다는 경운기같았습니다. 그렇게 발전하여 드디어 유리창에 와이퍼가 달린 자동차도 있었죠. 문제점은 위에서 아래로 닦는다는 것이 우스웠지만요.

50년대 자동차는 한마디로 여성적인 스타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여성이 운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유층 여성들이 애용했던 만큼 색상도 노랗고 빨간 원색이 많았죠. 거기에다가 와인바에다가 화장용 쇼케이스까지 있어서 여성들을 배려한 자동차 제작기법이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검정색의 자동차가 품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검은색의 무거움이 주는 품격이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는데, 가이드의 말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포드-T가 본격적으로 자동 생산시스템을 갖출 때, 공정을 줄이기 위해 검정색 한가지만으로 차체를 칠했다는군요. 그렇게 해서 검정색 자동차가 탄생했답니다. 뷰티존의 50년대식 자동차와 대중적인 자동차인 포드-T와 비틀을 보고 나니 프레스티지존의 고급차가 나타났습니다. 세계3대 명차로 일컬어지는 캐딜락, 벤츠, 롤스로이스가 있었죠. 그 차들의 중후함과 차별화된 디자인이, 영화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익숙한 이름의 자동차가 없자 풀이 죽어버리더군요. 죽어버린 기는 스포츠 존에 가서야 살아났습니다. 날렵하게 잘 빠진 차체를 보는 순간,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달리고 싶다'는 충동감과 스릴감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아들 녀석은 가오리 모양의 스팅게이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저는 이 차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만지면 안되는 스팅게이에 손까지 댔던 아들 녀석은 결국 가이드에게 지적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관람해야 할 차이니 만지지는 마세요."

가이드의 말을 뒤로 하고 제 시선은 한국의 차에 가 있었습니다. 딸아이를 데리고 앞장서가며 설명을 조금 해주었죠. 맵시와 포니는 저도 타본 차들이라 설명이 쉽더군요. 그때, 딸아이가 저를 불렀습니다. "엄마! 엄마가 말씀하신 자동차가 정말 있어요." 그 차는 다름아닌 시발자동차였습니다. 10여일 전, 딸아이와 학교 숙제를 같이 했죠.

주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것들'일 때, 저는 딸아이에게 시발자동차를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그런 제 말을 욕이 담긴 농담으로 듣더니, 그 차가 정말 있으니 많이 놀랐나 봅니다.

링컨 컨티넨탈을 시승하다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 퀴즈시간이 되었습니다. 총 8가족이었는데, 저는 딸아이에게 약속한 것이 있어 긴장이 되더군요. 가이드가 퀴즈를 냈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자동차로..." 저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길까봐 가이드가 문제를 모두 제출하기도 전에 "정답"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마음이 급하니 말도 더듬게 되었죠.

"포드T요."

그 순간, 딸아이와 아들 녀석은 손뼉을 치고 저는 명차 시승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널찍한 애니카 공원으로 갔습니다. 링컨 컨티넨탈, 제가 언제 이런 명차를 타보겠습니까? 저희 가족은 기분 좋게 링컨 컨티넨탈이 주는 중후하고 널찍한 의자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가이드가 즉석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셨고, 애니카 공원을 두 바퀴 운행하는 명차 시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인지 가을 하늘이 더 높더군요.

명차 시승을 마치고 다시 박물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박물관 벽면을 가득 채운 자동차들의 심벌을 관찰하면서 '세상에는 저렇게 많은 자동차들이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했죠. 2층 전시장은 자동차 경주와 관련된 차들과 시설들이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직접 자동차 시승을 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기가 4대 있었고, 포뮬러 경주 등 각종 경주에 대한 내용도 상세하게 되어있더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승 모자를 쓰고 우승컵을 든 채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많은 부모님들이 그곳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했죠. 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촬영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박물관 견학이니까요.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서쪽 하늘로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구름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해가 지는 방향으로 길을 만드는 것을 보며, 아들이 그러더군요. "비행기박물관은 하늘에 만들어야 할 거야." 오랜만에 아이들과 뜻깊은 하루를 보낸 날이었습니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미술관'을 가자고 조르는 것도 기특했던 날이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의 일기를 보니, 아이들도 놀이동산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더군요. 물론 제게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그것도 제가 전혀 문외한인 분야를 기분좋게 배우는 일.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면에서 이날의 자동차박물관 견학은 제게 또 다른 배움의 방법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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