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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하는 이상해씨
ⓒ 김영조
지난 1994년에 제정되어 12회를 맞는 (사단) 한국연예협회 주최의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이 오는 11월 1일 늦은 5시에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있을 예정이다. 특히 이번 12회 시상식부터는 '연예예술인 사회봉사상'을 신설하여 연예활동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렵고 불우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범 연예인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이번 시상에서는 문화훈장을 받는 대상에 희극배우 이상해씨가 뽑혔으며, 연예발전공로상 대통령 표창에 가수 김수희씨, 국무총리 표창에 김희진(창작), 남선희(무용), 김상배(가수)씨 등이 뽑혔고,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에 가수 김광남씨 외 5명, 특별상(예총회장상)에 노래하는 정치인 정두언 국회의원 외 5명 등이 상을 받는다.

특히 이번 문화훈장을 받는 이상해씨는 부인 김영임씨가 2003년 화관훈장을 받은 적이 있어 최초의 훈장 부부 동시수상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이상해씨가 훈장을 받은 까닭을 인터뷰로 알아본다.

문화훈장을 받을 이상해씨는 1964년 일반무대에 데뷔하여 1968년부터 단짝 '이상한'씨와 함께 초창기 방송의 많은 코미디프로를 만드는 작업에 함께 하였으며, 우리 텔레비전 사상 최초의 '스탠딩콩트스타일(희극배우가 관객들 앞에 서서 대본에 의한 상황극이 아닌 오직 '말'로서 관객과 대화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형식)'의 코미디를 시연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1982년에는 한국방송 텔레비전의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이란 프로그램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희극의 황제 "이주일'씨와 짝을 이룬 명연기로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이주일씨가 국내 코미디계의 황제로 등극하는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바 있으며, 1993년 한국방송(KBS) 연기대상, 1994년 한국방송 방송대상을 받았다.

▲ "이상한. 이상해 단짝" 전성시절 사진
ⓒ 이상해
- 이번 수상은 부부가 같이 훈장을 받는 최초의 연예인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른데 소감을
"남이 상을 받을 때는 '나는 언제나 받아보나?',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나는 아직 자질이 모자라는가 보다', '나는 지금까지 잘못 해왔나 보다' 등의 생각을 하곤 했는데 막상 받는다고 하니 기쁨보다는 덜컥 겁이 나고 무섭다. '연기자 생활이 끝난 건 아닌데 이젠 어떻게 하란 말인가?'와 '인정을 받았으니까 이젠 사회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따위의 생각과 함께 구속되는 느낌도 든다.

사실 사회에 제대로 보답을 못한다면 상을 받을 자격도 없는 것 아닌가? 따라서 받는 것보다는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부인이 받을 때는 어쩌면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제 나도 같이 받게 되니 두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는 말다툼도 못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더 많아졌다."

- 어떻게 희극배우를 하게 되었나?
"처음 연예계에 나왔을 때는 지방공연에 따라다녔는데 그 즈음은 노래, 춤을 비롯해 온갖 잡역을 다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한번은 서울의 한 극장에서 개관 공연을 하는데 재즈가수로 불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자가 출연을 하지 않았다. 이때 사회를 대신 보게 되었는데 날씨는 덥고, 첫 무대라 긴장은 되고,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된 채로 무조건 흔들었다. 이를 보고 관객들이 환호를 했고, 단장이 정식 사회자로 발탁을 한 것이 계기이다.

이 일이 있은 뒤 나는 '땀 흘린 것이 인정받는다'는 교훈을 얻었고, 오로지 열심히 노력하는 희극배우의 길을 가게 되었다."

▲ 다정한 이상해, 김영임 부부의 모습
ⓒ 김영조
- 그동안 오랜 희극배우를 하면서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꾸준히 고민했다. 그런데 경험을 해보니 실력도 문제지만 어른들 옆에서 그를 돕고, 잘 모시는 것이 중요했다.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것도 역시 같은 것이란 생각이다. 부모에게 잘한 사람이 모든 면에서 잘하고 잘 풀리더라는 결론을 얻었다. <김영임의 노래 '효' 공연>이란 제목도 그런 연유로 내가 지었다. 나는 앞으로도 공연을 통해서 언제나 효를 가슴에 담고 갈 것이다."

- 뒤돌아본 희극배우의 삶을 말한다면
"공부하랄 때 안 하고, 겁없이 무대에 올랐다. 그래서 희극배우 하는 동안 내내 힘들었다는 생각이다. 뒤늦게야 아들뻘 되는 사람들과 같이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진작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41년의 희극배우 생활은 그래서 내겐 너무나 모자란 세월이었다."

- 부인과 만난 이야기, 그리고 결혼생활은 어땠나?
"37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는데 한무씨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처음 시큰둥했었고, 내가 너무 맘에 들어 적극적으로 접근을 했다. 한번은 택시로 아내를 납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뒤 수상스키 타는 장면 사진을 찍어야 할 아내가 수상스키를 하는 내게 가르쳐주기를 청했고, 그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결혼 두 해 동안은 일주일에 닷새는 부부싸움을 했다. 한번은 이혼서류를 들고 가정법원이 아닌 경찰서를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 그래서 이혼이 안 된 모양이다(웃음). '이렇게 싸우면서 27년의 부부생활을 꾸린 건 기적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 하나로봉사회 무료공연 장면
ⓒ 이상해
지금 내가 얻은 교훈은 부부가 싸우더라도 헤어질 생각말고, 기다리면서 싸우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뒤 헤어지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잘 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에게 해준 것이란 싸움밖에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다."

이쯤에서 나는 아내 김영임씨에게 이에 대한 답을 들어보고 싶었다. 연예인들 중 모범을 보이는 부부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이상해씨의 이 말에 대해 아내로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 이상해씨가 부부싸움만 줬다고 하는데 아내로서의 생각은?
"나는 막내로 사랑만 받고 자랐기에 아무것도 몰랐고, 그래서 장남인 남편에게 시집와서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신혼 때 고부간의 갈등이나 아내의 응석을 남편은 모른 체했기에 섭섭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생각하는 참 못된 신부였다. 그런 내게 남편은 지금까지 큰 역할을 해줬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을 남편과의 삶 속에서 남편에게 배웠다.

▲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는 김영임씨
ⓒ 김영조
이제 아이를 낳고 살아보니 그때 남편이 어머니가 아닌 아내 편을 들었으면 우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준 남편에게 고마울 뿐이다. 부부가 싸움도 중요하지만 칭찬할 것이 있으니까 사는 것은 아닐까? 남편이 80살이 되면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때를 기다리며 산다."

이상해 그는 "모든 일을 결정할 때 과연 저 사람이 어른들에게 어떻게 했느냐를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모든 사람이 그런 평가를 할 때 사회가 더 행복해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모든 근본은 효에 있다"고 강조를 하며, 인터뷰를 끝낸다.

옆에서 인터뷰를 내내 지켜보던 심남(50. 이상해씨와 하나로봉사회를 처음부터 같이 꾸려 나온 후배)씨는 한마디 거들어야겠다며 나선다.

"형님은 조용한 리더십을 가진 분입니다. 어떤 궂은 일이라도 후배들을 시키지 않고, 본인이 솔선수범하는 그런 분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따뜻한 분입니다. 저는 강릉에 사는데 서울에 와서 연락을 하면 아무리 바빠도 한 번도 그냥 보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밥 한 끼라도 사 먹여 보내는 그런 성품입니다. 그래서 나는 14년을 형님과 함께 하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이상해씨는 1991년 하나로봉사회를 만들어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해 무료공연과 봉사를 해왔는데 1995년에는 문체부장관 표창장(한국연예협회선행연예인)을 받았다. 또 지금까지 아내 김영임씨와 함께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후원금을 남모르게 지원하고, 현재도 활발하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크게 내세우지도 않는다. 국민에게 사랑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점이 이번 훈장을 받게 되는 주 요인일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아직까지 방송에서 본인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후배 연기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훈장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삼았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끝마치고 나오는 순간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김치를 담그는 김영임씨를 보면서 나는 이 가정의 삶을 짐작해본다.

▲ 김영임씨가 그린 그림 앞에선 부부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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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