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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대도 들어가기 힘든 성남 태평1동의 다가구 주택. 10평 남짓되어 보이는 방에 살고 있는 6살 신승현, 2살 신승국. 남달리 커다랗고 예쁜 눈을 가진 개구쟁이 아이들에게는 지금 엄마가 없다.

▲ 아이들과 함께 아내의 사진과 편지를 보고 있는 신근선씨.
ⓒ 김혜원
[알립니다] 이렇게 돕겠습니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필리핀 아내가 국내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홀로 본국으로 돌아가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남편 신근선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보도되자 신씨를 돕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우선 네티즌 여러분들께서 이 기사에 보내주시는 '좋은기사 원고료'를 전액 신씨 가족에게 보내기로 했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애 엄마가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너무 힘들어 필리핀으로 보냈어요. 병원에서는 중기라는데 가슴에서 피고름을 쏟고 고통스러워할 땐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예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하는데 우느라고 통화도 하지 못해요."

신근선(43)씨의 아내인 부란주엘라 아멜리아(33)는 필리핀 사람으로 6년 전 신씨와 결혼을 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 2개월 전 필리핀으로 간 아내가 보낸 사진과 편지를 어루만지며 아이들과 함께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신씨. 가난과 무지 때문에 아내를 필리핀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는 그 역시 언뜻 보기에도 정상적인 몸은 아니다.

"저도 2002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뇌가 거의 상실된 상태입니다. 왼쪽뇌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요. 그래서인지 가끔씩 애들 데리고 공원에 나갔다가도 길을 잃곤 해요. 병원에서는 장애2급 판정을 받았고요."

신씨는 뇌졸중, 아내는 유방암

고향인 홍천에서 농사를 짓던 신근선씨가 필리핀 사람인 아내 부란주엘라 아멜리아를 만난 것은 1999년 가을이었다. 혼기 놓친 아들을 어떻게든 결혼시키려는 어머님의 노력으로 농촌총각과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이 성사되게 된 것이다.

"1999년 내가 필리핀에 들어가서 결혼식을 하고 돌아왔고요. 아내는 이듬해 2월에 들어왔어요. 옛날처럼 서로 사진만 보고 결혼했죠."

결혼 후 신씨는 춘천으로 나와 택시운전을 했고 짧았지만 얼마간 행복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결혼 2년 만에 신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아내와 애들을 생각하면 눈물만 나요.
ⓒ 김혜원
"아내가 처음엔 한국에 들어와 마음을 잡지 못하더라고요. 한국생활에 적응을 못하겠는지 자꾸만 필리핀으로 가려고 하고….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애도 둘을 낳았어요. '선녀와 나무꾼'처럼 애가 둘이면 날 떠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요. 어떻게든 아내를 잡고 싶었거든요."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월 60여만의 생계보조비를 받고 있는 신씨의 경우 자신의 병원비는 국가에서 전액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유방암에 걸린 아내의 경우 혼인신고는 되어 있어 법적인 부부지만 외국인의 신분이라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 국적 없는 필리핀 아내, 한국에선 치료 받을 수 없어"

신씨 아내의 몸에서 유방암이 발견된 것은 6개월 전. 한국에서 계속 치료를 하고 싶었지만 신씨 아내가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라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국제결혼 후 한국국적을 취득하려면 결혼한 뒤 2~3년 정도 함께 살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며 그 뒤에도 여러 가지 심사를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신씨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신씨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자주 필리핀과 한국을 오갔다고 한다. 그래서 신씨 아내의 한국국적 취득이 쉽지 않은 것. 그렇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한두 푼 들어가는 거라야 수술도 해보자고 하지요. 이 집도 그나마 월세 30만원 내시는 형님네 얹혀 지내는 상황인 데다가 월 60만원 가지고 사는 형편이니 암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요. 그래서 필리핀 사람이니 필리핀에 가면 의료보험 혜택이라도 받을까 하고 보냈어요. 여기서 돈이 없어 손 한번 못써보고 죽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아내 이야기를 하던 신씨는 목이 메어 말을 더 이상 잊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죽으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애들이 눈에 밟혀 죽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 놈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어머니도 나이 드셔서 관절염에 뭐에 아프신데 애들 돌보시느라 저렇게 고생하시고 제가 죄인이지요."

"아빠 미워, 엄마 찾아 필리핀 갈래"

▲ 아들의 말에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
ⓒ 김혜원
옆에서 손주를 업고 듣고 있던 신씨의 어머니(71)가 눈물을 훔치신다.

"도무지 내가 가슴이 아파 살 수가 없어요. 아들 아프지 며느리 저렇지 애들도 왜 그리 매일 아픈지…. 내가 얼른 죽어야 하는데… 저렇게 아픈 사람을 불김도 없는 밖에서 잠을 자게 하니 자다가 아들 기침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져요."

그러고 보니 10평 남짓한 집은 예전에 분식점을 하던 가게로 가게 한구석에 판자와 스티로폼을 이용해 방갈로 같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방 하나에 딸린 쪽방에서 신씨의 형님 내외와 조카딸 그리고 신씨의 어머니, 신씨의 두 아들이 자다보니 신씨가 잠잘 공간이 없어서 잠만 잘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 판자와 스티로폼을 이어 만든 신씨의 잠자리-난방이 되지 않아 냉기가 나온다.
ⓒ 김혜원
"어제는 큰 아이가 너무나 말썽을 부려서 때려줬어요. 때리면서도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화장실 가서 한참동안 통곡을 했어요. 어머니는 방에서 우시고…."

힘 없고 병든 아버지인 신씨는 아들들에게 해준 것도 해줄 것도 없는 것이 늘 가슴이 아프면서도 가끔씩 야단을 치고 손을 대게 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한다.

"아빠가 때린 날 저녁에 저 녀석이 내 귀를 잡고 이러는 거예요. 아빠가 많이 안 좋다면서 엄마는 쭈쭈가 아파서 필리핀에 갔으니까 자기도 필리핀으로 보내 달래. 그리고 동생은 고물장사 할아버지한테 줘버리래. 어린것이 뭘 알겠어. 얼마나 서러웠으면 그럴까."

할머니는 애들이 엄마를 찾을 때면 더욱 가슴이 찢어진다며 한국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이렇게 가슴 아픈 생이별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애비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 신근석씨의 아내 부란주엘라 아멜리아는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카락이 없다.
ⓒ 김혜원
"아내가 친정으로 갔지만 거기도 넉넉한 살림은 아니거든요. 이쪽에다 수술비를 이야기하는데 구할 길이 없는 거예요. 기왕 가서 진단을 받고 했으니 거기서 수술이라도 한번 받아보고 오면 여한이 없겠는데 그나마도 여의치가 않아요. 그래서 이대로 칼 한번 못 대보고 아내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내도 불쌍하고 우리 애들도 불쌍해서…."

▲ 6살 승현이와 2살 승국이에겐 엄마가 필요하다.
ⓒ 김혜원
신씨는 공사장에서 노동일을 하는 형님과 식당일을 나가는 형수님에게도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한다. 보증금도 없는 월세 30만 원짜리 셋방에 병든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조카들까지 함께 살아야 하니 오죽 불편할까 싶다. 그래서 신씨는 불기도 없는 차가운 거처라도 병든 몸 누일 곳을 마련해 준 것에 감사해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대문을 나서는데 "안녕~"이라고 멀리서 인사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승현이인가 보다. 승현이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손만 흔들어줬다. 그러면서 신근선씨가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애들이 커서 돈 몇 백 만원이 없어서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고 저를 원망할까 두려워요. 아마 저라도 그런 아빠라면 원망스러울 것 같아요. 이런 애비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덧붙이는 글 | 여러분이 주신 좋은기사원고료는 전액 승현이 승국이를 돕는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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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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