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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제대 보름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노충국씨. 병원은 노씨의 가족에게 "장례식 준비하라"는 말을 건넸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빨리 건강하게 일어서야죠…. 그래서 부모님에게 효도해야죠."

군 제대 보름만에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노충국(28)씨의 마지막 희망이다. 그는 이 짧은 '희망'도 들릴 듯 말 듯한 희미한 목소리로 천천히 내뱉었다. 그리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 노춘석(62)씨는 끝내 고개를 돌려 굵은 눈물을 떨구며 흐느꼈다.

담당의사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도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만 것이다. 23일 오전 아버지가 의사에게 들은 말은 이랬다. "아들 장례식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알립니다] 노충국씨를 돕는 방법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있는 노충국씨의 사연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각지에서 노씨를 돕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네티즌 여러분들께서 이 기사에 보내주시는 '좋은기사 원고료'를 전액 노씨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는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말기 위암과 싸우고 있는 노충국씨를 만난 건 이날 오후 덕유산 주변의 한 작은 병원.

2층 병실에 누워 다른 이의 피를 수혈하고 있는 노씨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입술은 간신히 붉은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쩍 마른 몸은 보기에도 처참했다. 키 180, 몸무게 80kg이던 노씨는 지금 몸무게가 50kg에 불과하다.

군 제대 보름만에 말기 암 판정

이런 노씨의 모습은 그를 인터뷰하는 기자를 죄스럽게 했다. 아버지 노춘석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정신 있지? 마지막으로 힘내서 하고 싶은 말 다해"라고 말했다. 말하는 것도, 눈을 깜빡이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아들이 기자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은 "나 때문에 멀리 서울에서 오시고…, 고맙습니다"였다.

노충국씨는 지난 6월 24일 육군 탄약사령부에서 만기 제대했다. 그리고 7월 7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하기 전 군 병원은 노씨에게 다른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만성 위궤양. 군 병원의 진단이 맞다면 노씨의 만성 위궤양은 불과 1개월만에 위암 말기로 발전한 셈이다.

노씨는 군 제대 2개월을 앞둔 지난 4월 심한 복통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 국군광주통합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밥 먹는 것도 힘겨운 상태였다. 그러나 군 병원은 두 차례 모두 위궤양 진단을 내렸다. 군 병원 쪽이 광주광역시 모 병원에 노씨의 조직검사를 의뢰했을 때도 역시 결과는 같았다. 결국 노씨가 군대에서 받은 처방은 1개월 약 복용이 전부였다.

노씨는 이보다 앞서 3월에도 군의관을 찾아가 복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군의관은 공복 상태가 아니어서 내시경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노씨를 돌려보냈다. 이에 대해 노충국씨는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군대에서 조금만 빨리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을 걸…. 위궤양이라니까 그렇게 믿었죠. 군대에서는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요. 사회처럼 의료 장비가 좋은 것도 아니고, 사병 숫자에 비해 군의관도 별로 없고. 담당 군의관도 치료받으러 갈 때마다 바뀌고. 빨리 치료를 받았으면 지금보다는 좋았을 텐데…."

"군에서 조금만 더 빨리 치료를 받았다면..."

이어 노씨는 "군 의료 시설이 좋아지길 바란다. 그래야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군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천천히 말했다.

노충국씨는 제대 후 3개월 동안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마와 싸웠다. 음식은 입으로 삼킬 때마다 토해내 그동안 식사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노씨가 자신이 위암 말기의 위중한 환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9월 말. 가족들이 노씨의 절망을 우려해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아버지 노충국씨는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아들 치료를 위해 노력했다. 노동일을 하며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그였지만 아들만은 꼭 살리고 싶었다. 그동안 병원비는 친척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군 당국의 지원과 보상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분노한다.

"국방의무를 위해 건강한 아들이 군대에 갔다.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게 뭔가. 건강한 아들 보냈으면 건강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눈물). 말기 암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아버지는 병든 아들에 대한 군 당국의 '최소한 예의'를 바라며 뛰어다녔다. 아들이 복무한 광주 탄약사령부를 비롯해 국방부, 병무청, 보훈처 등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 때마다 들은 말은 "기다려 보자, 우리 책임은 없다"라는 말뿐이었다. "아들이 군 복무 중 암에 걸렸고, 병원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으니 군 당국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노춘석씨 생각이다.

그러나 군 당국의 생각은 다르다. 육군 탄약사령부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씨의 말기 위암 진단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우리는 군 병원의 진단에 따라 성실히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육군본부의 한 관계자도 "노씨의 암이 군 복무 스트레스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던 유전자가 암 발병의 원인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원인이 후자라면 군 당국의 책임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이 관계자는 "물론 노씨의 암을 일찍 발견하면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진은 군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사회의 일반 병원에서도 오진이 일어나는 만큼 일방적으로 군대의 책임만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군 당국 "안타깝지만, 책임은 없다"

▲ 노충국씨가 부모님과 함께 마지막으로 민간치료에 의지하며 살고 있는 덕유산 자락의 집.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곳에 있다.
ⓒ 박상규
노충국씨는 지난 9월 30일 병원을 퇴원해 덕유산 깊은 산골로 거처를 옮겼다. 길어야 2~3개월 살 수 있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였다. 노충국씨는 그 때 처음 자신이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판정"이었지만 노씨의 가족들은 아직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노충국씨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부모님들과 생활하며 민간요법에 의존, 치료를 받고 있다. 그동안 병세가 약간 호전됐지만 22일 밤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주변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이때 담당 의사는 "장례식을 준비하라"고 가족에게 전했다.

노충국씨는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희망'으로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고, 노씨의 부모님은 "아들을 살리겠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노충국씨가 누워있는 병실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곧 좋아질 겁니다. 건강해지면 뭘 먼저 하고 싶어요?"
"자장면 먹고 싶어요."


아버지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흐느꼈다. 노충국씨는 군대에 가기 전 용인대학교에서 태권도학과를 다니던 건강한 청년이었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청년 노충국씨. 그는 지금 자신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걸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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