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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빈 검찰총장이 17일 오후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민은 권력과 강자의 외압에 힘없이 굴복하는 검찰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죽은 고목에서 꽃이 필 수 없듯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검찰이 인권과 정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퇴임식에서 후배 검사들을 향해 던졌던 말이다. 그는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꼭 남겨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한국의 검사들이 검찰권 독립의 표상으로 정작 가슴에 새겨야 할 사례는 따로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록히드 사건과 동경지검 특수부. 실제로 이 사례는 검찰권 독립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명쾌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동경지검 특수부, 다나카 전 수상을 체포하다

1976년 7월 27일 새벽 6시.

동경지검 특수부 검사들이 다나카 전 수상을 자택에서 전격 체포했다. 록히드사 항공기를 구입하도록 행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대가로 5억엔의 뇌물을 받은 것이 다나카에게 적용된 혐의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일본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다나카가 누구인가? 일본 파벌정치와 정경유착의 거두(巨頭)로서 수상 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막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 아닌가. 바로 그런 인물을 검찰이 '감히' 체포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검찰이 그런 용단을 내리기까지는 '아픈 전사'가 있었다. 그보다 22년 전인 1954년에 정치인 출신의 법무대신으로부터 검찰권을 무참하게 유린당하는 치욕의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 검찰은 자민당의 전신인 자유당의 사토 간사장을 수뢰죄로 체포하려 시도했다. 그런데 이누카이 법무대신이 검찰총장에게 일본 헌정사상 최초의 지휘권을 발동해 체포를 중지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직후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지휘권 발동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해일처럼 거세게 일어났고, 그 후로 다시는 법무대신이 지휘권 발동을 하지 못하는 '전통'이 수립된 것이다.

바로 그런 전통 덕분에 일본 검찰은 다나카 전 수상을 큰 무리 없이 체포할 수 있었다. 당시 법무대신이 내각에 박혀 있는 다나카 인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지휘권 발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17일 오후 김종빈 검찰총장 퇴임식에 참석한 대검 간부들이 굳은 표정으로 김 총장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검찰권 독립은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동경지검 특수부가 검찰권 독립을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일본 국민의 검찰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부터 나왔다는 사실, 일본 국민의 강력한 지지는 검찰이 가장 막강한 부패세력의 '몸통'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용기를 발휘했기에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검찰의 모습은 어떤가. 많은 국민은 여전히 검찰과 관련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정적 이미지부터 떠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유엔 인권위에서 폐지를 권고하고 있고, 한나라당조차 없애자고 하는 찬양·고무죄 조항을 가지고 일개 대학 교수를 구속 수사하는데 '올인'하는 듯한 검찰의 모습에서 생각 있는 국민들은 차라리 처량함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일반 서민 앞에선 한없이 오만해지는 반면 권력과 재벌 앞에선 자꾸만 작아지는 '전통'을 고치지 않는 한 한국 검찰의 미래는 없다.

따라서 한국의 검사들이 진정으로 가슴에 새겨야 할 격언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퇴임사가 아니라 유지담 대법관의 퇴임사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검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음에 소개한 문구 중 '사법부'를 '검찰'로 바꿔서 100번만 복창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실시!

"무엇보다 부끄러운 것은 권력에 맞서 진정코 사법부 독립을 외쳤어야 할 독재정권 시절에는 침묵했으면서 정작 사법부에 대한 경청할 만한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는 '사법부 독립' 등의 명분을 내세워 이를 외면한 사실이다."

▲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반발해서 사표를 제출한 김종빈 검찰총장 퇴임식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의신문, 뉴스서천, 수원일보, 군포시민신민, 장성군민신문, 영주시민신문 등 15개 여의도통신 회원사에도 공동으로 제공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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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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