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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에 좋고 맛도 좋은 가을 전어 드세요
ⓒ 이종찬
'돈 생각하지 않고 마구 산다'하여 '돈고기'라는 뜻을 가진 전어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전어다. 전어는 여름 산란기를 지나 벼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이 되어야 뼈가 부드러워지면서 살이 통통하게 올라 제맛이 나기 시작한다. 그런 까닭에 양식 어류가 흔하디 흔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전어만큼은 가을철이 아니면 회든 구이든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생선이다.

가을 전어의 맛이 오죽 좋았으면 예로부터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고 했고, '전어 굽는 냄새(사방 1km까지 난다고 함)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사실, 가을 전어는 맛도 그만이지만 영양가도 뛰어나다. 가을 전어에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불포화 지방산인 'DHA'와 'EPA'가 많이 들어 있어 성인병 예방에도 아주 좋다.

어디 그뿐이랴. 전어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피로회복은 물론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전어는 뼈째 먹는 생선이기 때문에 칼슘 섭취량도 뛰어나다. 게다가 전어에는 글루타민산과 핵산까지 많아 아이들의 두뇌 기능은 물론 어른들의 간 기능까지도 도와준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에 따르면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족과 천민들 모두 좋아했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전어를 사는 사람들이 전어의 기막힌 맛 때문에 돈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 사기 때문에 '돈고기'라는 뜻의 '전어(錢魚)'라 불렀다고 덧붙여 놓았다.

▲ 경남 창녕 전어전문점 '물망초횟집'
ⓒ 이종찬
▲ 빻은 마늘과 잘게 썬 파, 통깨, 참기름이 든 된장에 전어회를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 이종찬
"진해 앞바다에서 잡히는 떡전어가 가장 고소하고 맛깔나지예"

"전어는 뭐니뭐니 해도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 진해 앞바다에서 잡히는 떡전어가 가장 고소하고 맛깔나지예. 저희 집에서는 지금까지 진해에서 나는 떡전어를 손님들 상에 내놓곤 했는데, 올개(올해)는 우째된(어찌된) 판(까닭)인지 전어 사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힘들어예. 올개 전어는 아예 금값 아입니꺼."

지난 달 13일(화) 오후 6시. 나의 창녕 길라잡이 서익수(52) 선생과 함께 1억 4천만 년 앞 태고의 신비가 숨쉬고 있다는 창녕 우포늪에 갔다가 입소문을 듣고 들렀던 전어회 전문점 '물망초 횟집'(경남 창녕군 부곡면 청암마을 1046번지). 33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 주인 김숙이(42) 씨는 "요즈음 전어는 매일 매일 가격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늘상 전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잔주름이 없고 얼굴이 곱상한 김씨는 "일반 전어는 작고 뼈가 연해 회를 뜰 때 뼈째 썰어서 내지만 진해 떡전어는 크고 뼈가 드세기 때문에 살만 발라서 낸다"라며, 일반 전어회를 먹던 사람이 진해 떡전어회를 맛보고 나면 올 때마다 진해 떡전어만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단다.

김씨는 진해 떡전어는 살만 발라내 양배추 등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고추장에 버무린 뒤 통깨를 뿌려서(전어비빔회) 먹어도 고소하고 맵싸한 맛이 기막히며, 배가 출출할 때에는 전어비빔회에 밥 한 공기를 넣고 쓱쓱 비벼먹는 맛도 일품이라고 귀띔한다. 또한 떡전어를 통째 숯불 위에 올려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살짝 구워먹어도 맛도 기막히단다.

▲ 이 집 전어회는 길다란 나무통에 담겨져 나온다
ⓒ 이종찬
▲ 가을 전어는 야들야들 씹히는 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올 가을 전어는 금값, 매일 매일 가격 달라져

하긴 백 번 말만 들으면 무얼하랴. 직접 내 입으로 먹어보아야 가을 전어의 진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김씨에게 전어회와 소주 서너 병을 시키자 "오늘 전어는 1kg에 3만원"이라며 엉거주춤 서 있다. 전어회 1kg 가지고는 양이 너무 적어 서너 명이서 도저히 나눠먹을 수 없으니, 아예 3kg쯤 시키라는 투다.

서익수 선생이 김씨에게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한 쪽 눈을 깜빡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중에 덤으로 매운탕 한 그릇 끓여드릴게예"하며, 총총걸음으로 주방으로 사라진다. 30평 남짓한 식당, 다닥다닥 붙은 깔끔한 온돌방 곳곳에는 전어회와 전어구이를 먹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꼬맹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도 서너 쌍 있다.

나와 일행들이 먼저 나온 오이와 당근, 삶은 땅콩 등을 안주 삼아 소주 몇 잔 홀짝거리고 있을 때, 김씨가 환한 웃음을 날리며 전어회가 수북이 담긴 길쭉한 나무통을 식탁 위에 올린다. 싱싱한 전어회가 담긴 사각 진 나무통이 입맛을 더욱 돋군다. 전어회를 찍어먹는 두 가지 양념장도 참 맛깔스럽게 보인다.

잘 빻은 마늘과 잘게 썬 파, 통깨가 담긴 된장에 수북이 부어놓은 고소한 참기름. 그 옆에 귀걸이처럼 따라나온 빠알간 초고추장. 마악 텃밭에서 따온 듯한 싱싱한 상추와 하얀 속살을 드러낸 양파. 송송 썬 풋고추와 얇게 썬 마늘. 사실, 가지 수로 보면 몇 가지 되지 않는 밑반찬이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푸짐하게 느껴지는 게 입에 군침이 절로 맴돈다.

▲ 전어는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아주 좋다고 한다
ⓒ 이종찬
▲ 제철에 나는 음식이 보약이다
ⓒ 이종찬
"전어회는 금방 썰어놓았을 때가 가장 맛있어예"

"퍼뜩 드이소. 전어회는 금방 썰어놓았을 때가 가장 맛있어예. 그라고 전어회를 다 드셔갈 때쯤 되모 저를 불러 주이소. 전어구이도 드시고, 전어회무침과 전어회 비빔밥도 한 번 맛보셔야지예. 기왕 멀리서 온 손님들인데, 저희집에서 전어로 만드는 별미는 다 드셔보고 가이소. 덤으로 드리는 거니까 돈 걱정은 아예 하지 마시고예."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된장에 찍은 싱싱한 전어회를 상치에 올려 마늘, 풋고추와 함께 입에 넣고 몇 번 씹자 금세 입 안에 고소하고 상큼한 감칠맛이 맴돈다. 비린 맛이 조금은 남아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어디에도 비린 맛은 없다. 그저 시원하고 상큼한 바다의 맛이 혀끝에 남아 젓가락이 자꾸만 전어회로 향한다.

소주가 절로 술술 넘어간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전어회의 맛도 맵싸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게, 씹으면 씹을수록 우러나는 깊은 감칠맛이 일품이다. 참기름과 마늘, 파가 섞인 된장에 초고추장을 조금 섞어 찍어먹는 전어회의 맛도 끝내준다. 그저 입에 넣기만 하면 굳이 이빨로 씹지 않아도 절로 살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양배추와 양파, 무, 오이, 마늘, 고추장 등과 함께 무쳐낸 전어회 무침의 맛도 기막히다. 아삭아삭 씹히는 상큼한 채소맛과 그 맛 속에 야들야들하게 씹히는 전어회의 맛! 이보다 더 뛰어난 맛이 어디 있으랴. 그래. 가을 전어회의 맛이 이렇게 기막히니,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가을 전어, 가을 전어, 하고 노래 부르지 않았겠는가.

▲ 초고추장에 전어회를 찍어먹으면 맵싸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좋다
ⓒ 이종찬
▲ 마지막으로 나오는 매운탕도 얼큰하고 시원하다
ⓒ 이종찬
제철에 나는 음식, 가을에는 전어가 가장 큰 보약이다

상큼하면서도 맵싸한 전어회 무침에 쌀밥 한 공기 얹어 쓱쓱 비벼 먹는 그 맛도 끝없이 혀끝을 농락한다. 맛깔스런 전어횟밥을 입속에 마구 떠넣다가 입 속이 조금 맵싸하다 싶을 때면 한 수저씩 떠먹는 매운탕의 얼큰한 맛도 끝내준다. 아마,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는 게 바로 이런 맛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가을 전어는 위장에도 참 좋다 그래예. 어느 신문에 보니까 전어가 장을 깨끗하게 만들어 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역할까지도 한다고 해예. 그라고 아침마다 온 몸이 붓고 팔다리가 무거운 사람들은 전어를 많이 먹는 것이 좋아예. 제 시누이도 한때 그런 증상이 있었는데, 제가 파는 이 전어를 먹으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예."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면서 가을 전어의 맛도 점점 더 깊어진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전어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올 가을에는 가족들의 손을 잡고 가까운 바닷가나 어시장으로 나가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전어를 먹어보자. 뭐니뭐니 해도 제철에 나는 음식, 가을 전어를 먹는 것이 가장 큰 보약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경부고속도로-대구-구마고속도로-창녕 나들목-부곡 가는 길-부곡면 청암마을-'물망초 횟집'(055-536-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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