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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노 어하늘 넘자 어허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두분 생전 금슬회로 저승에서도 이어지소."

호령쟁이의 목소리는 구슬펐다. 쌍 상여를 메고 만장을 뒤따르는 상두꾼들의 후렴구는 두 사람의 살아생전 사랑 이야기를 하늘에 전했다. 마을사람들은 너나없이 떠나는 쌍두 꽃상여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 박금남
전남 무안군 청계면 청계리 원청계 마을에서 고향을 한번도 떠난 적 없이 토박이로 살아 왔던 박석암(81)씨와 김정님(75)씨가 하늘로 떠난 것은 지난 2일. 평소 당뇨 등 지병을 앓았던 부인 김씨가 지난 2일 사망하자 남편 박씨는 20여년 전 마을 앞 가묘를 해둔 곳을 찾아가 농약을 마시고 부인의 뒤를 따랐다.

박씨는 부부가 나란히 누울 석관 중 아내가 누울 석관 뚜껑을 열고 들어가 수의를 입은 채 아내를 찾아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슬프게 만들고 있다.

광주에 사는 무남독녀 박은희(41)씨가 지난 2일 집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으나 노부부가 전화를 받지 않자 마을 사람에게 집을 찾아가 보라는 부탁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이 발견했을 당시에는 이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박금남
"아내 세상 떠나면 따라 죽겠다" 입버릇처럼 말해

고인이 된 박씨는 '아내가 죽으면 같이 따라 죽겠다'는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했었다.

서한빈 마을이장은 “박석암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3일전 집에 와보라는 전화를 받고 찾아가니 쓸데가 있을 것이라며 1백만원을 건네주기에 받지 않겠다고 하자 그럼 불에 태워 버린다는 으름장을 놓아 마을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돈을 받아 두었는데 당신이 이 일을 미리서 준비 한 것 같다”며 “이날 장례 음식은 당신이 맡겨 둔 돈으로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손수 장만해 치러졌다”고 말했다.

ⓒ 박금남
박씨 부부의 사랑은 애틋하다. 고인이 된 박씨는 입대 전 결혼한 아내가 군 복무시절 먼저 세상을 떠나자 제대 후 아내 김씨와 재혼했다.

그러나 박씨 부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두 사람만 서로 의지한 채 살아오다 주변 친척의 권유로 입양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60년대 후반 당시 3살이었던 박은희 씨를 입양해 무남독녀로 곱게 길러 출가시켰다.

작은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지어 생활하며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 온 부부는 마을 주민들이 보기에도 사랑이 애틋했다. 돌아가시기 10여일 전만 해도 부인 김씨는 지병에도 불구 공공근로를 다닐 만큼 건강했고,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직접 음식을 마련하곤 했던 박씨 역시 사람들과 함께 밤을 지샐 만큼 건강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박금남
하지만 부인 김씨의 지병이 갑자기 악화되자 아내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함께 떠날 준비를 했을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짐작하고 있다.

장례가 치러진 지난 3일 박씨 부부는 평생 살아 온 마을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마을 주민들과 이별했다. 마을주민들은 이날 모두 바쁜 일손을 놓았고, 농촌의 고령화로 상두꾼들이 없어 청계면 7개 자연부락 청년회와 딸 박씨의 중학교 동창들이 상여를 맸다.

먼저 간 김씨의 상여는 청년회가 메고 앞장을 섰고, 박씨의 상여는 딸의 동창생들이 메고 부부는 나란히 꽃상여를 타고 저승길로 떠났다.

"작년에 핀 해당화는 봄이 되면 다시 피지마는 한번간 사람은 언제 다시 돌아오나 ∼어허노 어하늘 넘자 어허노∼, 살아 생전 금슬 좋은 두분 저승에서 다시 만나 천만년을 회로 하소 ∼어허노 어하늘 넘자 어허노∼."

호령쟁이의 재담 섞인 사설과 상두꾼들의 추임새 후렴구 목소리는 마을을 점점 멀리하며 장지로 떠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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