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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의 대웅전격인 ‘보광전’
ⓒ 이철영
실상사(實相寺) 가는 길에는 '지리산 토종 흑돼지'를 파는 집들이 즐비했다. 그것은 모두 실상사를 향해 몰려가듯 길 양편에 도열해 있었다. 어떤 집은 부위별로 떼어 팔고 어떤 집은 숯불구이나 주물럭을 취급했다. 장사 못하게 말릴 사람도 없었겠지만 절 집으로 들어가는 경로 치고는 꽤나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낸 모습이 실실 사람을 웃겼다.

그러나 점심때를 훨씬 넘겨 버린 터라 내 배도 많이 곯아 실성한 웃음이기도 했다. 주물럭이 기아에 빠진 가련한 중생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글지글 끓는 불판 위 주물럭의 향기는 부처님 만나러 가는 임무를 잊게 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에게 천국과 지옥사이엔 밥 한 그릇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 보광전 앞에 서 있는 실상사 석등. 통일신라말의 대표적 석등. 보물제35호.
ⓒ 이철영
배를 두드리고 나오니 점입가경으로 식당 건너편에는 남근을 깎아 파는 집이 있었다. 발칙하게 4~5미터를 넘는 것에서부터 벼락 맞은 나무로 깎았다는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요망한 남근까지 우리나라 거시기는 다 모아 놓은 듯했다.

주인장은 "일본 여자들이 말이요, 소포로 부쳐줘도 될 것을 비행기 타고 여그까지 와서 15만원, 20만원까지 주고 사간당께요"하고 자랑이 대단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절집을 대신해 상당수의 일본여자들을 어떻게든지 '구원'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지역 출신이라는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를 되뇌며 한참을 걸어도 일주문이 보이질 않았다.

▲ 아담하게 서 있는 칠성각.
ⓒ 이철영
'구산선문 최초가람'이라고 쓰인 엉성한 나무판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외양에서 그 명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니, 퇴락한 모습이 실상사(實相寺)의 실상(實像)이었다.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빛바랜 단청이 이 절집의 소박함과 품격을 더해주고 있었다. 대웅전이라 할 보광전도 튀어나지 않게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 그대로 가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 무궁화를 새긴 약사전 꽃살문.
ⓒ 이철영
실상사는 통일신라 말 828년(흥덕왕 3년)에 홍척국사가 구산선문의 하나로 개창하였다. 달마대사가 개조(開祖)인, 선종(禪宗)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신라 불교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는데 여기에 9개의 산문(山門)이 생겨나 이를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했다.

신라하대는 진골을 중심으로 한 중앙귀족세력과 이에 대응하는 지방호족 간 세력다툼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여기에서 기득권 세력인 왕실귀족들은 경전과 교리를 중시하는 교종의 편에 서 있었고 신흥 지방호족들은 이심전심과 체험을 중시하는 선종을 지원하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었다.

▲ 실상사 건립과 함께 새운 두 기의 삼층석탑(보물 제 37호).
ⓒ 이철영
선종에서는 대표적으로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로 교를 세우는 것이 아님), 교외별전(敎外別傳,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함)이란 말로 선(禪)을 표현한다. 표월지(標月指,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를 보자면 진리가 달이라면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며 선(禪)은 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 9세기 경에 만들어진 약사전 철제여래좌상(보물 제 41호).
ⓒ 이철영
당시 당나라에 유학한 스님들이 나말여초의 격동기에 이 땅에 새로운 사상적 대안을 내놓았듯 지금의 실상사도 구산선문의 최초 가람으로서 이 땅에 '생명과 평화'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현재 실상사를 중심으로 귀농전문학교, 실상농장, 지리산생명평화연대, 대안학교인 작은학교 등이 생명평화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이 시대의 종교들은 무엇을 섬기고 있을까? 오직 자신의 욕망을 숭배하고 섬길 뿐이다. 자본의 떡으로 예수를 빚고 부처님을 빚는다. 자신에게만 복 달라고 물신(物神)에게 빈다.

▲ 근래에 세워 놓은 실상사 일주문.
ⓒ 이철영
유마힐은 "중생이 아프니까 내가 아프다"고 했다. 실상사와 함께하는 여러 시도들을 부르는 이름이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다. '인드라망'은 '제석천'의 궁전에 드리워진 투명한 구슬그물을 뜻하는 말로 서로의 모습, 삼라만상이 서로에게 모두 투영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곧 자연과 세계와 인간이 서로 한 몸임을 뜻하는 것이다. 실상사의 주지로 이 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도법 스님은 지금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되어 2년째 전국을 걷고 있다.

'실상(實相)'은 모든 존재의 참된 본성과 진실을 의미한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이 작은 불씨가 들불로 번져 이 땅이 생명평화의 세상이 되기를 빌어 본다.

▲ 비인가 중등 대안학교 '실상사 작은학교'의 축제날. 축제 제목은 '고삐 풀린 망아지'.
ⓒ 이철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 사보 8월 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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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기행 연재했던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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