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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개똥'은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한다. 먼저 맡는 사람이 임자라는 '개똥참외'가 참외의 끝물을 타고 텃밭 한 구석에서 열심히 꽃을 피우고, 개똥참외를 하나둘 맺어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만 해도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음식물찌꺼기 같은 것을 모아 개밥으로 사용했다. 그러니 여름철이면 개들도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물찌꺼기 중에 섞여 있었던 참외 씨를 먹었을 것이다. 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래식화장실을 사용하던 시절이었고 화장실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에 따라 화장실이 제법 멀었으니 그저 으슥한 밭 구석에서 큰일을 보기도 했으니 어디 개똥참외가 개똥에서만 자랐으랴! 게다가 재래식화장실에서 퍼낸 분뇨는 귀한 거름으로 밭에 뿌려졌으니 사실 여기저기 개똥참외가 열릴만한 좋은 조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어릴 적에는 '개똥참외'는 견분(犬糞)이나 인분(人糞)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불결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조금 커서 '개똥참외'라 함은 심거나 가꾸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 열린 참외라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의 편견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더럽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재해석들을 통해서 그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못 생긴 것들이 더 좋아졌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편견 때문인지 '개똥참외'를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맛이 밋밋해서 먹었어도 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대략 한 달 전에 과일껍질을 묻은 곳에서 수박과 참외의 싹이 올라왔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텃밭인지라 음식물찌꺼기도 좋은 거름이 된다. 어릴 적에 호박에 인분을 세 바가지씩 부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인분을 먹고 자란 호박이 가장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도 '똥돼지'가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싹을 낸 개똥참외가 너무 신기해서 꽃이라도 보자 생각하고 한 쪽에 옮겨 심었는데 수박은 그저 그런데 개똥참외는 무성한 이파리를 내고 노란 꽃을 피웠다. 여기까지는 지난해에도 있었던 일이다. 꽃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꽃만 보았어도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요즘 풍족하게 내려준 비로 힘을 얻었는지 개똥참외가 열리기 시작했고, 세어보니 잘 하면 우리 식구 하나씩 돌아갈 만큼이나 열렸고, 또 참외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제법 큰 것이 잘하면 올해는 '개똥참외'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개똥참외의 맛은 어떨까 궁금해지고, 얼마나 맛이 없으면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설마 오이 맛보다는 달겠지 하는 기대감까지 가져본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씨앗과 흙이 만나 새로운 존재처럼 피어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들을 보면 기적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여 감격스러울 때가 많다.

ⓒ 김민수

우리 주변에는 못 생겼다고 따돌림 당하고 관심의 영역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때로는 그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왜곡된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라운관에 비치는 연예인들이 표준이 아닌데 마치 그것이 표준인 양 믿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그저 평범한 사람들도 오히려 못 생긴 축에 속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못 생긴 것들의 삶은 더욱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못 생겼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기에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잘 생겼다, 못 생겼다는 객관적인 것은 아니며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잘 생겼다, 못 생겼다 구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분은 있을 수밖에 없고 단지 차별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작은 텃밭에 있는 개똥참외는 물론 좀 특이한 주인을 만나서 - 개똥참외는 맡는 사람이 임자라고 했으니까 - 눈길을 다른 것들보다 각별하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 특별하게 잘 해준 것은 없다. 그냥 꽃이 피면 '장하다!'했고, 열매를 맺은 것을 보았으니 하루가 다르게 어떻게 자라나 더 많은 눈길을 주었지만 나의 텃밭에 있는 다른 것들에 비하면 역시 천대를 받고 자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개똥참외가 참외가 될 필요도 없고 그냥 개똥참외면 된다. 그것을 나는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개똥참외'의 맛을 보고 싶기 때문이고 개똥참외에서 참외를 거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돌포도를 맺은 포도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성서에 있다. 위선자들에 대한 예수의 비유이야기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극상품의 것들인데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머리로만 알고 삶으로 살지 않으면 돌포도를 맺어 베어질 수밖에 없는 포도나무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에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랐는데 그들의 품종 자체가 문제인지 지나친 화학비료 같은 것들로 인해 종자가 변형되었는지 도무지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개똥참외'같은 것이라도 열리든지, 아니 개똥참외가 안 열려도 꽃이라도 피우든지 해야 할 터인데 깨똥참외에서도 나지 않는 온갖 구린내만 가득하다.

텃밭 한구석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 '개똥참외'의 맛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밋밋해도 아니면 쓴맛이 나도 고맙게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그를 내 몸에 모실 것이다. 자기의 삶, 그 삶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삶의 모습이 내 안에도 모셔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거두어도 죄가 되지 않는 나의 작은 텃밭, 그 곳이 유토피아, 하나님 나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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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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