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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은 백제문화" 표지
ⓒ 고래실
'신라문화'의 석굴암과 불국사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다. 그런가하면 고구려 고분벽화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꽃피운 백제의 '금동용봉대향로'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것이 동아시아 최고의 향로이며,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할 수 없는 대단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인 엄기표씨는 이렇게 진단한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역사기 때문에 패망한 백제문화가 묻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관련 기록도 적고, 아직 연구 성과도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탓입니다. 게다가 백제문화 전공자들이 일반 대중에게 잘 알리지 않은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애기한 엄기표씨가 연구 성과와 모은 자료를 갖고 이번에 백제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을 해냈다. 바로 고래실에서 펴낸 <다시 찾은 백제문화>가 그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휴대용 변기를 사용한 백제 사람들'이다. 호랑이가 앉아있는 모습의 호자(虎子)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엄기표씨는 비슷하다는 중국 호자를 직접 찾아가 비교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 끝에 휴대용 소변기임을 확신했다고 하는데 그런 그의 열성이 이 책을 펴냈는지도 모른다.

▲ 백제의 휴대용 소변기 호자(虎子) / 1979년 부여 군수리 출토, 높이 25.7cm Ⅹ주둥이 지름 6.6cm
ⓒ 고래실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는다.

"서산마애불을 여러 번 가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백제의 미소, 마애불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백제 사람들의 얼굴이 이런 모습일까?'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백제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갔습니다. 그래서 백제문화를 더듬기 시작했고, 거기에 작은 성과가 나오면서 이를 사람들에게 전해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겸손하다. 역사가가 아닌 미술사가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며, 전문 역사가들이 볼 때는 우스울지 모른다고 겸연쩍어 한다. 하지만 어디 완벽한 책이 있을 수 있을까?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도 약간의 흠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없다.

그는 말한다.

"700년 백제사를 단순히 책 한 두 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이 책의 내용이 완벽하게 백제문화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잘못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백제엔 이런 일도 있었겠구나'라고 한번 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책을 펴면 온통 사진과 자료들로 그득하다. 1500년 전의 사실들을 정확히 확인할 수도 없고, 그에 대한 연구 성과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를 보완하는 것은 오로지 자료 외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지은이의 성실함을 엿볼 수 있다.

책은 먼저 '백제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백제 사람들은 어떤 말을 썼을까?', '백제의 형벌은 엄격하였다.', '다양한 놀이문화가 있었다.', '바다 사람들은 문신을 하기도 하였다.' 등 '백제 사람들의 삶과 흔적'으로 마당을 연다.

▲ "다시 찾은 백제문화'를 읽고 있는 엄기표씨
ⓒ 엄기표
특히 놀이문화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백제 사람들이 왜에 전해줄 정도로 '씨름'을 즐겼다고 하며, 이미 '바둑', '투호', '윷놀이', '주사위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준다. 또 '문신'이 풍습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었음을 '<남사> 권 79, 열전 69,백제' 편의 기록을 들어 소개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백제의 미소'를 보여준다. 흙과 돌, 금동으로 만든 불상과 토기, 기와에 나타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이를 토대로 백제 사람들의 얼굴을 추정해본다. 또 고구려, 신라, 중국의 얼굴들과 비교함으로써 백제 사람들의 얼굴 특징을 살핀다. 그러면서 이 백제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첩보전과 사랑이야기를 통한 '백제인의 전쟁과 사랑 이야기', '무왕의 아버지는 용이었다.', '백제 멸망의 징조가 나타나다.' 등의 '믿기지 않는 일들'도 소개한다.

그에게 백제문화를 연구하면서 더욱 애착이 가고 대단한 문화로 보이는 유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대단하지 않은 유물, 유적이란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꼽으라면 역시 '금동용봉대향로'입니다. 이 향로는 백제의 철학과 문화 그리고 기술을 총체적으로 다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만들 수 없는, 반도체를 만드는 것보다 더 뛰어난 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합니다. 정말 대단한 유물이며, 백제 문화의 위대한 결정체입니다."

앞으로 백제문화에 대한 또 다른 계획을 물었지만 그는 당분간 백제문화 책은 없다고 말한다. 전공이 원래 불교미술사여서 한동안은 그쪽에 치중할 계획이고, 백제문화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자료수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최근 많은 백제사 전공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백제 문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백제는 별 볼일 없었다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본인의 겸손에도 이 책은 많은 자료를 찾아내어 그것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비교한 성실성만으로도 크게 박수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돈이 되지 않는 전통문화 연구에 삶을 바치며, 세상에 알려내려 온몸을 바치는 엄기표씨와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다시 찾은 백제문화 - 휴대용 변기를 사용한 백제사람들

엄기표 지음, 고래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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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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