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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별 없는 제국>
ⓒ 심산
미국의 신제국주의=군국주의

우리는 군사대국화, 군국주의화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일본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일본에 관한한 이런 표현을 너무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군국주의화하고 있다면 어떨까? 마이클 만은 단적으로 현재 미국은 신제국주의자=군국주의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은 신제국주의, 신제국주의자들이 국방부와 군부를 틀어쥐고 군사전략과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계기는 첫째,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 덕분에 부시가 당선된 것이고 두 번째는 경험 없는 부시를 대신해서 노련한 부통령 딕 체니가 자신과 '코드'가 맞는 신보수주의자들을 대거 등용한 것, 마지막으로 9·11테러 이후 신제국주의자들과 신제국주의의 흐름은 미국을 휩쓸게 된 것 등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국방부와 군부, 그리고 이제는 국무부까지 길들이고 있으며 미국 국민들을 동원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났던 제국(Empire) - 특히, 로마제국이 정점에 서 있던 팍스로마나 - 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지만, 사실은 단순한 '군국주의자들'에 불과하다고 마이클 만은 일갈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꿈꾸지만 그에 비해 미국의 경제적 기반은 허약하고, 정치적으로는 무능력하며 제국의 영역에 평화와 질서를 구축을 전략도 부재하다.

이데올로기적 동의 지반 또한 침식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신제국주의자들은 스스로 가장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파괴적인 군사력'에 집착하게 된다. 미국의 '신제국주의는 신군사주의로' 변모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참으로 우울한 전망이다.


"그들은 사막을 만들고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아이러니는 그 결과가 결국은 신제국주의의 쇠퇴라는 것이다. 마이클 만이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 권력의 근원이 극도로 불균형적이라는 근거이다. 이는 마이클 만이 역사사회학자로서 일대 업적을 세웠던 권력의 4가지 유형화, 즉 군사력, 정치력, 경제력, 이데올로기 권력에 기반 한 분석과 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이클 만의 평가는 단호하다.

제국주의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거인이며, 경제적으로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간섭꾼이며, 정치적으로는 정신분열증 환자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허깨비이다. 이러한 불안정하고 흉물스러운 괴물이 세계 이곳저곳을 꼴사납게 비틀거리며 배회하고 있다(......) 결과는 무질서와 폭력의 난무이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간섭꾼의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향력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미국이 국제 금융시장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외국의 경제를 직접 경영할 수도 없다. 그들이 빈국을 포섭하기 위해 제공하는 원조프로그램은 제국으로서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고, 불공정하기까지 하다.

미국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한 국가를 중심과 주변,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으로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광범위한 최하층(underclass)을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최하층은 불만과 좌절의 온상이 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구축한 거대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은 그들의 표적이 된다. 미국에 대한 불만세력과 테러리즘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경제력과 경제력을 활용하는 정책은 제국에 걸맞지 않다.

정치적 무능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치른 두 번의 전쟁에서 명확해졌다. 미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독재자'를 축출하고 막대한 화력으로 황폐화했지만, 스스로의 구상에 맞는 평화와 질서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남겨진 것은 폭력과 혼돈의 일상화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리' 역할을 하는 국가들은 무질서와 정치적 실패로 신뢰를 잃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미국의 대리 역할을 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부패한 왕조국가다. 이스라엘은 가장 뻔뻔한 깡패국가이면서도 미국의 후원 하에서 온갖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의 정치력은 일방주의, 쌍무적 동맹주의, 다자주의 사이에서 분열증적으로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식 자유와 미국식 민주주의에 기반 한 제국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 책과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읽을 정도로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가 처했던 위기를 잘 알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들(마이클 만의 표현에 따르면, 신제국주의자들)이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동에 이식하겠다던 구상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또한, 대중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총기사고와 인종차별, 9·11테러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감시사회로의 이행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마이클 만은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아메리칸 팬톰(유령)이 되어가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신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행동은 현재 미국의 힘의 근원들과는 완전히 모순 된다. 마이클 만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면, "미국은 자만심에 가득 차서 과잉행동을 일삼는 군사주의로서,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분별력을 상실한'(incoherent) 제국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도덕적 가치와 종교적 신념이라는 동굴에 갇혀,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군사력을 동원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끊임없는 내외의 '역풍'(blowback)에 직면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9·11테러는 면도칼 하나로 제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유례없는 사태였다. 유럽에서 미국의 충실한 대리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에서 벌어진 최근의 테러는 영국 시민권을 가진 이들이 시내 중심가에서 벌인 테러행위였다.

최첨단의 장비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두 사건 모두 최첨단의 현대과학에 기반 한 정보력과 군사력을 자랑하는 두 국가의 중심부를 강타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첨단 군사과학에 대한 맹신 위에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신제국주의 질서의 취약함과 모순성을 드러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을 때, 미국의 국민들(유권자들)이 신제국주의자들의 정책에 지속적인 지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동맹국이라 부르는 국가들도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키기 힘들 것이다. 이는 결국, 일방주의와 패권적 군사주의에 매몰된 신제국주의가 초래한 결과이다.

군사주의로 치닫는 미국,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영국의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칭했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문화적 발전, 과학의 진보 그 이면에는 두 차례 걸친 세계대전과 전지구적인 이데올로기 대립과 군비경쟁, 정치적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탈냉전이 도래했을 때, 많은 이들은 갈등과 대결의 종식을 바랐을 지도 모른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도 많은 이들은 평화와 안정을 기원했다.

그러나 탈냉전과 21세기라는 시간의 흐름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전쟁, 혼돈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혼돈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의 좌충우돌이 세계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미국의 군사주의적 경향의 강화는 더더욱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마이클 만은 현재의 상황을 감안하면 '클린턴 시대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까지 말한다.

20세기 '극단의 시대'에 한반도는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권력의 자장안에서 분단, 전쟁, 군사대결과 참혹한 독재체제를 경험해야 했다. 그렇다면, 21세기'독단과 위선으로 방황하고 있는 미국과 동맹의 이름으로 엮여 있는 한반도의 선택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들었던 질문이었다. 어쩌면, 마이클 만이 책의 마지막에 써놓은, "현실의 불완전하고 어지러운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라는 문장에서 그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저자 마이클 만(Michael Mann)은 권력을 군사적 권력, 정치적 권력, 경제적 권력, 이데올로기적 권력으로 유형화한 <사회적 권력의 근원(The Source of Social Power)>이라는 책으로 사회과학계에 일대 획을 그은 역사사회학자이다.  

이준규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운영위원입니다


분별없는 제국 -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적 신군사주의

마이클 만 지음, 이규성 옮김, 심산(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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