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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호 기자가 발굴한 X파일을 보고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그동안 심증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사실로 나타나, '막연'이 '확연'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의 박태견 논설주간은 삼성의 기아차 인수공작이 IMF 초래의 단초를 주었다는 훌륭한 분석기사를 내놨다. 또 <오마이뉴스> 신미희, 김종철 기자의 "삼성, 가처분신청 '전관예우' 노렸나 - 담당 변호사, 5개월 전까지 관할법원 가처분신청 전담 판사"라는 후속보도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지적한 훌륭한 기사였다.

그런데, 필자는 이른바 이상호 X파일에 나오는 삼성의 영남패권주의에 대해 경악했다. 왜냐하면 이건희 회장의 분신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모 삼성 핵심 인사(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로 일반에 잘 알려져 있는 인물)가 한 말 때문에 그렇다. 다음은 KBS 보도 내용이다.

“이 간부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노조와 호남한테 아무리 아부해 봤자 절대로 안 되는 만큼 확실하게 보수편에서 서야 한다는 충고까지 직접 모 후보에게 한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말로만 듣던 삼성의 영남패권주의적 인사관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아니고 무엇인가! 호남 사람들에게는 삼성의 인재채용과 관련해 삼성은 이병철 회장 때부터 전라도 사람은 잘 뽑지 않았으며 뽑더라도 중용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 이건희 회장의 핵심 측근 입에서 호남한테 아무리 아부해 봤자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삼성의 영남패권주의적 인사관, 더 나아가 오늘날 삼성공화국, 삼성제국이라고까지 회자되는 마당에 있어 사회경제적 권력을 쥔 사람들이 호남을 왕따 시키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 홍석준 기자가 ‘전라도 XXX'라고 할 때도 놀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나라 핵심 권력의 심장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호남차별이 얼마나 광범위했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주장하던 지역주의 정치와도 큰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이다.

다음은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1974년에 출판하여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지역차별과 관련된 한 대목이다.

“텔레비전 단막 또는 연속의 사회물을 유심히 보았더니 가정극에 나오는 식모에게는 어느 도의 사투리로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사회풍자극 등에서는 또 건전치 못한 행위를 하거나 수모를 당하는 역의 출신지도 대개 정해져 있고, 쾌감을 주거나 용기와 정의를 상징하는 역의 언어는 거의 예외 없이 또 어느 도의 사투리가 독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리영희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문맥상 바로 영남패권주의와 호남에 대한 왕따와 차별이다. 1970년대 초 텔레비전 드라마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으니 그만큼 박정희 정권 이후 호남에 대한 차별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영남패권주의와 호남에 대한 왕따와 차별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으로 풀린 것으로 많은 국민들은 여겨왔다. 그래서 2002년 대선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노무현 후보를 국민들은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국민통합은커녕 오히려 신영남패권주의와 호남차별에 대한 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신영남패권주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 논리와 더불어 유시민 의원 등이 민주당 분당 때 주장했던 영남의 지역감정이나 호남의 지역감정은 똑같다는 식의 논리에서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꾸만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여 선거제도 개혁만을 외치고 있고 또 영남 공략을 위해 영남권 낙선자들을 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정치구도 해결에 있어 너무 지나치게 효율성과 시장성만을 앞세우며 영남권 공략을 하려는 것이 문제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호남 지역감정은 바로 지역간 사회 계층간의 경제력 격차가 오랜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해소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지역주의의 문제는 삼성과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사회경제적 권력을 아직도 가지고 행사하고 있는 영남패권주의 또는 신영남패권주의가 핵심이기 때문에,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피상적이고 한나라당의 반대로 되지도 않을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법 개혁에만 매달리지 말고, 권역별 비례대표 확대 등의 선거제도 개혁과 더불어 그동안 차별받고 소외받던 호남지역과 호남출신 인사에 대한 꾸준한 배려와 더불어 호남사람들과 영남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작은 예를 든다면 영호남 경계선상의 지역을 개발, 기업인사에 있어 호남 출신 인사들에 대한 배려 권고, 미국의 affirmative action(차별철폐조처) 등을 참고하면 좋을 듯)에 보다 더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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