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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마련된 추모 헌화 가든.
ⓒ 김정은
17일 현재 55명의 사망자와 700여 명의 부상자를 낳은 이번 런던 지하철·버스 연쇄테러 용의자로 지목된 4명의 청년이 영국의 평범한 무슬림들이었다는 사실에 영국이 충격에 빠졌다.

17일 <인디펜던트>지가 이들 4명 중 모하마드 시디크 칸(30)이 알카에다 회의에 참석했다는 새로운 증거가 제기됐다고 전해, 이번 사건의 알카에다 연계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영국인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테러라는 점이다.

영국 경찰은 관련 CCTV 화면 자료와 함께 언론에 용의자 4명의 얼굴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이번 테러 용의자 4명은 모두 영국인이다. 3명은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영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나머지 한명은 자메이카에 출생한 뒤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 이들은 모두 무슬림 인구가 15%를 차지하는 잉글랜드 북부 리즈시와 인근에 줄곧 살았으며, 범죄경력은 전무하다.

자국민을 상대로 한 테러라는 것에 더해 자살폭탄 테러였다는 점도 주목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자국민에게 테러를 감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놓고 각종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평범한 4명이 배후 조종자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설도 제기하고 있다.

▲ 킹스크로스역 주변 잔해가 발견돼 현장 감식중인 지점.
ⓒ 김정은
우선 용의자 4명의 면면를 살펴보자. <비비시(BBC)> <더 타임스> <데일리 메일> 등 영국 언론에 소개된 이들 4명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능한 초등학교 보조교사였던 모하마드 시디크 칸

▲ 초등학교 교사였던 모하마드 시디크 칸
모하마드는 1974년 영국 리즈시에서 태어나 최근까지 잉글랜드 북부 무슬림 밀집 거주지역 중 하나인 리즈시의 비스턴 지역에 살다가 최근 근처의 듀스베리로 이주했다.

그는 2002년부터 리즈시 힐 사이드 초등학교에서 빈곤 가정 학생들을 돌보는 특수 보조 교사로 일했으며, 영국 교육부 감사에서 빈곤 가정 학생 특별 지도에 뛰어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모하마드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견도 긍정적이다. 학부모들은 그를 두고 "조용하며 좋은 사람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 학부모는 "내 딸에게 (이번 사건을) 말해주자 딸은 그 선생님이 그럴 리 없다며 믿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모하마드는 그가 살던 리즈시 근교 듀스베리 무슬림 커뮤니티에서도 평범하게 사는 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 이웃 주민은 "근본주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며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주 좋은 젊은이였다"고 전했다.

모하마드는 에지웨어 로드 폭발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으며 현재 알카에다 회의에 참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평범한 고교생에서 세계 최연소 자살폭탄 테러범이 된 하시브 후사인

▲ 용의자 4인중 최연소인 하시브 후사인
이번 폭탄 테러 용의자에는 두 명의 10대가 포함돼 있다. 그 중 한명이 18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자살폭탄 테러범이 된 하시브 후사인이다.

그는 10대 초년기 가끔 말썽을 부리던 학생이었지만 심각한 비행을 저지른 적은 없다. 하시브의 중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는 "당시 학교 내 아시아계 학생과 영국 백인 학생들 간의 다툼이 종종 발생했지만 하시브는 싸움에 낀 적이 없었으며 싸움에 낀 무리들과는 친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하시브가 다녔던 학교 교사들은 그가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출석도 잘하고 수업시간에 충실했던 학생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하시브가 학창시절 인종·종교 갈등에서 생긴 분노를 마음 속에 키워오기 시작했던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시브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채 2003년 학교를 그만뒀으며, 이 무렵 파키스탄으로 가 친척들을 방문했다. 또 메카로 순례 여행을 갔다온 뒤 종교에 몰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테러가 발생한 날, 런던으로 친구들과 여행간다며 집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폭탄 테러 후 연락이 안 되자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는데 이들 가족의 실종 신고가 4명의 테러 용의자를 밝혀내는 주요 단서가 됐다. 경찰이 CCTV를 분석해 하시브를 찾아내고 그가 나머지 3명과 함께 루턴 기차역에 들어서는 모습을 포착하게 된 것. 이후 그는 사망자 명단에 올랐으며 피해자가 아닌 테러 용의자로 지목됐다.

하시브는 폭탄을 들고 30번 버스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자살폭탄테러로 버스 승객 13명이 사망했다. 폭발 잔해 속에서 하시브의 운전면허증과 은행카드가 발견됐다.

가족들은 "하시브는 사랑스럽고 평범한 사람이었고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크리켓과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셰자드 탄위어

▲ 크리켓과 무술에 심취했던 셰자드 탄위어
올해로 22세인 셰자드 탄위어는 잉글랜드 북부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나 무슬림 밀집 거주지인 리즈시 비스턴 지역에서 자랐다. 크리켓과 무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대학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 했다.

탄위어의 삼촌은 그가 런던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고, 친구들과 공원에서 크리켓을 했다고 진술했다. 주변 친구들도 "셰자드는 조용한 사람이었고 매우 종교적이었으며 정치적 관심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자드는 영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가족들이 그를 사랑하고 적극 후원해 주었기 때문에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웃 주민들도 "그는 선한 무슬림이었며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친구"였다고 말하고 있다.

셰자드는 올해 초 파키스탄의 이슬람 학습 캠프에 참여했으며 이후 종교적인 색채가 매우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셰자드는 올드게이트와 리버풀 역 사이에서 폭탄을 터트린 것으로 의심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100명 이상의 영국인이 다쳤다.

충실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저메인 린제이

▲ 저메인 린제이.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린제이 자말로 이후 개명했다.
올해 19세인 저메인 린제이는 웨스트 요크서 리즈시에서 살다가 최근에 버킹험셔의 작은 도시 애일즈베리에 거주했다.

저메인은 수년 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름도 이슬람식(린제이 자말)로 개명했으며, 방과 후 이슬람 종교교리 수업에 참석하며 종교 지식을 쌓아 나갔다.

저메인은 아내 류스와이트 사이에 15개월 된 아이를 둔 아버지이며 그의 아내는 현재 두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류스와이트는 "사랑스러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며 "저메인이 이런 일에 참여했으리라 전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스와이트의 친구들도 저메인에 대해 "말수가 적었지만 농담을 하면 잘 웃는 사람이었고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메인의 친척들은 "친절하고, 다정하고, 평온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이런 극악한 범죄를 저지를 거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저메인은 다른 3명의 용의자에 비해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이 부족해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부인 류스와이트의 이모는 "그를 만난 적이 없어 자말이라는 이름만 알고, 인도인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저메인 린제이는 킹스크로스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고 이 사고로 26명이 사망했다.

▲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붙은 실종자를 찾는 포스터. 왼쪽 두번째 남성 제임스 메이스(28)와 그 옆 엘리자베스 대플린(26)은 사망했다.
ⓒ 김정은
왜 평범한 젊은이들이 그런 일을?

이들 4명의 용의자에 관한 이야기는 이웃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 남성들의 이야기일 뿐, 테러리스트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주요 언론들은 "영국민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자살 폭탄 테러라는 점에 이번 테러의 충격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가장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은 바로 평범한 영국인이 내부의 적으로 돌변하는 것이라는 것. 또 <데일리 메일>은 17일 논평 기사를 통해 "이들은 목숨을 버리지 않고 도망갈 수도 있었는데, 자살을 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내 다문화주의 정책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비비시> 이슬람 문제 전문가 로저 하디는 "영국내 150만 무슬림 커뮤니티에 속한 몇몇 젊은이들이 과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영국식의 다문화주의가 과연 성공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며 "통합을 목표로 했던 영국의 다문화주의는 오히려 분열을 지속해 왔다"고 평가했다.

▲ 런던 근교 인도계 주민 밀집 거주지 사우스올에 있는 이슬람 사원
ⓒ 박성진
영국내 다문화주의의 분열의 징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이슬람 커뮤니티와의 갈등이다. 종교 지도자들과 대부분의 언론은 우선 9.11테러 후 영국 내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화되고, 대테러 전쟁을 표방한 이라크 전쟁이 이어지면서 영국내 젊은 이슬람교도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감을 받게 됐다고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위협받는 영국 다문화주의

▲ 킹스크로스역 구내 지하철로 이어지는 계단. 현장 감식으로 통제됐다.
ⓒ 김정은
테러 용의자들의 거주 지역이었던 리즈의 스트래트포드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의 종교지도자 마무드 아크테르는 16일자 <옵저버>에 "여태껏 공격적인 것을 설교했던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이 사역했던 적이 없으며 그들이 과격주의에 빠진 적도 없었다"고 말하며 "사과할 것도 없으며 숨길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대 테러전(이라크전 참여)이 영국내 젊은 무슬림 세대에 영향을 끼쳤고 소외감을 조장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요한 문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슬람 교리를 알든 모르든 자동적으로 영향 받게 되고 그것은 무언가를 촉발한다"고 경고했다.

<비비시>의 하디 또한 "일련의 사건들이 국내외 무슬림들을 더욱 급진화 시켰다"며 "팔레스타인 문제, 걸프전, 전 유고슬라비아 무슬림 박해 등 모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하디는 "이런 상황 속에 영국 젊은 무슬림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동시에 피부색을 넘어선 종교적 편견을 경험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영국내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계 무슬림 이주자들의 삶이 주변부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슬림 가정의 2세들은 재능이나 실력을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내 무슬림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2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 가정의 2/3 이상은 영국의 평균 소득에도 못 미친다.

▲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마련된 추모 헌화 가든의 추모객들
ⓒ 김정은
영국은 2차 대전후 해외 노동자들의 유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을 중심으로 외국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하며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이주자들은 주로 잉글랜드 북부 리즈, 브래드포드의 섬유산업 노동자로 일하며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계 무슬림 인구만 영국 내 70만 명에 이른다.

<옵저버>에서 무슬림 종교지도자 아크테르는 "잉글랜드 북부는 인종 갈등이 가장 첨예한 곳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무슬림에 대한 오해 등 현재와 같은 영국 사회상이 지속된다면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기대'를 거스르는 또 다른 공격도 불가피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하디는 "많은 무슬림 젊은이들은 편견이 피부색 때문만이 아니라 종교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느낀다"며 "이번 런던 테러가 다문화주의를 전면에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정부는 다문화주의 정책이 과연 성공적인지 고려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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