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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누리꾼의 습격

지난 6일 포털뉴스 미디어다음에는 한바탕 큰 소란이 벌어졌다. 이른바 '개똥녀의 습격'. 개똥녀로 지목된 여성의 사진을 올리려는 누리꾼과 이를 찾아 지우는 편집자와의 치열한 전쟁이 한나절 이상 계속됐다.

단 몇 분 사이에 수백 건씩 오르는 댓글을 모두 막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가능한 모든 인원을 동원해 게시물 삭제에 나서보지만 속수무책이다. 긴급편집회의가 소집되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결론은 초상권 침해 소지가 있는 게시물과 기사의 노출을 최대한 막고, 악성 댓글이 붙은 기사의 경우에는 의견게시판을 닫기로 했다.

하지만 기사 한두 개의 댓글이 막혔다고 포기할 누리꾼들이 아니다. 개똥녀와 전혀 상관없는 기사에도 해당 여성의 신상정보가 올라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정보들은 카페, 블로그, 플래닛 등 다른 미디어 서비스에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상황이 이 정도가 되면 미디어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결국 검색, 카페, 블로그팀 등이 모두 나서 '개똥녀 얼굴 지키기' 작전에 나선다. 그렇지만 누리꾼의 클릭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운영자는 없다.

상황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진정됐다. 하지만 단순히 가라앉는 게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옮겨간다. 개똥녀 사건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여성이 아니라 개똥을 치웠던 할아버지였다는 주장. 기자들의 선정적인 보도태도를 문제 삼으며 과연 이 사건이 그렇게 나라가 떠들썩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었느냐는 지적까지 다양한 누리꾼들의 의견이 또 다른 방식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토론방이 열리고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주위 목격자의 증언까지 나왔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미디어다음 기자는 "댓글에는 누리꾼이 스스로 만든 또 다른 언론기관과 사법기관, 수사기관, 교육기관, 종교기관까지 모두 있는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장면 #2. 합성 시대는 갔다. 대세는 리플놀이?

▲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댓글을 달고 읽는 것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진은 '다음'에 오른 댓글
'개똥녀 공습'이 있은 뒤 미디어다음 한 게시판에는 색다른 누리꾼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 여성 연예인의 사진에 특별한 의미 없는 댓글이 붙기 시작하더니 기하급수적으로 댓글이 붙기 시작한 것.

"이 글 다 읽느라고 4시간 넘었다는 걸 아신지."
"나이 50에 첨으로 리플 다는 거 신지는 아신지."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가는 거신지."

이른바 리플놀이라고 불리는 댓글 이어쓰기. 사진 한 장 달랑 있는 이 게시물 한 건만 조회수 백만을 넘기며 순식간에 댓글 3천 개가 '신지놀이'에 빠져 들었다. 댓글을 다는 이른바 '리플러'들끼리의 연대와 응원까지 이어진다. '힘내신지', '2000천 리플 달성한 것 아신지.' 누리꾼들의 대장정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댓글을 달던 누리꾼들의 결론은 "합성 시대는 갔고 이제 대세는 리플놀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에서는 "누리꾼은 못 말려"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댓글을 달고 읽는 것에 열광하는 것일까.

댓글은 움직이는 1.5인 미디어 채널

포털뉴스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독자들의 반응을 그대로 전달하는 댓글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오죽했으면 날씨에 따라 댓글 분위기도 바뀐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총아라고 댓글 문화를 수식하는 경우도 많지만 항상 무언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지난 20일 이후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이버 문화 전공 학자들에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댓글 문화에 대해 문의를 구했지만 답변들은 한결같이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H대 모교수의 이야기는 그 전형이다.

"인터넷 댓글 문화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인터넷의 중요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지만 현실에 쏙 와 닿는 답변은 아니다. 미디어다음의 경우만 해도 누리꾼들의 댓글 문화는 섹션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100자 의견쓰기, 블로그에 의견쓰기, 꼬리말 달기 등 분량, 노출 정도에 따라 누리꾼의 댓글 표현과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최근 댓글문화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누리꾼들의 댓글 문화가 스스로 다양한 변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다른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의사소통 구조가 있다.

댓글은 1인 미디어 중심인 블로그, 미니홈피에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중앙집중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는 카페, 커뮤니티 등도 그 폐쇄성으로 인해 댓글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뉴스 서비스에 주로 제공되는 댓글 기능은 1.5인 미디어 매체 통한다. 나만의 독자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참여 공간을 열어놓은 중간적인 매체라는 의미다. 기사라는 콘텐츠를 접하는 모든 누리꾼은 동일한 화면을 접하지만 댓글 창을 여는 순간 누리꾼은 일정 부분 콘텐츠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담당하는 주체가 된다.

앞에서 말한 '신지놀이'는 바로 이런 1.5인 미디어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다. 누리꾼들은 제공된 콘텐츠인 연예인 사진도 소비하지만 스스로 생산한 리플놀이를 통해 더 큰 놀이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왜 댓글을 다느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라고 말하는 수만 명의 누리꾼이 모여 독특한 댓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다.

민심의 시대는 가고 넷심(Net心)의 시대가 왔다

▲ 댓글은 사회 여론을 측정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사진은 '네이버'에 오른 댓글
이런 특징 때문에 댓글은 사회 여론을 측정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특정 이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토론 문화의 활성화를 돕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미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댓글에 드러난 누리꾼들의 의견이 실제 정책 현안에 반영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에는 지난해 3월 폭설이 내렸을 당시 고속도로에서 장기간 고립됐던 피해자들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이들을 불러 모았던 곳은 폭설 관련 뉴스의 댓글. 이를 통해 분노를 표시하던 누리꾼들은 자연스레 카페를 개설하고 집결해 사상 초유의 소송을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각종 누리꾼 청원을 통해 서명처럼 누리꾼 댓글을 조직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관련업계에서는 "이제는 민심의 시대가 아니라 넷심(Net心)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할 정도다. 인터넷상의 누리꾼 여론이 사회여론을 재는 주요 척도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레 언론과 정부, 기업 등에서 누리꾼의 의중을 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악플센터'라도 세워야 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댓글 문화에 나타난 사회 여론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듯이 누리꾼의 댓글 문화는 언제든지 특정인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번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무차별적인 음해와 공격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예 인터넷뉴스를 보지 않는다거나 미니홈피를 떠났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고음이다. 이런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에서는 각종 공지와 신고기능을 통해 피해예방과 구제에 나섰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누리꾼의 자정 노력에 기대한다거나 정보통신부나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는 대응 역시 적극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안을 갖고 있겠지만 최근 공정위에서는 의미 있는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스팸메일 발송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스팸센터를 구축해 본격적인 신고, 감시 체계를 갖춘 것이다. 악의적인 댓글, 즉 '악플'에 대한 피해 역시 스팸메일 못지않은 상황에서 스팸센터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악플센터'를 세워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들 정도다.

그런데 정말 악플센터가 필요하긴 한 걸까?

덧붙이는 글 | 김태형 기자는 미디어다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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