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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세 자매. 이들의 나이는 각각 12, 14, 16세다. 열두 살에 아들 티제이를 낳은 막내 젬마의 출산을 축하하기 무섭게 몇 주 지나 두 언니 제이드와 나타샤도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 두 사람 모두 막내 동생과 7개월, 8개월 차이로 아들 아마니, 딸 리타를 각각 순산했다. 아이가 아이를 낳은 것이다.

▲ 십대 엄마가 된 세 자매 이야기를 다룬 BBC 뉴스
ⓒ 박성진
이는 현재 영국의 심각한 십대 미혼모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이후 영국언론들은 청소년 성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들이 한창 교육 받아야 할 시기에 출산을 경험함으로써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것.

콘돔만 나눠주면 만사형통인가

영국 국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6세 미만 여학생 임신율은 2002년 1천 명당 7.9명에서 2003년 8.0명으로 늘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18세 미만 임신여성은 4만2183명(16세 이하 8076명, 14세 이하 2261명)으로 이웃 나라 프랑스의 2배 수준이다.

▲ 십대 임신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데일리 메일>. 신문은 '순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 박성진
지난 달 27일자 <데일리 메일>은 '여학생 베이비붐(School Girl Baby Boom)'이라는 제목으로 10대 성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며 "블레어 정권은 지난 7년간 콘돔, 응급 피임약(모닝 애프터 필) 홍보에 1380만 파운드(약 2600억원)를 지출했지만 오히려 임신율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피임장려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최근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국식 순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3일자 <비비시(BBC)> 기사에 따르면 미국 내 10~14세 청소년 출산율은 1946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또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995년 15~18세 여학생 중 35%가 성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2004년 말경 30%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남학생의 경우는 85%에서 65%로 하락했다.

▲ 영국 10대 청소년 임신율.(<비비시>와 <메일> 자료 종합)
신문은 이와 같은 근거를 제시하며, "영국에서는 순결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데 '순결은 자랑거리'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피임위주의 교육이 오히려 성경험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성관계를 전제한 정책이 결국 임신율을 더 높아지게 만들었다는 것.

칼럼니스트 벨 무니는 <메일>에 게재한 논평을 통해 "정부가 말하는 안전한 섹스는 실패했다. 안전한 섹스는 아이들의 성관계를 가정하고 지침을 내리는 것"이라며 "청소년 순결 교육을 강화해 부모와 교사가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순결 교육론자들의 주장은 혼외정사, 혼전 성관계 자체를 막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강경론부터 성인 이전에 성경험을 못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온건론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안전한 섹스'대신 순결교육 강화하자고?

하지만 '순결교육론'이 영국 사회 내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순결 교육에 대한 언급은 보수단체나 언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거론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비비시 뉴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네티즌 머레이는 "십대가 출산 적령기였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종교적 문화적 가르침이 얼마나 강할지 몰라도,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절대 거스를 수 없을 것"라며 순결 또는 금욕 교육에 조소를 보냈다.

네티즌들은 오히려 "현재의 성교육이 정부의 피임법 교육과 단편적 홍보에 그치고 있는 게 문제"라며 "단순한 생물학적 지식을 넘어 실질적 인간관계 교육 등 폭 넓은 수준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젊은 여성(사진속 인물은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박성진
영국 가족계획협회 앤 웨이만도 비비시와의 인터뷰를 통해 "순결 교육은 부분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뿐"이라며 "수준 높은 성교육과 인간관계 교육만이 십대 임신율과 성병 감염률을 낮추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내 대표적인 성 건강 단체 '브루크'의 얀 바로우는 "청소년들은 더 어린 나이 때부터 폭넓은 성교육과 전반적인 대인관계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학교 교과에 폭 넓은 성교육 과정을 의무화 시키자고 제안했다.

▲ 응급 피임약 '모닝 애프털 필'. 일부 소수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일명 'U-카드'를 발급해 피임약 처방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학교 교육을 떠나 성교육의 책임은 부모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부모가 고삐를 잡아야 할 때인데, 부모가 학교와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면서 부모책임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성년 여성이 임신하면 상대 남성을 처벌해야 하며, 여성의 부모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까지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18세에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산부인과 출산 전문 간호사 미란다는 지난 해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청소년기 자신감을 잃거나 가정 내 대화와 성교육이 소홀한 경우에 임신율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녀는 "나를 찾아와 성문제를 상담하고 피임법을 교육 받은 학생들이 이후 실제 임신 문제로 다시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며 청소년에 대한 가정과 사회의 관심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대 출산 양육비 지원을 없애라"?

정부의 지원정책이 십대 출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줄 이은 출산으로 화제가 된 위의 십대 세 자매가 정부로부터 받는 양육지원비는 주당 600파운드(약 120만원)다. 양육비에 더해 무직자 독신부(모)로 분류돼 정부 주택도 무상으로 얻을 수 있고 각종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 데일리 메일에 소개된 세자매 이야기. 둘째 제이드와 딸 리타, 조카 티제이
ⓒ 박성진
영국 교민 K씨는 "돈 주고 집 주는데 아이를 낳아도 문제될 게 없지 않겠냐"라며 "일찍 독립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잘 돼 있는 사회복지정책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비시> 독자 게시판에 글을 올린 네티즌 마크도 "십대들이 아이를 갖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내 세금이 그들을 돕는데 사용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며 "미혼모들에게 돌아가는 사회복지혜택을 없애 버릴 수 있다면 두 번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싱크탱크 시비타스(Civitas)의 부대표 웰란도 <비비시>와 한 인터뷰에서 "사회복지 혜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무직 편모(부)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맞벌이 가정을 갉아 먹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콘돔? 성교육? 순결?... 혼란스런 영국

"난 너무 일찍 심각한 관계를 시작했어. 12살 때였나? 푸 후…."

16살에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난 영국 소녀 베키. 그녀의 유언장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두 살배기 딸 커트니를 잘 키워줄 것을 당부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절대 다른 곳에서 키울 수 없다,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한다."

▲ 16세 골수암으로 두 살 된 딸을 남기고 떠난 베키 윌리엄슨.(TV 화면)
ⓒ 박성진
지난 달 말 <비비시 방송>을 통해 16세로 세상을 떠난 베키의 셀프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후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베키에 대한 애도와 당혹감을 동시에 표출했다. 단명한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그 뒤에 남겨진 어린 아이를 볼 때는 단순한 애도의 차원에서 그칠 수 없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한 중년 주부는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시청자들의 혼란스런 감정만큼 영국 사회는 아직 십대 임신율 급증을 풀어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인가 순결인가, 학교인가 가정인가….

미혼모 역시 그들이 처한 사회가 낳은 산물이기 때문에 가정, 학교, 병원, 정부 모두 동시에 참여해 총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궁극적인 주장도 제기되지만 과연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별다른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런던 램버스 지역과 같은(위 표 참조) 요주의 지역에 특별 성교육 프로그램을 지시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비비시>의 관련보도는 현재의 십대 성문제에 관한 영국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영국이 가진 문제점은 전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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